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재필 Jul 13. 2024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다

기록하는 일의 사명

(스포일러 주의) 


다큐멘터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홀로코스트를 다룬 길고 긴 다큐멘터리 "쇼아"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알렝 레네의 "밤과 안개"도. 나는 두 영화 모두 좋아한다. 하지만 이번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기록하는 사람으로서의 사명에 대해서 깊숙하게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특별하고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영화 전체를 요약하는 것은 이미 많은 영상과 글이 있기 때문에 내게 위 감각을 선사한 마지막 시퀀스에 대해서만 얘기해보고 싶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곁에서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뇌를 비우고 열심히 당을 위해 헌신하는, 효과적인 기계(가스실)를 도입하여 수 많은 사람을 죽인 루돌프 회스. 그가 앞으로 자신이 더 많이 죽일 사람들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무도회장의 사람들을 죽이는 상상을 하며 어두운 복도를 지나는 순간. 그가 구역질을 하고 복도의 문 불 빛을 따라가면 역사적 시간을 건너 뛰어 아우슈비츠 박물관의 복도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끔직한 살인의 도구들과 사람들의 흔적이 담긴 옷가지가 진열된 박물관의 유리를 깨끗하게 닦아내는 스태프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 청소하는 모습이 왜 소름이 끼쳤을까? 불질러 소멸시켜야 마땅할 것 같은 광기의 흔적조차 정성스럽게 닦아내는 모습이 으스스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리를 닦아내듯이 그러한 끔찍함 조차 가능한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게 정면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보관하는 것. 어떠한 변명도 필요없이 냉정하게 투명하게 그것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이 청소부의 행위이자 이 영화를 만든 조너던 글레이저 감독과 제작진들을 포함해 기록하여 전시하는 사람들의 사명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영상을 만드는 업을 하는 내게도 무엇이라 설명하기 힘든 어떤 감정을 심어주었다. 


그렇게 보존되어 전시된 미래가 과거의 회스에게 직감처럼 다가올 운명이자 복수로 그의 신체에 침입했고 그의 몸은 그것을 견딜 수 없어 구역질을 하는 것이다. 반성도 무엇도 아무것도 뱉어낼 것도 없는 텅빈 그의 몸에서는 위산만 흘러나올 뿐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컨디션이 좋을 때 다시 한 번 보고 싶고, 언젠가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본 사람들과 길게 얘기를 나누고 싶다. 


* 어울리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되게 힙하기도 하다. 

작가의 이전글 절제하는 사랑이 가능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