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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메디오스 Mar 14. 2021

윤희에 대해 말하자면.

 지인에게서 몇 년 만에 걸려오는 전화란, 대개는 나름대로의 목적을 지니는 법이다. 30대 중후반이라는 내 나이대를 생각할 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결혼, 부고 등의 경조사일 것이며, 아마 그 다음은 ‘돈 빌려 달라’, ‘담보 서 달라’라는 요청일 것이다.


 다만 예상치 못한 경우가 있다면, 십수년 간 죽었다 살았다 소식도 없다가 갑자기 안부를 물어오는 친구의 등장이 그 중 하나이지 않을까.      


 “어떻게‥. 오랜만이다.”

 “응. 잘 사는지 궁금해서.”

 “나야 뭐‥. 넌 어때?”


 수 년 만에 듣는 친구의 목소리는 내 기억 속 어드매에 자리한 낡은 문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 문이 열리는 건 내 의지와는 무관한 일이다. 그 문을 비집고 과거의 시간들이 밀려들어와 현재를 뒤덮는 것 또한, 불가항력의 일이다.


 이 이야기는 그와의 첫 만남 전부터 풀어가는 것이 적당하지 않을까. 살아온 날들을 조각내어 색깔들로 묶어낼 수 있다면, 단언하건대 내 고3 시절은 검정이었다. 매일 새벽까지 공부하고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는 ‘고삼’이라는 이유로 어머니께 야식을 허락받은 나는 스트레스를 매개로 식욕에 굴복당했다. 하루 최소 4~5,000칼로리를 섭취하다보니 몸이 불어나지 않을 턱이 없었다. 여름방학이 지나자 나의 몸은 80kg까지 불어났고, 170cm에 육박하는 키와, 여드름 피부, 고도근시 시력을 보완하기 위한 뿔테 안경, 칙칙한 남색 교복들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나를 거대한 멧돼지처럼 보이게 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대입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급우들에게 거대하고 소심한 나는 참 좋은 먹잇감이었다.      


 “와, 오크 지나간다!”

 “쟨 저렇게 먹으면서 거울 보면 안 창피한가?”

 “와, 내가 저렇게 생겼으면 그냥 죽겠다.”      


 내 인생 통틀어 가장 많은 악의에 부딪히며, 나는 다행스럽게도 어느 순간 입맛을 잃었다. 수능이 끝날 무렵엔 25kg 넘게 살이 빠져 몇몇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였다. 드라마 속에서나 볼 법한 다이어트 성형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는 가늘어진 턱선과 드러난 이목구비, 매끄럽게 떨어지는 종아리와 발목에 충만함을 느꼈다. 어둡기만 했던 고등학교를 벗어나 이제 밝은 빛으로 나아가리라 다짐하며 부모님 카드로 옷과 화장품, 신발들을 가득 사 들였다. 이전까지는 생각도 못 했던 미니스커트나 핫팬츠를 입고, 높은 하이힐을 신고 온종일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시선을 구걸하기도 했다.   


 윤희를 만난 건 나의 그런 나르시즘이 절정에 달할 시기였다. 그러니까, 학과별 임시소집일 말이다.

 여타 다른 학과들과 달리, 서른 명에 불과한 사범대 국어교육과의 신입생은 참으로 소박했다. 나는 다시는 무시나 경멸 받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기선제압용’ 패션으로 분출하는 중이었다. 빨간 색 하이힐과 검은 색 퍼 재킷, 그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 스타일을 따라 새빨간 아이섀도를 눈두덩이에 가득 바른 채로, 그러나 맨 뒷자리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내 태도만큼은 조신 그 자체였다.      


 “와, 너 섀도 대박. 엄청 어울려.”      


 그 아이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으나, 활발한 데가 있었다. 본인의 톤보다 한두 톤 높여 노래하는 듯 울렁대는 그 목소리에 내가 고개를 든 것은, 실로 오랜만에 내가 마주치는 호의가 담겨있었던 탓이다.      


 “진짜?”

 “응응. 나 그런 색 섀도 해 보고 싶은데 눈이 작아서 못 하거든. 좋겠다.”

 “나도 처음인데…. 사놓고 썩히다가 한 번 해 봤어.”

 “잘 했어, 잘 했어. 아, 너 이름이 뭐야?”

 “난 J. 넌?”     


 윤희. 그녀가 바로 윤희였다. 화장기 없는 밝은 갈색 얼굴에, 아직 정리하지 못한 눈썹이 명랑했던 아이. 다홍빛 입술과 분홍색 맨투맨이 잘 어울렸던 그녀.       


 “J 너는 현역이야? 아, 혹시 그…. 1년 더 하셨으면….”

 “아, 나 현역, 현역!”

 “다행이다. 나 자연스럽게 반말하다가 순간 쫄았잖아.”      


 10년도 더 된 절친처럼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두 소녀의 목소리가 멀어지며, 이제는 활기를 잃어버린 서른여섯 나이 친구의 목소리와 마주하는 나.      


 “네 목소리 아직도 좋다야.”

 “갑자기 뭐 뜬금없는 소리래.”

 “아니, 그냥 좋다고. 나의 성의를 담은 칭찬이지.”

 “아이고, 받아드리겠습니다요.”      


 실없는 소리들을 하며 이야기의 중심을 맴돌다가, 윤희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J야. 나 이혼할 것 같아.”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결혼과 이혼을 다루는 온갖 글마다 언급되는 톨스토이의 이 명문(名文)은, 그러나 분명 통용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윤희는 그런 사람이었다.


 영혼의 반쪽으로 서로를 맞이한 이후, 우리는 하루 온종일을 붙어 다녔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공유함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안겨주시는 용돈을 윤희와 먹고 노는 데 모두 탕진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윤희가 내게 그 대가로 돌려준 것은 ‘이야기’였다. 웬만한 일일 드라마보다 훨씬 재미있을 거라며 들러주었던, 그녀의 소소한 불행들.      


 “우리 아빠 공사장 뛰셔. 근데 요즘 불경기라 일주일에 한 번 일 나가기도 힘드시대.”

 “그럼 어떡해?”

 “그래서 내가 몸 바쳐 알바를 하잖니.”


 수업이 끝나면 부리나케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가는 그녀. 오전 수업들이 모두 끝난 후 학교 매점에서 라면과 오뎅을 늘어놓고 이유를 묻자 담담히 펼쳐놓던 그 말들.


 세 자매 중 맏딸인 윤희는 자신이 맏이라는 것을 인식한 순간부터, 부모님을 대신해 두 살, 세 살 터울의 동생들을 돌보아 왔다고 했다. 불규칙한 아빠의 수입, 자신과 동생들이 한 살 한 살 나이를 들어갈수록 늘어가는 지출, 그리고 동생들의 욕구들. 윤희는 조금이라도 더 사람답게 살기 위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때마다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늘려나갔다.     

 

 “중학교 3학년 때 편의점부터 시작했어. 청소년 알바가 불법이니 뭐니 말이 많았는데…. 그래도 사장들 입장에서는 워낙 싸게 먹히는 인력이니까. 대신 나도 이익은 많았어. 삼각김밥 같은 거 유통기한 임박한 걸 나한테 주실 때도 있었거든. 그거 하나가 얼마나 아쉬운지. 가끔 편의점 닭다리라도 얻어 가면 동생 녀석들이 나를 신처럼 모셨다니까.”     


 동네 서점의 점원, 마트 판촉 판매원, 과외 교사, 신문 배달까지. 고작 스무 살짜리 윤희는 우리 과 알바의 신이었다. 그러나 일주일에 두세 개씩 알바를 해도, 윤희가 자기 자신만을 위해 돈을 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핸드폰 속 사진들로 만나 뵈었던 그녀의 어머니. 핑크 톤의 청순한 피부 화장과 진하게 눈을 감싼 아이라인, 길다랗게 빠진 속눈썹과 풍성한 갈빛 머리칼은 쉰이 넘은 그녀의 나이가 무색하도록 세련되어 눈이 부셨다. 하얗게 빛나는 그녀의 위·아랫니를 감싼 분홍빛 입술은 10만원에 육박하는 명품 립스틱의 솜씨였으며, 솜사탕처럼 부푼 머리칼은 회당 10만원에 육박하는 미용 클리닉의 결과물이었더랬다. 탱탱한 젤라틴 같은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매월 들어가는 돈만 40만원에 육박했다. 윤희가 뼈 빠지게 일해서 통장에 밀어 넣은 돈들은, 쌓일 새도 없이 그녀의 어머니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고스란히 바쳐지고 있었다.      


 “자기가 그렇게 늙은 건 나랑 내 동생들 탓이라는 거야. 우리 셋 키우느라, 우리 아빠 뒷바라지하느라 개고생하며 늙었으니 내가 당연히 엄마의 미모를 되돌려야 한다는 논리시지.”

 “야, 그런 게 어디 있어. 어머님, 아버님께서 좋아서 널 낳아주신 건데….”

 “더 무서운 건 말야. 내 동생들도 엄마를 닮아간다는 거라니까.”     


 양육보다 본인의 피부결과 머릿결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 엄마. 그런 엄마를 보는 청소년기의 두 아이. 언젠가부터 아이들의 핸드폰 검색어는 성형 관련 용어들이 가득 들어차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공부에 그다지 큰 뜻이 없던 아이들은, 인터넷 성형 카페에 가입해 성형 후기들을 교과서나 참고서보다도 정독하고, 성형 견적들을 역사 도표들보다도 열심히 비교분석했다.      


 “애들이 나한테 손만 안 벌리면 좋겠는데, 반드시 벌릴 것 같아서 뒷골이 땡긴다. 그러면 진짜 찢어서 죽여 버릴 거야.”     


 ‘케세라세라, 흘러가는 대로’ 가곡을 흥얼거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우뚝 서 있던 윤희는, 때때로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섬뜩한 말을 터뜨리며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그녀의 예상치 못한 말들이 점점 더 섬뜩하고 잔혹해질수록, 나는 슬픈 기분에 빠지곤 했다.


 윤희는 내가 기억하는 수많은 순정만화 속 주인공 같은 사람이었다. 이미라, 한승원, 신일숙…그녀를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체로 상상해보곤 하는 나날들도 있었다. 가녀리지만 억척스럽고, 불행하지만 항상 웃는 그녀들. 순정만화의 환상을 꿈꾸게 해 주는 그녀가 나는 좋았다. 그녀와 우정에 매달리면서 다른 인간관계에서 기행(奇行)을 일삼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나에게 교제를 청해오는 몇몇 사람들에게, 내가 내건 조건은 나를 ‘이상한 아이’로 여기게 하기에 충분했다.      


 “무조건 너랑 셋이서 놀아야 한다고 했지.”

 “야, 데이트는 너랑 남친이랑 둘이 해야지.”

 “뭐, 안 되면 나랑 안 사귀면 되지. 난 너랑 노는 게 재밌는 걸 어쩌라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그저 윤희와 보내는 시간들이 소중했다. 또한 그녀도 그러기를 바랐다.


 4년간의 대학생활 중 그녀가 가장 환하게 웃었던 시기가 있었다. 새벽이 한창 깊어질 무렵, 편의점 아르바이트 중이었던 그녀는 ‘번호를 따였다’고 했다. 조금은 통통한 얼굴과 체형에 키는 보통이지만 사람을 설레게 하는 목소리를 가졌다는 남자.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지더니 급기야 ‘연인 관계’로 정착했다.      


 “애인 말고 연인이란 말이 더 좋아. 애인은 몸이 통하는 관계고, 연인은 마음이 통하는 관계래. 우리는 운명처럼 마음이 통했으니까.”      


 윤희는 자신의 남자친구를 왕자님, 혹은 구원자처럼 묘사했다. ‘불행만 차곡차곡 쌓여온 자신의 인생에 처음으로 드리워진 한 줄기 빛, 척박한 땅을 뚫고 힘겹게 숨 쉬는 한 떨기 꽃에게 쏟아지는 빗줄기, 멸망의 구원자.’ 세기말의 미사여구들을 늘어놓는 윤희의 목소리는 낯설었다. 그 남자의 무엇이 그렇게나 윤희를 끌어당겼는지조차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윤희보다 7살이나 많았고, 아직 백수였으며, 공무원 준비를 하겠답시고 도서관과 학원에 다닌다면서 밤마다 윤희를 이끌고 값싼 모텔을 전전하곤 했다. 종종 윤희의 연락을 받지 않았으며, 윤희와는 본 적 없는 영화를 “너랑 봤던 영화”라고 이야기하거나, 윤희와 가지 않은 곳을 “너랑 거기 갔을 때”라고 말하는 등 무신경했다. 윤희는 이에 대해 ‘인기 있는 사람’의 숙명이라며 합리화했다.


 ‘사랑에 빠지면 바보가 된다더니’


 두 사람의 미래를 상상하면서, 아무리 합리화를 한 대도 이 이야기의 끝은 아름다울 리 없으리라는 이상한 확신에 잠식되는 날도 많았다. 그는 순정만화 속 남자주인공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으므로. 그럼에도 그의 애정만을 갈구하는 윤희에게, 나와의 우정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것일 수밖에 없는가 싶어 분노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했다.


 두 연인의 관계가 1년을 넘어갈 즈음, 윤희는 22살에 접어들었다.      


 “나, 임신했대. 2개월째야.”     


 그리고 그해 1월 1일, 윤희는 새해 덕담으로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식을 전했다.


 22살이라는 나이와 ‘임신’이라는 단어는 매우 동떨어진 것이었다. ‘이제 성인인데 뭐가 문제냐’는 생각과 ‘아무리 그래도 20대 초반인데’라는 우려가 끊임없이 충돌했다. 그러나 나의 갈등은, 뱃속 아이를 매개로 영원한 행복을 꿈꾸는 윤희를 보며 순식간에 희석되는 과정을 거듭했다. 가족의 굴레에서 고통받아온 그녀가 새로운 가족을 통해 치유받는다는 이야기는, 동화나 소설이었다면 핍진성 충만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나 또한 스스로를 설득해나갔다. 그러나 그녀의 임신은 그녀의 ‘그 이’와 그 가족들에게는 축복이 아닌 치명상이었던 모양이다.


 임신 3개월에 들어설 무렵, 그녀는 ‘그 이’를 통해 ‘그 이’의 가족들의 초대를 받았다. 윤희는 소녀처럼 설렜다. 아울렛을 방문해 예쁜 원피스와 가디건을 사고, 마스크팩을 잔뜩 사서 매일 밤마다 얼굴를 덮었다. 마스크팩을 한 탓에 웅얼대는 발음으로 희망찬 미래를 잔뜩 떠드는 그녀의 목소리를 전화기를 통해 들을 때마다, 나는 ‘행복의 전염’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결혼식은 졸업하고 하는 게 좋겠지? 웨딩드레스를 입고, 아가를 안고 식장에 들어가는 모습도 되게 멋질 것 같지 않아?”

 “근데 아가가 주례사 듣다가 막 울어버리면 어떡해. 그냥 어머님께 맡겨둬.”

 “기쁜 날인데 다들 웃겠지. 아가가 다 컸을 때 그날 사진이랑 비디오 보여주면 엄청 재밌어할 것 같은데?”

 “쪽팔려서 너 잘 때 그 비디오랑 사진 다 태우려고 할 걸?”      


 방문 당일, 윤희는 미용실에서 드라이까지 하며 투지를 불태웠다. 동생들도 좀처럼 먹기 어려운 한우를 들고, 시누이를 위한 장미꽃다발도 샀다. 미스코리아 대회라도 나가는 듯 며칠 전부터 설렜던 마음의 소리들이 심장을 터뜨릴 듯 울려댔다. 윤희는 엄하지만 너그러우신 시어머니, 자애로우신 시아버지, 티격태격하지만 종종 마음이 맞는 시누이와의 새로운 삶을 꿈꿨다. 평범한 행복, 드라마 속 주연들의 풍파를 빗겨나간 평범한 조연 가족들, 윤희가 기대했던 것은 딱 그런 그림이었을 것이다.


 행복의 종착역을 향한 티켓은 주연들만의 권리이다. 또한 신이란 커다란 기대를 배반하는 데 행복을 느끼는 사이코패스일지도 모른다.


 윤희는 그날, 시누이가 되리라 기대했던 사람에게 머리채를 붙잡혔다. 시어머니가 될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노인은 윤희에게 “내 아들 망칠 년”이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장미꽃다발은 시어머니께 미소를 안겨드리는 대신 윤희의 얼굴과 손에 생채기를 냈다. 큰맘 먹고 돈을 들여 만든 머리스타일은 주연에게 응징당한 악역의 몰골마냥 비참해졌다. 그러나 윤희를 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것은, ‘그 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망가져가는 윤희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와중에 한우는 노인의 손에 들려 사라졌다는 게, 그날의 유일한 웃음소재였다고 윤희는 생각했다.  


 수술대에 누울 때까지 윤희의 의견은 손톱만큼도 반영되지 않았다. 양가의 이해관계에 따라 윤희는 숨소리조차 들어보지 못했던, 엄마 살결조차 만져보지 못했던 소중한 존재를 잃고 말았다. 그 자리에 아이의 아빠라는 존재는 없었다. 수술비 명목으로 윤희의 계좌에 30만원을 이체해 준 것이 전부였다.


 그 날, 며칠 간 안정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 따위 아랑곳 않고 윤희는 소주 3병을 입에 털어넣었다. 매운 컵라면을 제대로 익히지도 않은 채, 면발을 입 안에 억지로 우겨넣으며 다짐하듯 반복했다.

     

 “미안해, 진짜 미안해. 제발 다시 와 줘…다음엔 꼭 지켜줄게. 정말 미안해…”


 고작 며칠만에 미라처럼 말라버린 윤희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비어있는 술잔을 채워주는 것뿐이었다.


 단발성의 에피소드로 끝나길 바랐던 이 비극은, 그러나 누군가 억지로 연장시키는 장편 소설처럼 지리하게 이어졌다. 다신 볼 일 없으리라 여겼던 두 여자가, 이번에는 학교로 찾아온 것이다. 강의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 두 사람은, 윤희가 강의실 문을 나서자마자 머리채를, 옷을 붙잡고 마구잡이로 흔들어댔다.      


 “네가 감히 우리 집 핏줄을 지위?!”


 노인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복도로 울려 퍼지고, 우리 과뿐만 아니라 다른 과 사람들까지 구경하러 밀려들면서 복도는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아이를 지우라며 윤희를 괴롭히고 압박했던 게 누구인데, 이제 와서 윤희를 죄인 취급하며 세상 끝난 듯 울부짖는 노인. 나도, 윤희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혹시 저 여자들이 미친 건 아닌가, 아니면 이 광경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미친 건가.


 경비원들이 달려와 그들을 윤희에게서 떼어냈다. 누군가에게서 소식을 들으셨을 주임교수님도 함께였다. 아들이라도 잃은 어미마냥 주저앉아 울부짖는 노인, 바닥에 앉아 함께 흐느끼는 누나, 넋이 나가 울지도 못한 채 멍하게 서 있는 아이 잃은 어미, 이 모든 걸 주말드라마 보듯이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는 나, 수군거리는 사람들.


 윤희는 이후 며칠 간, 학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미 학과 내에서는 진실과 거짓들이 혼재하여 사람들의 안줏거리로 소비되었다. 나에게도 물어오는 이들이 간혹 있었으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내가 아이를 지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대. 자기들한테 매달리면 못 이기는 척 받아주려고 했었다더라.”      

 새벽바람이 차가운 어느 날 겨우 닿은 통화. 잘 지내느냐고 묻는 내게 윤희는 대뜸 그렇게 말했다. 엄마, 아빠는 집안 망신이래. 동생들도 내가 창피한가봐. 그러면서도 내 알바비는 날짜 딱 맞춰서 가져가시더라. 사람이 무서워졌어.      


 “그 새끼랑은, 연락됐어?”

 아니. 내 전화 안 받아. 아, 딱 한 번 오기는 했어.      


 어느 삼류 로맨스 소설 속 주조연들의 대사들이, 새벽바람을 타고 넘실대며 흩어져갔다. 언제 학교에 올 건지, 우리 한 번 만날 수 있을지 묻는 내 말들에, 윤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잠시 머리 좀 비울래.      

 “내가 내 불행의 스탯들을 다 찍는 날, 꼭 너한테 젤 먼저 말해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통화 종료음과 함께 이별했다.


 나는 윤희가 곁에 없는 채로 4학년 1학기를 시작했다.


 사범대생의 4학년이란, 고3으로의 회귀에 지나지 않았다. 오직 4학년들만을 위해 제공되는 교내 독서실 안의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틀에 박힌 생활을 영위해나갔다. 강의를 듣고, 쉬는 시간이면 테이프 강의를 듣거나 기출문제를 풀고, 이를 두세 번 반복하다가 모든 강의가 끝나면 밤 11시, 자정, 새벽까지 독서실에 앉아 공부했다. 견딜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이 지루한 나날들이 나는 괜찮았다. 공부를 할 때면 윤희를 떠올리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친구들과 시답잖은 이야기를 할 때도 나는 윤희를 떠올렸다. 윤희를 떠올리지 않기 위해, 나는 더욱 더 열심히 공부에 매달렸다. 한 달, 두 달이 지나가며 공부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고사장에 들어갈 때까지 절대로, 윤희 소식이 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이대로 윤희와 완전히 멀어지기를 바랐다.

 마지막 여름방학을 목전에 두고, S로부터 연락이 왔다. S는 과 동기로, 종종 조별 과제를 하거나 그룹 스터디를 하며 우정을 쌓아오던 사이였다. 나와 윤희를 국어교육과 제1호 커플이라고 부르며 내심 부러움을 표현하기도 했던 그. 그러나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씨-근쌔-근 불규칙한 숨소리는, 여느 때와는 다름을 직감하게 했다.      


 “나 윤희 만났어.”

 “윤희?”

 “나한테 어제 전화했거든. 꼭 만나고 싶다고 해서, 오늘 딱히 일도 없어서 오전 수업 끝나고 만나러 갔어.”      

 씨-근쌔-근씨---근-쌔근. 불규칙한 숨소리가 내 숨으로까지 옮겨져왔다.     

 

 “응응. 뭐랬는데?”

 “그리고 오늘 새벽 4시 넘어서야 겨우 빠져나왔어.”

 “응? 계속 같이 있었다고?”

 “걔 미쳤어. 처음 보는 건물로 끌고 갔는데, 거기 다단계였어.”

 “뭐라고?”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못 가게 하면서 계속 말을 시키고 이상한 이야기들을 하는데…. 걔도 같이 그랬어.”

 “….”

 “걔가 나한테 어떻게 그래….”      


 지금도 바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며, 윤희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 같다며 무너지는 S의 목소리. 나는 그녀를 다독이며, 윤희를 떠올렸다. S의 이야기 속 윤희와 내가 아는 윤희는 접점을 느낄 수가 없었다. S는 알고, 나는 모르는 동명이인의 누군가가 아닐까. 정말 윤희가 맞다면,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반년여 간 그녀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나는 핸드폰을 열고, 한동안 누르지 않았던 윤희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몇 번이고 통화음이 울렸지만, 결코 응답은 없었다.


 방학을 앞둔 며칠 간, 과 내부에서는 윤희의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피해자’는 S뿐만이 아니었다. 윤희와 친분을 쌓았던 서너 명의 동기들이 윤희에게 이끌려 그곳으로 갔거나, 갈 뻔했음이 드러났다. 동기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윤희가 미쳤다더라, 윤희 집이 망했다더라, 윤희가 이제 학교 안 다닐 생각이라더라, 실체 없는 낭설들이 떠도는 가운데, 내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만이 떠올랐다.


 나라면 윤희를 위해 무엇이라도 감수했을 텐데. 그것이 다단계든, 사이비든, 그 무엇이든. 왜 나한테만큼은 연락하지 않았을까. 끊임없이 묻고 싶었지만, 윤희는 결국 나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흐르면서 윤희에 대한 이야기는 잠잠해지고, 졸업과 함께 윤희의 기억도 희미해졌다.


 나는 다만, 그 이후로도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았다. 10년이 지나고, 또 몇 년이 지나도 같은 번호만을 고집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다시 윤희가 나를 찾으리라는 예감이 남아있었던 탓이다. 카카오톡이 활성화된 이후, 프로필 사진을 통해 그녀의 소식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그녀의 프로필은 언제나 기본설정이었다.


 “너 결혼했었어?”

 “응. 네가 아는 그놈이랑. 결국은 그렇게 되더라고.”      

 노인네가 위암 4기였다는 말을 시작으로, 윤희는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냈다.


 중독 수준으로 성형수술에 매달리는 어머니,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조차 일을 얻기 힘들어 방황하면서 스트레스를 가족들에게 풀기 시작했던 아버지, 얼어붙은 집 안 분위기가 싫어 밖으로 나돌기 시작하던 동생들. 그리고 계속 생각나던 아기. 성별조차 모른 채 떠나보내야 했던 아기.


 윤희는 뭐라도 할 것이 필요했다. 매달릴 무언가. 지금 당장 아무 것도 떠오르지 못할 만큼, 자신을 옥죄일 그 무언가가 있다면 무엇이든 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보냈을 즈음, 그이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고 했다. 네가 돌아와 줬으면 좋겠다, 너를 잊을 수 없었다, 그런 달콤한 말들과 함께. 안식처를 찾아 헤매던 윤희는 결국 그이의 품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노인네가 아프니까, 자기 대신 간병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지. 돈 안 들이고 말야.”      


 오늘 내일 한다던 시어머니는, 그렇게 무려 5년여를 버텼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경기도 소도시의 산업공단에서 경리로 일하며 돈을 벌고, 집안일을 하고, 밥을 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시어머니 댁으로 찾아가 청소를 해 드리고, 밥을 해 드리며 윤희 또한 그렇게 버텼다. 내일 바로 죽을지도 모르는데 제주도 다녀와야 하지 않겠냐, 일본 한 번 갔다 와야 하지 않겠냐, 캐비어는 먹어봐야 하지 않겠냐며, 시어머니는 윤희를 볶아댔다.      

 “네 남편은 뭐했는데? 아니, 막아줘야 하는 거 아냐?”

 “애초에 그럴 목적의 결혼이었는데 뭐. 자기가 편했겠지.”      


 그렇게 겨우 겨우 시어머니의 임종을 맞이하고 윤희가 한시름 돌릴 때, 윤희의 남편은 베트남으로 장기 출장을 떠났다. ‘수년 간 어머니 간병을 하느라 제대로 쉬지를 못했으니, 이참에 베트남에서 힐링 좀 하겠다’는 이유로. 홀로 떠났던 그는, 몇 달 후 둘, 아니 셋이 되어 돌아왔다.      


 “이미 그 여자 배는 불러왔고, 남편은 완고하고. 나도 뭐, 지쳐가고…. 그렇게 된 이야기야.”


 아마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였을 것이다. 한 인물이 쿠키상자에 빗대어 인생론을 펼친 기억이 머릿속 페이지 한 편에 남아있다. 인생이란 쿠키상자와 같아서, 맛있는 쿠키와 맛없는 쿠키가 마구 마구 섞여있다고. 처음부터 맛있는 쿠키만 골라먹으면 후에는 쓴 맛만 남게 될 것이기에 차라리 맛없는 쿠키를 먼저 먹고, 맛있는 쿠키는 남겨두는 게 좋다고.  

 윤희의 쿠키상자 속은 이제 어떤 모습일까.


 “이상하지. 내게 준비된 불행이 끝이 보이는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드니까 네 생각이 났어.”      


 차라리 상자 속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기를. 대화의 끝을 향하며, 나는 아마도 그렇게 기도했을 것이다.


 윤희와의 길었던 통화가 희미해져갈 때쯤, 그녀에게서 첫 메시지가 왔다. 사진 한 장과 함께. 갓 태어난 생명의 탄생을 품은 까맣고 하얀 사진 아래, 윤희는 담담히 적어 내렸다.      


 나, 아가가 생겼어.      


 시작인 걸까, 다시 절망의 끝인 걸까. 다시 시작된 윤희의 이야기가 어디로 향할지 나는 감히 예상할 수 없었다. 다만 예감했다. 삶이 어느 곳으로 향하든, 윤희는 또한 지금까지처럼 담담히 받아들이고, 나아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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