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아닌 일에 공연히 긴 상흔이 남을 때가 있다.
이야기 하나. 출산 후 2주 간의 산후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바로 그 날부터, 나는 곧바로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었다. 산후조리원의 침대를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에 안착한 아이는 몇 시간이고 울어댔고, 이유를 알 수 없던 나는 분유를 주다가 젖을 물리다가 안아 어르다가 혼이 나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아이는 지쳐 나자빠질 시간조차 주지 않았고, 그렇게 나는 보금자리에서의 아이와 첫날을 눈물과 피로로 지새워야만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육아휴직 중인 나와 달리 계속 출근해야 하는 남편을 위해 불가피한 각방 생활이 시작되었다. 안방에 아이 침대를 두고 나는 밤낮 없이 아이와 홀로 ‘싸워야만’ 했다. 아기가 울먹이려는 기색만 보여도 심장이 발밑까지 떨어졌고, 아이의 트림이 늦어지면 손목이 나갈 정도로 등을 두드려댔다. 머리를 가득 채운 두통에 토기가 올라와도 토할 시간마저 없었다.
그렇게 지쳐 쓰러져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채 아이와 함께 잠들었던 어느 날 밤, 야근을 끝마치고 퇴근한 남편이 안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람의 기척에 잠이 깨어 눈을 마주한 내게 남편은 온화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과 아이가 이렇게 함께 누워있으니, 너무 보기 좋다.”
만약 소설에서 이와 같은 장면을 보았다면, 나 역시도 아름답고 숭고한 장면이며, 매우 적절한 대사라며 무릎을 쳤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그 순간 여전히 말쑥한 남편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내 옷을 적셨던 분유의 비린내를 맡았다. 분유를 타다가 뜨거운 물에 대여 난 손등의 화상자국을 보았다. 제대로 빗지도 못해 내 얼굴 위 여기저기 제멋대로 내려앉은 머리카락을 보았다.
그리고 울컥, 화기인지 슬픔인지 모를 그 어떤 것이 치밀어 올랐다. 변함없이 빛나는 그 어떤 것과, 갑자기 쇠락해버린 그 어떤 것의 대조를 강렬히 느끼며, 나는 좀 많이 억울했던 것 같기도 했다.
이야기 둘. 그로부터 또 멀지 않은 어느 날, 나는 자정이 넘어 1시간 가까이 소리 지르며 울어대는 아이를 달래느라 얼이 빠져가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이 소강상태에 이르자, 내 귓속으로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TV 속 누군가가 말하는 소리, 청중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남편의 웃음소리.
불과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옥과 일상이 나누어져 있었다. ‘왜 나만’이라는 피해의식과 억울함이 나를 스멀스멀 잠식해가던 그 때, 아이가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게 신호탄이라도 되는 양, 나는 문을 벌컥 열었다.
“이 소리가 안 들려?”
고작 얇은 안방 문 하나. 이 문 하나가 그렇게도 커다란 경계였던가. 안방에서 이루어지는 나의 사투를 아예 모르는 척 하며 일상을 영위하는 남편의 웃음소리가 내 몸을 날카롭게 베는 듯했다. 차라리 모멸감인 듯도 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일상을 영위하는데, 나만 홀로 내 아이와 다른 차원의 공간에 갇혀있다는 데 대한 확인사살이었다.
TV 속 웃음소리와 아이의 울음소리, 그리고 나의 울분과 남편의 당황이 한데 섞인, 야밤의 촌극이자 비극의 현장이었다.
물론 그날 이후 내 생애 본 적 없는 극진한 사과와 함께, 남편도 변했다. 미처 알지 못했다는 핑계는 나를 한 번 더 울컥하게 했지만, 어쨌든 남편의 태도 변화는 나의 울분을 누그러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가끔 나를 울컥하게 하는 그 아무것도 아닌 기억들이 나를 의아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왜 그렇게나 분노했던가. 그리고 왜 아직까지도 분노하는가.
어느 정신의학자가 분석한 분노 유발 심리기전에 대하여 읽은 적이 있다. 인간관계, 자기 보호본능, 자기중심적 사고, 가치관의 차이, 습관, 반복성, 착한 사람 콤플렉스, 낮은 자존감 등 8가지를 제시했는데, 나는 그 중 자기중심적 사고와 낮은 자존감을 떠올렸다.
나는 어쩌면 나의 상황을 일종의 콤플렉스로 여겼던 것이 아닐까. 다른 이들은 꾸준히 당당한 삶을 영위해나가는데, 나 홀로 사회와 일상에서 괴리되어 도태되어가고 있다고 여긴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평소라면 좀 더 참고 이해할 수 있었던, 혹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넘길 수 있었던 모든 상황들을 곱씹으며 분노의 불씨를 펴고, 또 펼치며 나의 괴로움을 호소했던 것은 아닐까라고.
어쨌든 나는 여전히 크고 작은 일에 분노하고 있고, 이전보다는 좀 더 분노의 표출 빈도가 늘었다. 때때로 분노가 나의 감정을 갉아먹을지언정, 적당한 표출은 긍정적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음을 조금은 깨달은 까닭이다. 물론 그 안에 ‘나만 이 감정 안에 갇혀있을 수는 없지’라는 마음이 아주 조금, 몇 스푼쯤 담겨있음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