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내 돈, 이놈의 돈이….”

by 레메디오스

“돈이란 건 숙명인 것이제….”


‘돈’이니, ‘숙명’이니 단어들의 의미조차 모를 때부터, 할머니의 말씀은 숙명처럼 꽂혀들었다.


할머니께서는 평생을 돈에 얽매여 살아오셨다. 가난한 집의 장녀로 태어나 고사리 손으로 무언가를 쥘 수 있게 됐을 때부터, 연필 대신 꼬챙이와 호미를 들고 부모님을 따라 집안 살림을 건사하셨다. 돈아 열려라. 돈아 열려라. 증조할아버님의 입버릇을 따라, 할머니께서는 흥얼흥얼 박자에 맞춰 호미질을 하며 아래 세 동생을 먹이고 입히셨다고 했다.


마을 지주인 할아버지와 혼인하신 이후,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더러 인생 폈다며 수근거렸더랬다. 부러움과 질시 아래 엄한 시어머님, 시아버님과 부대끼면서, 그래도 할머니께서는 그 시기 꿈처럼 행복했다-말씀하셨다. 고기 건더기를 먹을 수 있어서, 따뜻한 국물을 마실 수 있어서, 겨울날엔 따뜻한 온돌 위에서 깊게 잠들 수 있어서, 좋은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두 아들, 두 딸이 있어서.


그러나 안온했던 생활에도 곧 파열이 일어났다. 새벽녘 굉음을 내며 달리는 오토바이 한 대가, 땅을 보러 아침 일직 나가셨던 할아버지를 덮치고 만 것이다. 이 사건으로 할아버지의 삶은 물론, 할아버지께 기대어 지탱하던 가세마저 급격히 무너져 내렸다.


살림과 밭일밖에 모르던 할머니, 공부와 놀이밖에 모르는 네 남매, 이미 늙고 지쳐 거동조차 불편해지기 시작한 증조할아버님과 증조할머님. 이 중 당장 생계로 뛰어들어 남은 가족을 건사할 수 있는 이는 오직 할머니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돈은, 할아버지의 목숨으로 닻을 삼아 할머니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간 생계전쟁에서, 할머니께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오셨을는지 짐작할 수는 있다. 매일 밭을 매고, 어떤 날은 손톱이 부러져가며 무거운 작물들을 들어올리고, 추운 겨울날이든 더운 여름날이든 그늘이나 벽의 보호도 없이 길가에 주저앉아 저기 지나가는 이들에게 이보시오, 여기 좀 보시오 나지막이 외치는 그런 것들. 그러나 어떤 마음이셨을지, 내가 어떻게 감히 공감하겠는가.


“한 방에 다 같이 누워 자다보면 어머니 누우신 쪽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는데, 그게 너무 힘들어 귀를 꼭 막고 자고는 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술 취해 흘려보낸 사무침이 아직도 가슴을 치는 것을.

두 아들을 경찰관으로, 교사로, 두 딸을 간호사로, 가정주부로 키워내고 장가, 시집 보내기까지, 네 남매의 성장은 할머니의 눈물길로 지어졌다. 더는 짜 낼 눈물도 없을 때에야, 할머니께서는 고됨에서 해방되셨을 것이다.


늦깍이 여유를 즐기실 만도 하건만, 할머니께서는 매일 매일을 하루 온종일 논과 밭에서 보내셨다. 여전히 호미를 들고 밭을 매시고, 무거운 것을 들다가 부러진 손톱을 대일밴드로 동여매고는 하셨다. 불시에 놀러가도, 연락을 드리고 찾아가도 할머니께서는 항상 나를 대문이 아닌 텃밭이나 논에서 맞이하셨다.

“할머니는 대체 언제 노시려고 그래요.”

“노는 것도 할 줄 아는 사람이 하는 거제….”


어느 소설 속 등장인물의 대사를 기억한다. 인생이란 랜덤 쿠키박스와 같아서, 처음에 쓴 맛만 보다보면 나중에는 단 맛만 남아있게 된다는 것. 그러나 살아가다보면 안다. 누군가의 쿠키박스에는 쓴 맛만 가득 들어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일흔 넘어, 할머니께 치매가 찾아왔다.


증세는 느린 듯, 때로는 빠른 듯 시시각각 찾아왔다. 내가 알던 할머니의 품위를 확인하며 안심하다가도, 시장통에서나 보던 떼쟁이 어린아이처럼 아등바등 팔을 휘저으며 우는 할머니의 낯선 모습을 보며 환멸과 공포, 슬픔 그 모든 감정들이 소용돌이침에 혼란스러웠다. 할머니께서 제정신일 때나 아닐 때나 단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면, 돈을 모아 숨기기 시작하셨다는 것이다.


만원, 천원 등 지폐는 물론이거니와 십 원, 백 원, 출처를 알 수 없는 1원짜리 동전까지도 움켜쥐셨다. 그 돈들은 차곡차곡 작고 낡은 체크무늬 배낭 속에 모여들었다. 행여 다른 이가 청소 중 손이라도 대려거나, 힐끗 쳐다보는 기색이라도 보일라치면 할머니께서는 냉큼 가방을 움켜쥐고 형형한 눈빛으로 주위를 노려보고는 하셨다. 조금씩 조금씩 무게를 더해가는 그 가방이 나는 무섭고 꺼림칙할 따름이었다.


어느 날 할머니께서 사라지셨다. 그 배낭도 함께였다. 집안은 난리가 났다. 아버지와 어머니, 남동생, 나는 물론 동네 어르신들까지 동원되어 할머니를 찾았다. 새벽녘의 고장난 가로등이 불규칙하게 깜박일 때마다 나는 휴대폰을 꼭 붙잡고 아버지께, 어머니께,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댔다.


영겁과도 같던 한 시간여가 지났을 무렵, 할머니께서는 마을 저수지에서 발견되었다. 저수지 앞에 쭈그려 앉은 뒷모습을 다행히도 아버지께서 알아보신 것이다. 나와 통화하시던 중 아버지께서는 ‘엄마’라는 단어를 애타게 부르짖었다. 수화기 너머로 저 멀리 들려오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아버지의 커다란 몇 걸음만으로 단숨에 가까워졌다.

가로등 하나 없는 새벽녘, 온갖 지폐들이 반딧불이들 사이에서 흩어지고 있는 광경이 아버지의 목소리를 통해 내게도 전해졌다. 차디찬 저수지의 수면을 앞에 두고 할머니께서는 쭈그려 앉아, 이제까지 모은 돈이 허공 속으로, 수면 속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며 울고 계셨다.


“이놈의 돈! 이놈이 돈! 이놈의 돈이…”


아, 대체 돈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흐려지는 기억 속에서도 누군가에게는 기어이 한(限)이라는 것으로 남아 진득이도 따라붙고 마는 것인가. 할머니의 삶을 응축해낸 그 단발마의 비명들이, 할머니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밤바람보다도 더욱 차갑고 날카롭게 생채기를 남겼음을 깨달으며, 나는 참아왔던 모든 울분을 내보내고 말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감정의 굳은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