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아간다. 매일 매일.
하루의 끝에 서서, 다시 하루 일과를 반추해본다. 아침 7시에 겨우 일어나 씻고 화장하고 나면 8시. 출근 시간은 9시이지만, 상사와 회사의 출근 기준 시간은 언제나 10분씩, 20분씩 앞당겨지는 법. 서둘러 만원지하철이나 버스에 몸을 구겨 넣고, 운 좋게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흘기며 옆 사람과 닿지 안하게 몸을 최대한 곧추세운다. 내 몸이 샌드위치 속 스팸처럼 압축되어 버리기 직전에서야 만원 교통시설에서 벗어나 회사에 도착한다.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켠 뒤 탕비실에서 녹차 한 잔 공수해오지만 차의 향기를 즐길 여유 따위는 없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상사와 다른 부서로부터 메신저와 메일로 업무 공격이 시작된다.
확인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곧 드리겠습니다.
3단 방어 주문을 돌려가며 시전하고 나면 겨우겨우 점심시간. 사람이 너무 지치면 식욕조차도 증발한다는 것을 실감하며, 그래도 살기 위해 식당을 찾아 나선다. 선택은 언제나 김치찌개 또는 백반정식. 메뉴 선택에 고민할 필요 없이 아무 거나 엄마가 차려주는 대로 먹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꾸역꾸역 밥풀과 반찬들을 입에 우겨넣는다. 커피 한 잔 더 마셨을 뿐인데 끝나가는 점심시간에 한탄하며, 10분 아니 5분이라도 더 쉬어보고자 자리에 엎드려 눕는다. 오후 근무가 시작되자마자 칫솔에 치약을 묻혀 화장실로 향한다. 쉬는 시간 연장을 위한 나름대로의 꼼수다.
길어지는 회의, 쌓여가는 업무. 퇴근 시간은 다가오는데 끝날 줄 모르는 일의 굴레에 마음은 초조해진다. 괜히 가방을 열었다 닫았다 부산을 떨다가, ‘저녁은 뭘 먹을까?’라는 상사의 말에 잠시 숨을 뱉는다. 역시, 정시 퇴근이란 아무도 본 적 없는 신화 속 존재-뭐 그런 건가 싶다.
한 시간이 지나 두 시간을 넘겨 속절없이 밤을 보내다가 겨우 긴 업무에서 ‘일시적’ 해방이다. 오늘은 막차 시간이 되기 전에 끝나서 다행이지 뭐야, 생각하며 다시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출근 시간대와 달리, 이 시간에는 지하철에 사람도 없고, 자리도 남아돈다. 밤늦은 퇴근의 유일한 장점이다. 기꺼이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목적지가 지나기 전 본능의 힘으로 화들짝 놀라 깨어 허둥지둥 하차한다.
아아, 이게 도대체 얼마만이야. 달콤한 나의 집.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가방을 아무렇게나 팽개쳐놓고 몇 분간 멍하니 있다가 완전히 졸음에 삼켜지기 전 비틀비틀 욕실로 향한다. 샤워기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을 맞고 나니 조금은 정신이 맑아진 듯해 이참에 30분이라도 자기계발을 해 볼까 하는 욕심이 생긴다. 침대 머리에 몸을 비스듬히 눕히고 영어단어 암기장을 펼쳐든 채 눈을 한 번 깜박이니 또 다시 아침. 지난 밤을 아쉬워할 새도 없이 허둥지둥 일어나 다시 하루를 반복한다.
정말이지, 닳아간다. 매일 매일.
하루 일과는 지극히 단순한데, 초 단위로 분해된 내 달력에 모든 고난들이 억지로 쑤셔 넣어진 것만 같다. 내 시간들 중 진정한 내 시간이란 대체 어디에 있는가.
10년 전 내가 상상했던 미래에 이런 모습이 있었던가. 교복을 입고 학교의 규율에 소심히 항거하던 내가 벼르던 미래의 모습은 이랬던가. 대학만 가면, 취직만 하면 모든 게 탄탄대로일 것이라는 선생님, 부모님, 주변 어른들의 말씀을 종교처럼 받들며 드라마나 시트콤 속 주인공들 같은 청춘을 꿈꾸던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도 참 순진했지. 열심히도 속았다니까.
생각하며 거울을 보니, 여실한 세월의 흔적에 새삼 큰 숨만 절로 날 뿐이다. 눈 밑 그늘과 흐려진 눈동자, 가물어가는 피부, 푸석한 머릿결, 굽어버린 목과 허리까지. 오래된 나사처럼 녹슬어버린 나만이 존재함에 서글프다.
40대란 중년의 방황기라는 말을 곧잘 듣고는 한다. 이제 30대 후반에 접어들어 40대를 준비해야 하는 이 때, 나에게도 조금 이른 방황기가 찾아온 게 아닐까 싶다. 과거의 모든 것이 그립고, 현재의 모든 것이 허무하고, 미래의 모든 것이 두려운 시기. 이럴 때야말로 확신이 필요하다. ‘너무 늦은 때란 없다’는 희망, ‘앞으로도 원한다면 시작할 수 있다’는 위로. 쉰이 넘은 나이에 등단한 늦깎이 소설가, 예순이 넘어 화가가 된 어느 노부인 등 가시적인 증명이 필요할 때다.
2018년 기준 평균 수명은 85세 전후라던가. 그에 따르면 주어진 시간 중 고작 3분의 1을 지나온 시기, 이 단조롭고도 숨 막히는 일상을 벗어나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것들이란 얼마나 많은지. 소설 쓰기, 그림 그리기, 피아노 연주, 베이킹까지. 하나하나 리스트를 작성해보다가, 시작의 조건을 생각해보고는 다시 좌절이다.
필요한 것은 결국 돈과 시간이라는 결론. 돈을 벌기 위해 하루를 모두 소진하는 지금, 시간은 어디에서 새로 만들어낼 것인가. 시간을 확보하려면 나의 일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돈도 함께 포기해야 하는 것. 그 어느 쪽이든 딜레마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나면 ‘너무 늦은 때란 없다’, ‘당장 마음이 따르는 대로 실행해라’라는 말들이 다시 입바른 말들로만 들려 내 기분은 공허해진다. 갈구하던 위로에 대한 감정은 곧장 ‘남의 일이라고 참 쉽게 말하지’라는 짜증으로 변모하고 만다. 속만 뒤집을 뿐이니 아무 말도 하지 말기를 바라면서도, 또 다시 내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위로’를 던져주기를 갈구한다.
나는 아직도 인생의 방랑자. 도대체 언제까지 길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해야만 하는가. 고전 소설이나 신화 속 주인공들처럼, 누군가 나에게도 인생의 계시를 내려주었으면 좋겠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인생, 스포일러라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작 1초 앞의 인생이라도 알아보겠답시고 오늘도 ‘운세’를 검색하며, 나는 발버둥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