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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하나하나가 연결되어 하나의 선이 되는 것처럼

수험일기 20032023

by 필명이오

제가 인간으로서 성장한 20년이라는 세월이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시간일지라도, 한 갓난아기가 성인이 되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의미라 생각합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제가 느낀 점들이 모여 여기에 하나로 담길 수 있는 것이겠죠. 저는 그래서 20년 동안 살면서 느낀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한 문장으로 이렇게 정리할 것입니다.


‘내 인생이 누가 써놓은 각본 같다.’


한 발짝만 떨어져서 제 삶을 바라보고 있자면, 저도 모르는 새에 큰 사건들이 맞물려 딱딱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치죠. 이를테면, 책을 읽다가 ‘저런 상황은 내가 느껴 본 적이 없어서 공감을 못 하겠다.’ 싶을 때, 딱 맞춰서 며칠 있다가 그런 상황에 내가 놓이고, 뒤돌아보면 ‘아, 그때 봤던 상황에 내가 있구나!’ 하게 되는 순간. 낮에 새로 외운 영단어가 TV 프로그램 자막에 나오는 순간. 조금 다르게 ‘더 이상은 못 하겠다…’ 싶을 때, 나에게 찾아와 힘이 되어주는 은인들. 꼭 그때만 맞춰 나타나죠. 내 인생이 초장부터 글러 먹은 것만 같고, 뭘 해도 나는 안 될 거라고 단정지은 때를 어떻게 알고 오는지 참 신기합니다.


제가 공식적으로 고3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봄이었습니다. 학교 가로수들이 벚꽃을 만개해 벚꽃잎으로 봄의 눈보라가 휘날리죠. 그 사이를 뚫고 지나갈 때면, 책가방으로 무거운 어깨에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갈 정도로 가벼운 벚꽃잎 하나가 살포시 앉았다가 내려가는 짧은 몇 주.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맞이하는 새 시작, 새 학기, 그에 걸맞지 않게 추운 바람에 떠내려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나 자신. 세상이 1년 중 가장 아름다울 때마저 저는 1년 중 가장 혼란스러웠습니다. 어쩌면 항상 그래 왔듯이 19년 인생 중 가장 혼란스러운 때였습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감정이 어느새 나를 서술하는 단어가 되고,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을 맞이할 때 그랬던 것처럼, 저도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회의감. ‘어중간함’이 그렇게 싫었습니다.


그렇게 가방에 든 책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하교를 하는데 주차장 앞에서 은사님을 마주쳤습니다. 그분은 제 담임은 아니셨지만 제가 1~2학년일 때 교과 수업을 들어오셨었죠. 입학 때부터 감사하게도 저한테 잘해주셨어요. 발표 수행평가가 학기 당 하나씩은 있었는데, 제 차례가 오면 ppt 정리가 잘 되어 있다고 칭찬해주시기도 했고요. 3학년이 되니 정규 수업 때 그 선생님의 수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달 만에 뵈었죠. 그때 해주신 말씀이 이 장의 제목입니다. 선생님께서 손바닥을 펼쳐,


“점 하나하나를 찍으면 선으로 연결되잖아? 그렇게 살아가야 해. 인생은 원래 네가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어. 그리고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해.”

제 어깨에 손을 올리시며,

“특히 여학생들 화장실도 같이 가야 하고, 뭐만 하려면 다 같이 해야 된다고 불안해하잖아? 근데 그러면 안 돼. 인생은 원래 혼자라서 이겨내야 해. 요즘 공부도 잘 안 되니?”

“네, 선생님. 사실 제가 해놓은 게 뭔지도 모르겠고, 너무 못하는 것 같아요.”

“너 원래 잘했잖아. 그러니 자신감을 가져.”

“선생님께서 좋게 봐주신 거죠.”

“넌 항상 열심히 했어. 내가 너 어떻게 졸업하는지 꼭 지켜볼 거야. 아이고, 이리 와 봐. 내가 한 번 안아줄게. 잘 가.”


제가 고개 숙여 인사드리고 하굣길을 걸을 때 벚꽃이 내리고 은사님은 제게 손을 흔드시고, 저는 그때 걸음마를 혼자 뗀 아이처럼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느껴지는 진동이 제 심장박동 같았습니다.


졸업할 때 알게 된 사실인데, 그분은 제가 졸업하는 해에 정년퇴임을 하셨습니다. 면접관도 하셨으니 이미 고연차이신 건 알고 있었지만 상당히 아쉬웠습니다. 모교에 오게 된다면 꼭 뵙고 싶은 분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결과적으로 3년 있으면 졸업을 하는 학생들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한 명의 학생인 저를 유심히 봐주셨음에 감사했습니다.


제가 은사님께 저 문장을 듣기 전까지는 올곧은 선을 그것도 한 번에 그어야 한다는 완벽주의적인 압박감에 둘러 싸여 결국은 무기력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 문장을 들은 순간, 앞으로는 하루에 점 하나를 잘 찍는 정도부터 차근차근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저를 신뢰하는 분의 말씀이라 저도 받아들이기 편했습니다.


누가 내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써놨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나만 모르고 이미 정해진 운명대로 내가 선택한 기분. 그 짧은 순간의 전율. 내가 아예 탈선하려고 하면 경계선에서 막아줄 사람을 복선으로 심어 놓은 것 같죠. 운동장에서 축구공이 날아가면 안 되는 방향으로 저 멀리 날아가다가도, 철조망에 한 번 받히기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멈추는 것처럼요. 다만 경계는 어긋난 방향성만 제자리로 바꿔줄 뿐 충격의 반동이 내 안에 머물고 나면 결국 다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힘은 내가 스스로 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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