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되지 않은 삶
참여자, 지원자 모두에게 첫 도전이었던 자립주거 실험 한 달 살기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날은 무사히 잘 마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선유도 근처에서 밥을 먹고 공원을 산책하기로 했다. 나는 미리 도착해서 근처 식당을 물색했다. 차를 타고 오고 있는 A, B님과 유선상으로 상의해서 국밥을 먹기로 한터라 근처 알아봐 두었던 약간 힙해 보이는 국밥집을 갔는데, 직원의 뭔가 불친절한 느낌에 기분이 상해서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퇴근시간 인터라 조금 늦게 도착한 A, B님, 예림과 근처를 돌아다녔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 아까 그 국밥집으로 갔다. 일본식 바 형태로 되어 있는 국밥집은 자리가 부족해 기다리며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었다. 아까 불친절했던 직원은 아까 바빠서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며 사과하며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고기도 듬뿍 주고 밥도 부족하지 않은지 여러 번 물어보면 채워주었는데 B님은 무려 세 번이라 리필을 했다!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것이 풀어지며 외려 소심하게 군 것 같아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배를 든든하다 못해 터지게 채우고 선유도 공원으로 향했다. 장애인 차량인지 확인이 안 된다며(복지관 차량이라고 쓰여있는데도) 공원 관리소에서 잠시 가로막았지만 다행히 통과가 되어 차를 대고 천천히 안쪽으로 걸었다. 선유도 공원은 2005년 대학교 첫 단편영화 촬영을 하러 왔던 이후 처음이었는데 그리 변한 것이 없어 보였고 그래서 오히려 좋았다. 음료를 하나씩 사들고 야경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았다. A님은 야경을 두고 스타크래프트 대전을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임요한이 어떻고 저그가 어떻고 질럿이 어떻고 하면서 덕분에 향수에 젖어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 차이도 좀 나는데(내가 많다) 이럴 때 보면 동년배 같단 말이지.
바깥으로 나오긴 했지만 평범한 저녁이었고 그런 점이 좋았다. 자신이 어울리는 사람들과 같이 밥 먹고, 밤공기 쐬고, 시시한 잡담을 나누고. 처음 일본에서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타케다 상이 남들에게는 평범했던 것이 자신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경험들(불량 식품 사 먹고 그런 것)이 가슴에 남았다는 얘기를 들려주었을 때 그런가 보다 했던 이야기들이 이제 피부에 와닿는다.
자립홈에 돌아와 뒷정리를 하고 두 분의 소감을 들었다. 두 분은 쑥스러워 하긴 했지만 처음에 걱정했던 것과 달리 재밌었고 할 만했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특히 B님은 프로그램 이후에 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립을 할 수 있을지 복지관을 통해 제도도 알아보고 은행도 방문해보기로 했다. 나도 이런저런 경험이 있으니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하시라고 말씀해두었다.
처음 글을 쓰면서 두 분이 ‘자립 별 거 아니었네’라는 표정으로 집을 나서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두 분의 홀가분한 모습을 보면서 그 목표가 어느 정도는 달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할 만하네, 라는 자신감이 들었다면 그것으로 좋은 출발점이다.
아쉽게도 이 집에서 이후 다른 자립 프로그램이 이어질지는 불투명해 보이고 나도 계속 주거 코치 활동을 이어갈지도 미지수가 되었지만 내게도 좋은 시간이었다. 내가 맡았던 케이스는 별 탈 없이 운영된 편이지만 탈시설 후 지역사회에서 자립을 시도하는 과정이 많은 경우 녹록지 않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이 조명되지 않은 삶들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이곳에 쓰이기 시작했다고 믿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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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주거지원 일기에 대해서
서울시에서는 2022년까지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시설 장애인뿐 아니라 가족이 있는 재가장애인 분들도 실제로는 가족이 있어도 독립 거주를 위한 지원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요.
지금 제가 참여하는 사업은 이런 재가장애인을 대상으로 서부장애인복지관에서 수행하고 있는 주거지원 실험사업입니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발달장애인 분들은 한 달간 자립체험주택에서 가족, 본가와 떨어져 생활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주거 코치로서 참여자 분들의 퇴근 후 생활을 함께 하며 식사 준비, 빨래 등 각종 생활 요령을 알려드리고 안전 문제를 확인하는 등의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첫 주에는 매일, 그 다음주부터는 격일만 방문하면서 자립 생활에 익숙해지실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좋은 기회로 제안을 받아 이번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발달장애인 분들이 이용시설, 집을 벗어나 보다 폭넓은 관계와 선택지 속에서 삶의 가능성을 넓히는 것은 언제나 제가 관심 있는 일입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생각보다 심심하고, 그런데 어딘가 시트콤스럽고 가끔은 뭉클하기도 한순간들을 기록하고자 이 일기를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