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운세에서는 일주일 내내 복권을 구입해야 한다며 호들갑이었습니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로또를 사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며,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지인에게 소개받은 곳에서 로또를 구입 '해야 한다'며,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지인과 함께 로또를 사면 길할 거라며 부추겼지요. 심지어 일요일 운세는요. '불로소득에 자만하지 말고 침착하라'며 단정짓더란 말입니다. 평소 보지도 않던 네이버 운세가 이토록 복권 구매를 강권하니 어찌합니까.
물론 운세만으로 일주일치 심리를 저당잡힐 만큼 제가 미신을 신뢰하는 이는 아닙니다. 그런데 또 다른 상서로운 기운이 있었더란 말이죠. 지난 목요일에 내린 갑작스런 소나기 후,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지개를 보았거든요. 그것도 사진에서나 보던, 선명한 빛깔의 빛의 다리를 말이지요. 사진에 담자마자 언제 거기 있었냐는 듯 감쪽 같이 사라지니 저로서는 마치 그 무지개가 저만을 위해 피어난 것 같았습니다. 그도 그럴 게, 같이 있던 가족들은 아무도 못 봤거든요. 제가 사진을 보여주니 그제서야 다들 믿더라니까요. 너한테 뭔가 큰 행운이 오려나...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제가 떠올린 것은 바로 네이버운세였습니다. 도시괴담처럼 내려오던 로또 1등의 주인공이, 이번에는 나인가? 마음이 충만해지고 머릿속에는 로.또. 두 글자만 박혀 일도 괜히 설레었답니다. 퇴근할 때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사들였지요.
(무지개 너 참, 곱기도 하다...)
복권 당첨 되면 뭘 할까라는 생각,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지 않을까요. 거창하진 않지만 저도 나름의 계획은 있습니다. 일단 가계대출을 '일시불' 상환하고, 부모님께 한 2억쯤, 가정을 꾸린 남동생에게도 2억쯤 깜짝선물할 겁니다. 만원, 2만원씩 매달 소액기부하는 곳들에 몇 천만원씩 익명기부하겠다는 꿈도 있답니다. 학창시절부터 무명의 독지가로서, 혼자만 아는 선행을 혼자만 아는 형태로 요란하게 소문내는 게 꿈이었거든요.
복권추첨일이 다가오니 일도 손에 안 잡히더라고요. 심지어 아침에 갑작스레 편도가 부었습니다. 전날까지도 카랑카랑 울리던 목소리가 관속에 갇혀 호흡곤란이라도 호소하는 양 억눌렸지요. 하지만 이미 김칫국 열사발쯤 들이킨 저는 이것마저도 주인공에게 좋은 일이 생기기 전 닥치는 시련쯤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8시 35분이 지나 핸드폰을 켜고 복권을 꺼내들었습니다. 비장한 태도로 5장의 복권을 나열한 후, 핸드폰 카메라에 QR코드를 들이밀었습니다. 결과는 4장 낙점, 1장 당첨이었지요. 네, 5등. 5천원짜리 말입니다.
대체 그 운세들은 뭐란 말인가요. 5천원을 위한 전조들이 그토록 거창할 이유는 또 무엇이길래요. 일요일에 손에 있을 불로속득이 5천원이었단 말인가요. 아니, 따지고보면 이건 불로소득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처구니가 없어 새된 신음만 한참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설레발이었을 뿐, 저를 당첨시켜주겠다 확답을 받은 적도 없거늘 저는 왜 소매치기라도 당한 듯 억울한 기분인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기분 좋으라며 인터넷에서 떠드는 이야기와 몇 가지의 우연들이 겹친 게 과한 기대로 부풀려 와버린 걸까요. 이 억울함을 어떻게든 떨쳐버리고자 저는 이 글을 끄적이고 있습니다.
네, 결국 1/8145060의 확률이란 하늘보다 높고 태산보다 깊다는 사실만 확인한 하루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분에 일주일 간 기대하고, 설레고, 기다리며, 소녀처럼 재미있는 망상들도 펼쳐보며 즐거웠거니 위안을 삼아봅니다. 하루하루 챗바퀴 굴리듯 반복되는 삶 속에서, 이토록 즐겁게 허황된 꿈들을 꿔볼 기회가 얼마나 될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매주 로또를 사나봅니다.
그날 로또와 함께 산 연금복권은 아직 추첨 전입니다. 이번 주 목요일 추첨 예정이라는데, 연금복권은 무려 20년 간 세후 500만원 이상을 통장에 꼬박꼬박 찍어 보내준다더군요. 이번에도 그 주인공이 제가 될 확률은 0에 수렴하겠습니다만, 혹시 또 모르는 일 아닐까요. 제가 그 주인공이 되어 소파에서 방방 뛰며 온동네 떠나가라 괴성을 지르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니 나는 일단 더 설레보련다, 라며 지나간 로또는 버리고 새 행운을 기꺼이 맞아들일 준비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