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뺨을 맞은 날, 공기마저 여즉 생생하다.
아마도 10대 중후반에 들어선 즈음이었으리라. 차갑게 공기가 내려앉은 어느 늦은 밤, 나는 아버지에게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온 얼굴에 열이 오른 채 굳어버린 채로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표정 또한 기억 속에 선명하다.
다툼의 원인은 분명히 나였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반항이란 십대의 권리’라는 궤변을 신봉하며 사춘기를 핑계로 비뚤어진 마음을 마음껏 표출하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마주했고, 식사 시간 외에는 방 안에 틀어박혀 H.O.T.의 ‘열맞춰’와 ‘We are the Future’ 등을 들으며 마음껏 피해의식에 취해 사회의 부조리를 욕했다. 기성세대의 충고 따위는 ‘꼰대의 주절거림’에 불과했고,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고독 속에서 홀로 침잠하기만을 원했다. 그 당시에는 그런 내 모습이 몹시도 멋있어보였다.
10대란 응당 그래야 하는 법이라며 나의 모든 뒤틀림을 스스로 합리화하던 그 시절, 부모님께서는 어떻게든 나와 소통해보려 무던히도 문을 두드리셨다. 트로트를 좋아하시던 아버지께서는 나를 이해해보시겠다며 당시 유행하던 보이그룹의 노래들을 모두 독파하셨고, 어머니께서는 내가 좋아할 법한 책을 읽으며 내게 말을 거시고는 했다. 비뚤어졌으며, 더욱 비뚤어져야만 한다고 나를 채찍질하던 내게 당시 부모님의 노력은 우스울 뿐이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 귀찮아. 말 걸지 마.”
“엄만 그것도 몰라?”
“아, 몰라. 귀찮아. 알아서 해.”
“아빠가 알아서 뭐하게?”
어느 날 갑자기 비뚤어진 딸의 마음을 돌려보려 매 분 매 초마다 용기를 내어 다가오던 부모님들께 내가 던지던 비수들이 기억난다. 영어를 함께 공부해보고 싶다며 단어장을 가지고 방문을 두드리던 어머니께 “엄마가 배워서 어디다 쓰려고?”라며 비웃음으로 일갈하던 나의 모습이 예고도 없이 문득 문득 떠올라 나를 주저앉힌다. 내가 좋아하던 연예인을 보며 멋있다고, 우리 딸은 어떤 점이 좋으냐고 상냥하게 묻던 아버지를 경멸하듯 쳐다보며 “아, 몰라. 갑자기 싫어졌어.”라며 툭 내뱉고는 민망해하는 아버지를 내버려둔 채 자리를 뜨는 내 모습이 기억을 스친다.
그렇기에, 그날도 다툼의 원인은 분명히 나였을 것이다. 아버지와 언성을 높이며 싸웠던 그날 밤, 나는 내 방 문을 일부러 쾅 소리가 나도록 닫고 문을 걸어 잠갔다. 부모님을 최대한 상처 입히려는 못된 의도의 내 모진 말들에 대하여, 언제나처럼 부모님께서 이해해주시고, 나를 내버려두시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날 밤은 좀 달랐다. 내 방문 너머에서 잠시 침묵을 지키시던 아버지께서는 문을 몇 번 쾅쾅 두드리시더니, 이내 열쇠를 가져와 내 방문을 열어젖혔다. 침대에 늘어져 있다가 놀라서 벌떡 일어난 내 얼굴을 손으로 올려치시고는,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하셨다.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길래 이렇게까지 네 엄마 아빠를 막 대하는 거냐. 그래도 우린 널 어떻게든 계속 사랑하려 노력하는데, 언제까지 우리가 네 일방적인 모욕을 참아야 하는 거냐.”
그토록 서럽게 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나는 뺨이 아픈 것도 잊은 채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못내 목 끝까지 울컥이는 감정이 오르며, 나 역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조차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반항이었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낯설고, 우스웠다. 때로는 세상이 너무 쉽고, 때로는 세상이 너무 어려웠다. 기성세대들의 잘못을 비판하는 온갖 대중가요들을 듣고 반항기 가득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만화책과 소설책들을 읽으며, 나는 이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모순은 기성세대의 산물이요, 10대들은 갸륵하고 연약한 피해자일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겁쟁이였다.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모순을 겨냥하면서도, 정작 용기 있게 나설 자신은 없었다. 가장 만만한 이는 곁에 있는 부모님이었다. 내가 아무리 독한 말을 하고 무시를 해도 나를 가장 사랑하며 아껴줄 사람들임을 알기에, 나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모님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그분들의 감정을 난도질해왔던 것이다.
알고 있었지만 외면해왔던 나의 비겁함을 마주하며, 수십 수백 번 곪아 터졌을 부모님의 상처를 목도하며 그날 나는 참 많이도 울었다.
잠들 수 없었던 새벽녘, 아버지께서는 소리 없이 내 방에 들어오셨다. 내 뺨을 손으로 연신 쓸어주시며,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사랑한다 속삭이셨다. 잠들지 못한 나는 깨어있는 기척도 내지 못한 채, 그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연신 사과할 뿐이었다. 그리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더 이상 10대의 치기라는 핑계 아래, 부모님을 괴롭히지 않으리라고.
잔잔히 쌓아왔던 불효의 기억들이 삶의 중간중간 문득 떠오르며 나를 괴롭히고는 한다. 마음의 부채들이 나를 짓누를 때면, 나는 과거의 나를 몹시도 때리고 싶어 몸서리친다. 결코 상환할 수 없을 이 빚을 나는 평생 감내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