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받기 전에 먼저, 이해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쓰는 글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사소한 일에 버럭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린 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부끄러워진다.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은커녕 세 시간도 어렵다. ‘버럭-반성-다짐-또 다시 버럭’의 무한궤도, 회전목마이다.
오늘만 봐도 그렇다. 청소 좀 해 놓으라고 신신당부를 해 놓은 지가 벌써 두 시간째인데, 소파에 누워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남편의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화가 머리 끝까지 솟아오르고 만다. 이번 주 내내 상사에게 시달리랴, 야근하랴 힘들었겠지, 주말에는 좀 쉬게 해 주자고 다짐했는데도, 막상 늘어져만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이 뒤집히고 마는 것이다.
“당신만 일해? 나도 일해! 내가 가정부로 취직했어?”라고 윽박지르고 나니, 난데없이 폭언을 들어버린 남편은 어버버버 할 말을 잃고 나를 쳐다본다. “그러는 당신은!”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그간 묵혀왔던 서운한 감정들을 쏟아내며 난투극을 벌인다. 한참을 내가 더 억울하다느니 네가 잘못했다느니 공격하다가 방문을 쾅 닫고 들어와 숨을 고르고 나니, 화는 가라앉고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정말 조금만 쉬다가 할 생각이었을 수도 있는데, 고작 청소 몇 분 더 빨리 하는 게 뭐가 대수라고 화부터 냈을까.’ 머리를 쥐어뜯다가 방문에 귀를 대고 바깥의 동향을 살펴본다. 순식간에 고요해져 시계 초침소리만 울리는 집안의 분위기가 어색하고 답답하기 그지없다. 몇 분이 지났을까, 바닥을 끄는 소리에 살며시 문을 열고 거실을 보니, 한 손에 걸레를 쥐고 쭈그려 앉아 바닥을 닦고 있는 남편이 보인다.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마주친 남편의 얼굴도 멋쩍다.
나도 걸레를 집어 들고 함께 거실 바닥을 닦다보니, 남아있던 화도 함께 깨끗하게 닦이는 것 같다. 이렇게 서로 도우며 웃을 수 있는데, 왜 서로 미루기만 하고, 내가 더 힘들다고 우기며 얼굴 붉히게 되는 걸까.
앞으로도 함께 걸어갈 인생, 웃기만 해도 짧을 이 시간들을 좀 더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다짐해본다. 화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기, 부드럽게 말하기, 이해해달라고 조르기 전에 먼저 이해해주기. 적어도 작심 세 시간이 작심 하루가 되고, 삼일이 되고, 세 달이 되고, 삼년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