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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메디오스 Oct 24. 2020

4. 아이들만큼, 부모들도 불안하다.

[학원군상] 학원강사의 눈으로 바라본 아이들의 치열한 생존기

 학원의 반 배정은 철저히 성적 지상주의를 따릅니다. 입학 시 시험을 보고, 성적에 따라 반을 분배하지요. 흥미롭게도, 제가 일하는 학원에서는 우수학생들의 반에는 의대진학반, 치대진학반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아래로는 정규반이 또 수준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분류되어 있지요. 이과 지망의 아이들 진로 대부분이 의사라는 것을 반영한 결과일 겁니다.      


 반을 배정하고 나면, 십중팔구 어머님들의 추가 문의가 뒤따릅니다. 대개는 의대, 치대반에 들지 못한 아이들의 부모님들이죠. “우리 아이가 어떤 점이 부족한가요?” “시험을 한 번 더 볼 수는 없을까요?”라는 질문부터, 때로는 다른 아이와의 비교 질문도 심심치 않게 들어옵니다. “우리 아이의 친구는 의대반이던데, 왜 우리 아이는 정규반인가요?” 어머님들의 마음이 더는 상하지 않도록 달래는 것도 중요한 업무입니다. 설령 어머님들께서 이미 답을 알고 계시더라도 말이지요.      


 아이들은 늦으면 새벽 2시까지도 학원에 남아 공부합니다. 모두가 잠이 든 시간까지도 학원 셔틀버스는 피곤에 지친 아이들을 태운 채 새벽을 달립니다. 시험기간이 되면 부모님들께서는 학원으로 전화를 겁니다. 학원이 몇 시에 문을 닫는지, 혹은 몇 시까지 아이가 학원에 있어도 되는지 확인합니다. 그리고 강사들에게 당부합니다. 우리 아이가 끝까지 남아 공부할 수 있게 해 달라고요. 최대한 많은 시간 앉아서 공부할 수 있도록 숙제를 최대한 많이 내 달라, 어려운 문제들을 많이 내 달라, 요청합니다.      


 학교란 학생들이 경쟁하는 장이기도 하지만, 부모님들의 경쟁의 무대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자녀란 부모님들의 꿈을 투영하는 존재들이지요. 때때로 자녀란 부모의 미래이자, 인생의 전부입니다.      


 한국 전통사회에서 자식이란 가문의 명맥을 잇기 위한 필요조건이었습니다. 세습적 왕조에 의한 지배 사회였으며, 경제적으로 노동력에 의존한 농경사회였기에 자식의 존재란 가족 규모의 확장과 신분의 유지에 기여했습니다. 즉 공리적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겁니다. 특히 대가족 제도 속에서 자녀교육은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대개 통일된 가치관을 지닌 사회 속에서, 부모들은 별다른 혼란 없이 부모의 역할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다릅니다. 핵가족화로 인해 가족의 분위기는 변화하고, 정보의 홍수와 자본주의의 확산, 남녀 성 역할의 변화 및 통합 등 사회도 급격히 변화했습니다. 따라서 대다수 부모들은 ‘학교와 가정 내에서 수행하는 교육만으로는 내 자식이 성공할 수 없다’는 사고를 공고히 하게 됐습니다. 특히 자본의 힘이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이 사회에서, 자녀들의 성공만이 신분 상승의 지름길이며, 자녀의 미래를 행복하게 해 주리라 굳게 믿습니다. 이것이 자연스레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주변 비교 대상들에게 조금이라도 뒤쳐진다는 기분이 들면, 내 아이가 시험에서 1~2등이라도 뒤처지면 불쾌하고 초조한 기분이 되는 것일 테지요.      


 영화 ‘위플래시’를 생각합니다. ‘채찍질’이라는 뜻의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일부 부모님들로부터 극찬을 받았습니다. 욕하고, 때리고, 인격적인 모독도 서슴지 않는 플레처 교수의 교육으로 앤드류가 천재 드러머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어떤 부모님들은 “지금은 다른 건 다 참고 공부하렴.”, “이건 사랑의 매란다.”, “내가 혼내는 건 다 널 위해서야.”와 같은 대사들을 정당화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영화 속에서 주인공 앤드류는 결과적으로 플레처 교수가 원했던 ‘경지’에 오르는 데 성공했으니까요.      


 그러나 그 이면에는 플레처 교수의 강압적인 교육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앤드류 역시 비인간적인 성공 지향형 인간으로 변모해가지요. 성공만을 향한 질주 뒤에는 한 인간이 지닌 인간성의 추락이 있었던 겁니다.      


 영화 ‘사도’는 어떤가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대로, 사도세자는 8일 간 뒤주에 갇혀 굶주림에 시달리다 사망합니다. ‘임오화변’이라 불리는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강압적인 부모에 시달리다가 미쳐가고, 종국에는 생명마저 빼앗긴 한 인간의 추락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사들을 통해 일부 부모님들께서 이 영화를 본 후 자녀들에게 “부모 말을 안 들으면 저렇게 된다.”고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맛이 참 씁쓸했습니다.      

 예전에는 쯧쯧 혀를 차며 학부모들의 교육열과 왜곡된 가치관을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교육열 이면에 보이는 학부모들의 처절함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무엇이 어머님들을, 아버님들을 이렇게 만들었나-안타까운 감정이 앞섭니다.      


 그러니 참, 어려운 일입니다.      


 부모님들의 불안도 다독여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아주 조금 다른 또래들보다 뒤처진대도, 아이의 성장을 믿고 아이의 속도에 맞춰 함께 가실 수 있도록 안내해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이 곳에서 아이들과 부모의 불안한 투쟁을 지켜볼 뿐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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