변기 청소를 하며 엄마를 생각했다

일상 속 많은 엄마들

by 레메디오스

집안일 중에서도 가장 싫은 뽑아보자면 화장실 청소, 그 중에서도 변기 청소가 으뜸이다. 거실이나 부엌 청소야 부스러기들을 쓸고, 가늘게 내려앉은 먼지들을 닦아내면 그만이지만, 변기란 내 몸 속 오물들을 처리해 온 물건이라는 것 자체가 꺼림칙하다. 바로 버려도 상관없을 만치 싼 옷을 입고,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수세미와 세정제를 들고 마음만은 결전을 앞둔 제임스 본드라도 된 양 각오를 다진 후에야 겨우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자그마한 연못이란, 정말이지 손이 많이 간다. 변기 겉 커버는 물론이고 속까지 구석구석 솔질을 해야 한다. 변기 커버와 변기통 사이 접합부에 쌓인 까만 오물들은 보기만 해도 역하고, 벽과 연결된 변기 뒤쪽 사이는 손이 닿지도 않는다. 모가 나간 칫솔까지 동원해 고개를 최대한 들이밀고 팔을 우겨넣어야만 겉이라도 훑을 수 있다. 고작 10여 분 청소하고 나면, 온 몸에 오물 냄새가 배긴 듯해 속이 메스껍고 뼛속까지 지친 느낌에 눌려 주저앉고 만다.


모든 청결은 저절로 유지되는 줄 아는 때가 있었다. 적어도 내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이 크나큰 착각이었음을 깨달은 것은,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처음 자취를 시작하면서였다.


처음 며칠, 그리고 몇 주는 방바닥을 걸레로 쓸고, 화장실 바닥은 샤워기 물로 설렁설렁 씻어냈다. 평일에는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느라, 그 이상 하는 것도 버거웠다. 고작 잠만 자는 공간의 청결 상태가 어떤지 자세히 들여다 볼 여력 따위 없었다.


특별한 일정이 없어 방 안에 가만히 누워 실컷 게으름 피우던 어느 주말, 정오가 지나서야 일어나 변기에 앉았다. 아직 가시지 않은 피곤에 졸다가, 화장실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바닥 타일 사이사이에 낀 검은 오물들을 멍하니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나가 보이니, 다른 것들이 시선 안으로 물밀 듯이 들어왔다. 화장실 샌들 바닥에서는 걸음 걸음마다 원인 모를 먼지들이 후두둑 떨어지고, 세면대 사이사이에는 분홍빛 물때가 선명했다. 왼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오른손으로 변기 커버를 들어 속을 들여다보고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정말 몰랐다. 변기는 적어도 사나흘에 한 번씩은 닦아줘야 때가 끼지 않는다는 것을. 화장실 바닥 타일 사이사이에 낀 까만 오물은 반드시 숄로 닦아줘야 한다는 것을. 세면대에 낀 분홍색 물때는 제 때 닦지 않으면 굳어버린다는 것도.


왜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을까.


실컷 어질러도 다음 날이면 금세 깨끗해지는 집안에서 살 수 있었던 것도, 자취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더러운 오물에 손 댈 일이 없었던 것도. 모두 묵묵히 뒤에서 대신 해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급한 대로 싱크대 수세미와 모가 빠진 칫솔을 들고 변기를 닦은 그날,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벗겨지는 오물들과 씻겨 내려오는 먼지들을 보며, 몹시도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 이후 얼마가 지나, 내 주위 모든 곳에서 많은 엄마들을 보았다. 눈이 펑펑 와 온 길을 뒤덮은 날, 눈길을 쓸어주던 사람에게서. 매일 이른 아침 계단을 닦아주던 아주머니에게서. 지하철 계단에 위험하게 놓여 있던 유리병을 집어 버려주던 어르신에게서. 이렇게 수많은 ‘엄마’들이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우리의 삶이 닿는 모든 곳을 닦아주고 있었다는 것을, 겨우 볼 수 있었다.


수년이 지난 지금은 제법 집안 청소의 전문가다. 기분 좋게 잠든 딸이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먼지를 쓸어내고 있자면, 이제는 내가 엄마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오고는 한다. 내가 속한 이 가족이 나의 작은 수고로 조금 더 청결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다면, 청소를 앞둔 버거운 각오 또한 그저 낮은 문턱에 지나지 않는다.


더불어 나의 수고가 품을 수 있는 것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도 사람들을 위해 묵묵히 수고로움을 감내하는 이들처럼, 나 역시 세상 사람들을 넉넉히 품어주는, 좀 더 커다란 품을 가진 엄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다. 그래야 누군가는, 변기에 번진 오물 따위 모른 채 안심하고 앉을 수 있을 테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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