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 속 불편의를 마주하다.

by 레메디오스

기저귀가 바닥났다.


보유량을 미리 확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며칠 전 온라인 구매 사이트를 통해 주문도 마쳤다. 그럼에도 기저귀 부족 사태에 직면하고 만 것은, 배송사의 사정으로 배송이 지연되고 있는 차에 아이가 장염을 앓으면서 기저귀 사용이 대폭 늘어난 탓이다. 심지어 내가 사는 곳은 총알배송이나 새벽배송 권역에도 속하지 않은 터라 아무리 서둘러 온다 한들 바로 다음날까지 오기는 영 요원하다 싶다.


현재 시각 밤 10시 20분. 대형마트도 이미 영업을 마친 이 때, 대안은 천기저귀뿐이다. 그러나 괄약근을 조절하지 못해 끊임없이 대변을 쏟아내며 우는 아이를 밤새 돌보며, 천기저귀 빨래까지 하려 생각하니 마음이 매우 선뜩하고, 아득하다. 어디서 기저귀를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 편의점을 떠올린다. 기저귀와 물티슈에 쓸리는 엉덩이가 따가운지 또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신랑의 품에 맡기고, 나는 누가 잡을 새라 쏜살 같이 집을 나선다.


편의점은 현대식 만물상 아닌가. 그간 무심코 스치기만 했던 진열대의 풍경들을 머릿속에서 복원해본다. 두루마리 휴지, 티슈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여성용품, 세면도구들까지 종류별로 갖춰놓지 않았던가. 좀 더 기억을 더듬어보니 언젠가 진열되어 있는 기저귀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 것도 같다. 재빨리 집어 집으로 돌아가야지, 등 뒤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해 뛰는 듯 나는 듯 바삐 걸음을 옮긴다.


첫 번째 편의점에서는 실패다. 괜찮다. 이 아파트 단지에는 총 4개의 편의점이 있으므로.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편의점에서도 기저귀는 구할 수 없다. 네 번째 편의점으로 향하는 길, 마음이 조급하여 한밤중의 서늘함에도 등 뒤 식은땀을 느낀다. 그러나 마지막 기대와 희망도 산산조각이 귀가하는 길, 바쁘게 움직이던 다리가 천근만근 추를 매단 듯 무겁다.


편의점의 정의가 무엇인가. 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24시간 영업하며, 무려 2,500여 개의 일용잡화를 취급하는 곳 아니던가. 밤을 새우는 일이 많은 내게 편의점이란 언제든 원하는 것들을 구할 수 있는, 든든한 뒷배였다. 그러나 어째서인가, 엄마가 됨으로써 편의점의 이면, ‘불편의점’의 모습을 직면하고 마는 것은. 2,500여 개의 일용잡화 중 아기용품의 존재는 어디에 있냐는 말이다.


추후 알아보니 일부 대형 편의점에서는 기저귀, 분유 등 아기용품을 취급한다고 한다. 그러나 편의점 대다수는 소형으로 운영된다. 그렇다면 결국 편의점이 제공하는 24시간 편의에 내 아기의 영역은 앞으로도 없을지 모른다는 말이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편의의 이면’이 갑작스레 눈에 들어오는 일이 있다. 편리한 줄로만 알았던 것이 어느 날 ‘불편’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사람이 처한 상황이나 위치가 바뀌면 으레 그렇다.


수년 전 인상 깊게 보았던 한 통신사의 광고가 생각난다. 모든 것이 ‘터치’ 한 번이면 해결되는 편안한 세상, 오히려 불편함에 내몰린 사람, 바로 시각장애인이 주인공이었다.


그렇다. 휴대폰의 발달은 손으로 꾹꾹 누르는 키패드에서 화면 ‘터치’로 이어졌다. 액정 속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만지기만 해도 원하는 화면으로 이동하거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웬만한 휴대전화들은 이러한 터치스크린으로 출시되는 요즘, 시각장애인들은 오히려 편의에서 불편의로 내몰린다.


최근 식당이나 편의점 등으로 확산되는 키오스크도 그렇다. 시각장애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전자 시스템에 익숙지 않은 노인들에게는 높고 단단한 벽일 뿐이다. 그나마 점원을 찾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어려운 경우에는 주문을 포기하고 시대에 뒤쳐짐을 절망하며 가게 문을 나선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디지털 천국에서 편의를 만끽하는 동안, 어떤 사람들은 디지털의 영역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당연하게 누리는 편의의 뒷면, 발견하지 못해 외면하고 마는 사각지대의 영역을 생각해본다. ‘편의’라는 말 뒤에 숨은 무책임을 떠올려본다. 편의를 있는 대로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의 무감각을 깨닫는다. 예상치 못한 편의 속 불편의를 마주하며, 나 또한 당장이라도 그 사각지대에 속할 수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결국 완전한 편의도 불편의도 없음을, 고작 종이 한 장 차이, 우리 모두 끝없이 그 사이를 넘나드는 과정임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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