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라는 속박을 생각하다.

by 레메디오스

서른 중반이 넘어가니 개명을 하는 친구들이 부쩍 늘었다. 발음이 촌스러워 어릴 때부터 놀림을 받은 것이 한이 되었다는 친구,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인생이 이름 때문인 것만 같다는 친구 등 그 이유도 다양하다.


법원통계월보를 보니 2018년 한 해 동안 전국 법원에 접수된 개명 신청은 14만 1,1665건이라고 한다. 지난 2014년까지 10년 간 개명신청건수가 무려 100만을 돌파했다 하니, 200만 돌파도 머지않았음을 느낀다. 지난 2005년 대법원의 ‘행복추구권’ 판결 이후 개명 절차가 간소화된 데다, 이름과 운명이 큰 관계가 있다는 성명학이 유행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과거 집안에 장손이 태어나면 모든 집안 어르신들을 만족시킬 만큼 ‘훌륭하고 흠 없는’ 이름이 나타날 때까지 2년이고 3년이고 이름을 정하지 못하는 일도 흔했다고 한다. 야구계에서는 성적이 좋지 않은 선수, 트레이드로 팀을 옮기는 선수들이 분위기를 쇄신코자 개명하는 일도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지 않는가. 사람들이 얼마나 일음에 얽매여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례들이다.


내 이름에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내가 태어난 바로 다음날, 할아버지께서 용한 분께 사주를 보니 내 평생 황금이 부족한 사주라는 것이다. 내가 사는 동안 돈으로 곤란한 일이 생길까 염려하신 할아버지께서는 그 길로 덕망 높은 스님을 찾아가 ‘돈과 화폐, 귀하다’는 의미를 담은 한자 ‘金’에 ‘진실과 진리’를 담은 ‘眞’을 더해 ‘진짜 황금’이라는, 너무도 직관적이고 명확한 이름을 만들어 오셨다. 36년 사는 동안 크게 부자로 산 일은 없지만 돈 때문에 크게 곤란을 겪은 일도 없으니 내 이름 두 글자가 정말 나쁜 운을 막아준 것이 맞는지 아리송하기도 하다.


이름의 힘에 얽힌 사연은 둔촌 이집 선생에게도 있다.


이집의 원래 이름은 ‘원령’이다. 공민왕 17년, 그의 나이 42세 때 신돈의 문객 중 한 명인 채판서가 교류를 청하자, 신돈의 행위를 크게 비난하여 내쫓았다. 채판서가 이를 신돈에게 전하자 이집은 신돈이 축출되기까지 4년 간 친구 최원도의 집에서 숨어 살게 된다.


신돈의 처형 후 이집은 복관되어 개성으로 돌아오는데, 이 때 이름을 ‘집(集)’으로 고치고, 자도 ‘호연(浩然)’이라 하였다. 이에 대한 이집의 말을 『도은문집』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몸은 이름이 깃들어있는 곳이니, 이제 다시 처음인데 이름만 예전대로 하겠는가.”


고된 도피생활을 청산하고 수도로 복귀한 것은 새 출발이니 새로운 각오를 이름에 새긴 것이다. 왜 하필 ‘집’과 ‘호연’이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이색의 『둔촌기』를 통해 알 수 있다.


“광주 이 씨가 이미 『맹자집의』의 집 자를 따서 이름을 짓고, ‘호연지기’의 호연을 따서 자를 지었다.…나는 말하기를 ‘자네가 『맹자』에 대해서 진실로 맛을 알고 즐거워하니, 그 성인의 도를 구하여 보는 데에 거의 가깝도다.”


호연지기란 무엇인가. ‘도의’에 근거를 두고 굽히지 않으며, 흔들리지 않는 바르고 큰 마음‘이다. ’하늘과 땅 사이 가득 찬 넓고 큰 정기‘이다. 『맹자』의 공손주편에서 말하기를,“호연지기는 평온하고 너그러운 화기(和氣)를 말하며, 기(氣)는 매우 관대하고 경건하며 올바르고 솔직한 것으로서 이것을 해치지 않도록 기르면 천지 간 넘치는 우주 자연과 합일하는 경지’라고 하였다. ‘집의’란 바로 이 호연지기를 기르는 방법이다. 모든 행동을 의리로 통하게 하라는 것이다.


14세기는 역사의 대전환기였다. 중국은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교체되었으며, 고려는 조선으로 왕조 교체가 일어났다. 권문세족의 횡포는 극에 달했으며 불교는 타락하고 백성들은 고통에 신음했다. 이집은 어지러운 시대를 자신의 이름처럼 당당하고 호연하게 거닐 것을 바란 게 아닐까.


일전에 『음양사』라는 작품에서 이름에 관한 재미있는 해석을 읽은 적이 있다. 이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저주이며 저주란 사물을 속박하는 것인데, 따라서 사물의 근본적인 실체를 속박하는 것 또한 이름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름이 자신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고 믿는다. 성명학에서는 좋은 이름이란 음양오행과 상생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사용하면 안 되는 한자까지도 정해놓는다.


그러나 정말 이름에 운명을 정하는 힘이 있다면, 그 힘의 방향은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설정할 수 있지 않겠는가. 호연지기를 이름으로 삼아 혼란한 시대를 살다 간 이집 선생을 보며, 이름의 속박이란 결국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성’이라는 역설을 다시 확인하는 바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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