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장에게 배출의 자유를 허하라.

내 장의 해방을 기다리며

by 레메디오스

나는 정말이지 현대적인 장을 소유한 사람이다.


현대인이 가진 고질병 중 하나가 과민성 대장 증후군, 즉 스트레스를 받거나 식사를 한 뒤 뱃속에 불편이나 통증을 겪는 질병이라고 한다. 나는 그야말로 이 현대 유행병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스트레스에 너무도 취약한 나라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바로 배에 증세가 나타난다. 배가 부글부글 끓어오며 큰일인지 아닌지 애매해져 변기에 앉지만 원하는 배출은 되지 않는다. 심지어 가스 생성은 어찌나 잦은지, 성인 하루 평균 방귀 배출 횟수는 15~20회라는데, 나는 그 배는 되는 듯하다. 덕분에 조용하고 평온한 곳에 있으면 되레 뱃속이 난리가 날까 더 긴장되고, 시끄러운 곳에 있으면 행여 방귀를 뀌더라도 소리가 묻힐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죽하면 남편이 날더러 “가요계에 섹시 트러블메이커가 있다면 우리 집에는 장 트러블 메이커가 있다”고 했을 정도다.


이 고질적인 장 문제는 결혼 후 남편과 한 침대를 쓰면서 내 나름대로의 심각성이 더 커지고 말았다.


포털사이트나 카페에서 종종 ‘결혼 후 방귀를 트셨나요.’라는 질문들을 보고는 한다. 답변을 살펴보면, 부부 간 환상 유지를 위해 참는다는 말이 대다수이다. 나 역시 그랬다. 특히 결혼 직후 신혼기, 서로 어느 정도는 환상을 아직 가진 시기이니만큼 이러한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모습은 최대한 늦게 들키고 싶었다. 아니, 가능하다면 평생. 그러나 하루 종일 참거나, 몰래 배출하고 온다고 해도 최소 6시간 이상 함께 누워있어야 하는 한 침대의 존재란. 예민한 장에 대한 걱정으로 스트레스를 증폭시켜 다시 장을 자극하는 뫼비우스의 띠를 만드는 데 아주 최적의 조건이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날 때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에 다다랐다. 그래서 나는 잠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실 소파에 눕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한 상황이라는 건 스스로도 인지했지만, 남편에게 내 요동치는 뱃속을 들키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자, 남편도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어느 날 결국, 쌓여왔던 남편의 한이 폭발하고 말았다.


“그렇게 나랑 같은 방 쓰기 싫어요? 그럼 내가 집을 나가서 잘게요!”


흥분으로 새빨개진 얼굴을 한 남편이 옷장에서 여행 가방을 꺼내들자, 나도 서러움에 눈물이 왈칵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는 “배가 아파서 그래요, 배가! 밤만 되면 배에 가스 찬단 말야!”라고 소리 지르고 말았다. 아, 그 순간 벙찌어 버린 남편의 얼굴이란.


서로 흥분이 가라앉은 후, 남편이 나를 다독이며 말했다.


“우린 부부이고 앞으로 수십 년을 함께 살아가야 하잖아요. 나도 사람이고, 당신도 사람인데, 생리적 현상은 당연히 이해하는 부분 아니에요? 그런 일로 서로 스트레스 받지 말아요. 한 가족이니 생리적인 것들도 편하게 개방합시다. 부모님 앞에서는 이렇게 불편해하지 않잖아요. 내 앞에서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조금은 더러운 반쪽짜리 해피엔딩의 도래였다.


부부 간 진솔한 대화로 마음의 안정은 찾았지만, 그 이후로 오히려 배출의 자율성을 찾은 건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부끄러워 조금 더 편하게 몸을 사리는 나와 달리, 남편은 그날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장의 건강함을 뽐내고 있다. 말로는 나를 더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라며 호언이지만, 남편도 사실 힘들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오고는 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부부 간 방귀 배출 담론으로 우리 부부가 좀 더 ‘가족다워졌다’라고 생각한다면 비약일까. 가족이란 서로의 가장 밑바닥도 나눌 수 있어야 한다지 않다던가. 서로에게 내세우고자 꾸며왔던 예쁜 척, 멋진 척들을 한 꺼풀씩 걷어내고, 이렇게 서로 원초적 본능까지도 공유할 수 있는 가족으로서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었다는 것으로, 이 에피소드는 행복하게 기억될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내 장의 자유 독립의 날은 아직 요원한 듯하다. 이제 겨우 첫 돌 언저리에 닿은 딸과 한 침대를 쓰는 날이 많다보니, 매일 밤 깊은 잠에 빠진 딸아이가 혹여 깰까 숨소리마저도 사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하니 이 어미의 뱃속 사특한 무리들을 딸아이의 곁에서 개방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 장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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