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내가 나를 망치기도 했다.

녹내장의 공포에 시달리던 지난 며칠 간의 기록

by 레메디오스

녹내장 의증이라고 했다.


녹내장 확증도 아니고 의증은 뭔가.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보니, ‘녹내장으로 의심되는 상태’라고 한다. 내 인생 36년차, 아무리 최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2․30대 녹내장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라지만 나 역시 그 대열에 낄 줄이야.


특별히 시력이 나빠진 듯한 느낌은 없었다. 현재 양쪽 눈 시력은 -10 디옵터 수준, 사실 더 나빠질 것도 없을 정도의 초고도 근시다. 다만 최근 육아와 직장 생활의 양립에서 오는 스트레스 탓인지 간혹 머리가 어지럽고 오른쪽 눈이 뻐근할 때가 있었다. 이왕 퇴사했으니,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미뤄뒀던 안과 검진이나 받아보자고 생각했다.


그 결과가 이리도 절망적일 줄이야.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초고도 근시였다.


어릴 땐 안경이 그저 좋았다. TV 드라마 속 여배우들이 말끔한 정장에 안경을 쓰고, 단정히 뒤로 당겨 묶은 머리에, 이마 위 몇 가닥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처음으로 안경을 맞춘 날, 한숨을 쉬는 엄마 옆에서 그저 나도 이제 그 여배우들처럼 멋져 보이겠다며 들떴던 기억이 난다.


조금 더 자라고 나니, 눈 크기를 절반으로 줄여버리는 도수 높은 안경이 너무도 싫어졌다. 거울 속 안경 쓴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우울하기만 했다. 길을 걸을 때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내가 못나 보일까 신경 쓰여, 안경을 벗고 눈이 보이는 척 꿋꿋하게 다닌 적도 많았다.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콘택트렌즈를 맞췄다. 딱딱한 하드렌즈를 눈에 넣을 자신은 도저히 없어 소프트렌즈를 선택했다. 눈에 이물질이 들어간다는 이질감과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았던 것도 잠시, 렌즈를 통해 본 세상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 후 16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콘택트렌즈는 나와 한 몸이나 다름없었다. 내 눈의 일부였다. 회사에 다닐 무렵, 야근이나 철야 근무라도 하는 날엔 하루 20시간 이상 렌즈를 끼거나, 피로에 지쳐 렌즈를 낀 채 잠들어버린 일도 비일비재했다. 가급적 8시간 이상 렌즈 끼지 마세요, 렌즈 끼고 자면 위험합니다-그 어떤 위기의식도 없이, 안과에서 하지 말라는 짓들은 다 해 왔던 것이다.




“황반구 상태가 좋아서 교정시력은 잘 나오네요. 다만 시신경 유두비가 커서 정밀 검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의뢰서를 써 드릴 테니 종합병원에서 검사 받아보세요.”


병원을 통해 종합병원 검진 날짜를 예약한 후 집에 돌아오며, 햇살이 참 예쁘다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가 아는 맹인의 사례들을 떠올렸다. 어릴 적 위인전으로 처음 접했던 헬렌 켈러 여사님, 이분은 볼 수 없는 데다, 들을 수 없었는데도 역사에 남는 사회복지가가 되셨지. 루이스 보르헤스는 어떻고. 맹인이셨는데도 세계 최고의 대문호셨고. 내가 알만한 연예인들 중에도 시각 장애 판정을 받고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심지어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자도이치도 맹인인데 최고의 검객이잖아?


녹내장이라고 무조건 실명한다는 것은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란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던가. 나 역시 내가 현 상황에서 맞이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면서,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희망을 찾으려 필사적이었다.


무엇보다, 앞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이제 막 돌에 접어든 내 딸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시작으로 부모님, 남편, 친구들의 모습이 하나둘 떠올랐다.


내가 내 눈에 저질렀던 만행들도 차례로 떠올랐다. 콘택트렌즈 좀 덜 낄 것을. 피곤해도 렌즈는 반드시 빼고 잤어야 하는 건데. 안경 좀 평소에 잘 닦을 걸. 어두운 데서 스마트폰 보지 말 걸. TV 좀 멀리서 볼 걸. 어두운 데서 책 좀 보지 말 걸. 이 모든 것이 쌓여 지금 내 두 눈에 큰 위기를 불러왔다는 자괴감에, 결국 모든 원망이 스스로에게 향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더욱 절망이 밀려왔다.


종합병원에서 2차에 걸쳐 60만원에 달하는 검사를 받은 날 이후,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나흘 간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잠들려 불을 막 끈 순간 보이는 컴컴한 어둠이, 어쩌면 앞으로 내 눈이 볼 세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불을 끄는 것마저 두려웠다. 틈만 나면 포털사이트에 ‘녹내장’, ‘녹내장 실명’, ‘녹내장 의증’, ‘녹내장 초기-중기-말기’를 검색하곤 했다. 잠시 잊고 있다가도 불현 듯 머릿속에 떠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제발 별다른 문제 없기를. 의심은 의심으로 끝나기를. 종교도 없으면서 떠오르는 모든 신들에게 기도하기도 했다.


결국, 녹내장까지는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 오른쪽 눈은 건강에 가까우며, 왼쪽 눈은 녹내장 가능성이 있으나 아직은 위험 상태가 아니니 해마다 한 번씩 검사하며 경과를 지켜보자는 의사의 말에, 다시 시야가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걱정해준 남편과 친구들에게 연락하며-차마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못했다.-‘생환’이란 이와 비슷한 기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 일을 겪은 후, 나는 내 눈을 좀 더 극진히 모시기로 했다. 매일 아침마다 눈 건강 보조식품을 챙겨먹고, 눈에 좋다는 과일을 챙겨먹는다. 틈틈이 먼 곳을 바라보며 눈에 휴식을 취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습관처럼 보던 스마트폰도 조금씩 조금씩 멀리하기로 했다. 내 평소의 행동과 습관이 내 인생 전체에 가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지옥의 문턱까지 발을 디딘 후 몸소 깨달은 인생의 교훈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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