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일기 20032023
앞장에서 답답하고 어두운 사연이 나와서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공감도 가지만, 한편으론 PTSD 올 것 같으셨죠?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번장은 힐링입니다! 각자의 인생을 달려가다가도 넘어진 나를 일으키려 뒤돌아서 지나간 길을 달려와주는 고마운 사람들과 있었던 훈훈한 일화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주변에 비슷한 사람이 생각나서 흐뭇해지실 거예요.
Part 3의 제목부터 우리가 잊고 살지만 당연한 진리입니다. 세상에 나를 비난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긍정의 힘보다 부정의 타격이 치명적임을 Part 2를 한 자, 한 자 보면서 느끼셨을 겁니다. 힘들수록 부정이 칼을 들고 상처를 파고들어서 어쩌면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수렁에 빠진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낮아진 자존감으로 ‘이렇게 망가진 나를 진심으로 도와줄 사람이 있기나 하겠어?’라고 생각해서 더 주변을 돌아볼 수가 없죠. 진심은 여러분도
‘누군가가 나타나서 내가 다시 달릴 수 있도록 일으켜 줬으면 좋겠다. 근데 막상 떠오르지 않아…’
라고 망설이고 있을 겁니다. 이번장에서 제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저를 일으키고, 상처를 보듬어주고, 뭐라도 하나 더 챙겨줘서 제가 그 사람들을 더 신뢰하게 되었는지 봐주세요. 여러분도 주변에 그런 사람이 한 명은 있을 겁니다. 세상에는 소위 말하는 또라이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천사가 많습니다. 저도 n수하면서 또라이한테 받은 상처가 많은 것을 Part 2에서 보셨잖아요? 하지만 결국에는 양적으로나, 수적으로나, 상처를 치유해주는 천사가 더 많았습니다. 깊은 유대로 상처를 치유하는 천사도 있으나, 그저 스쳐 지나가면서 작은 인사 하나로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어주는 천사도 있습니다.
제가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중학교를 즐기다가 아쉬운 마음으로 마무리해서 환경이 갑자기 극과 극으로 바뀌니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스트레스 유발 요소 같았죠. 내면이 복잡하니 겉으로 티가 나죠. 어린 나이에 표정도 죽상이었습니다. 밝게 웃는 방법을 까먹은 기분이었어요. 중학생 때는 안면 근육을 어떻게 잘 썼는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변했습니다. 그만큼 ‘과업=스트레스=기분 안 좋음=하기 싫은데 억지로 함’이라는 내면의 명제가 생겼죠.
근데 저 명제를 깨부수는 나름의 충격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무거운 급식과 각종 배식 집기 등을 옮기는 분들이 계셨는데요. 택배 상하차 작업처럼 온전히 힘으로 승부하는 일이라서 매우 힘들죠. 근데 딱 한 분이 힘들더라도 일을 즐기면서 하셨습니다.
그분이 어떻게 재밌게 일을 하셨는지 아직 감이 안 오시죠? 4교시 수업시간에 배식 준비가 끝나면 급하게 부족한 반찬을 옮길 일이 없는 한 그분은 정리할 때까지 잠깐 쉴 수 있으시죠. 근데 쉬지 않고 점심시간이 되면 학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때 학생들 이름을 외우며 반갑게 인사를 하시더라고요? 체육복은 이름표를 달지 않는데도 학생들의 이름을 기억해내셨어요. 학생들도 엄청 즐거워하면서 하이파이브도 하고요.
“보자, 보자. 네가 이름이… ㅇㅇ이! ㅇㅇ이 맞지?”
“우와! 쌤 대박이에요.”
“공부 힘들지? 점심 맛있게 먹고 힘내!”
저한테는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다는 태도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교과 선생님들도 매년 몇백 명의 학생들을 보시니 이름을 안 외우는 분들도 계셨거든요. 그분들을 비난하는 게 아닙니다. 학생들과 접점을 아예 안 만들 수 있는데도, 오히려 학생들과 교감하며 학생들이 급식을 더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이것이 인간관계의 시너지구나!’하고 깨달았어요. 그래서 급식 시간이 더 즐거웠습니다. 지루한 기다림을 친구들이랑 얘기하면서 해소하기도 하지만, 그 선생님께서 건네는 인사 한 마디가 엄청난 힘이 되더라고요. 더 감동이었던 일은 시험기간에 계단으로 지나가다가 그 선생님을 뵀을 때였어요.
“ㅇㅇ이 안녕!”
“쌤 안녕하세요!”
이때 선생님은 급식 통을 겹쳐서 든다고 목장갑과 비닐장갑을 이중으로 끼고 계셨는데, 장갑을 하나하나 벗으면서 하이파이브를 해주시더라고요.
“시험기간인데 파이팅이야!”
“네. 선생님도요!”
한날은 제가 석식 시간 전에 하교할 때였습니다. 선생님께서 급식실 밖에서 잠깐 쉬고 계셨을 때도
“ㅇㅇ아, 집 가는 거야?”
“네! 안녕하세요.”
“그래. 하이파이브!”
저는 몇 걸음 더 올라가서 하이파이브를 했습니다.
“쌤, 안녕히 계세요.”
“그래. 뛰지 말고 조심히 가! 안녕.”
항상 이렇게 인사를 하셨죠. 똑같이 힘든 일이라도 재밌게 하는 사람이 있음을 그분을 통해 배웠습니다. 힘든 일을 꼭 죽상 하고 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죠. 지금도 가끔 생각할 때면 좋은 쪽으로 상당한 충격입니다. 저도 이후에 ‘공부가 힘들더라도 웃고 즐기면서 해볼까?’라고 생각의 전환이 일어났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에서 배울 점은 항상 있다고 느꼈습니다.
졸업을 하고 생각해 보니 그 선생님은 학생들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당장 일이 고되더라도 이름도 외우고, 밝은 인사도 건네셨어요. 나중에 급식 업체가 바뀌면서 학교에서 그분을 뵐 수가 없었습니다. 떠나시기 전에 잠깐 여쭤보기라도 할 걸 그랬습니다. 어떻게 일을 즐기면서 하셨는지,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그러고 보니 그분은 제 이름을 외우셨는데 저는 그분의 성함도 모르네요. 마지막에 그분을 딱 한 번 뵌 일은 있었습니다. 급식 업체가 바뀌고 몇 달 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원래대로 급식을 다 받고 자리로 가는 모퉁이에 양복을 입은 남자 몇 분이 서 계셨어요. 평소에는 작업복으로 운동복 반팔티만 입고 계셨으니 제가 못 알아 뵈었는데요.
“어? 네가 이름이… 뭐였지?”
“어, 쌤? 저 ㅇㅇ이요. 진짜 오랜만이네요!”
“아, 맞아! ㅇㅇ이. 삼촌 요즘 다른 학교에서 일하고 있어. 맛있게 먹어.”
친구들이랑 자리로 가야 했기에 더 자세한 얘기는 나누지 못했지만, 언제 모교에서 다시 뵙게 된다면 꼭 묻고 싶어요.
어떻게 일을 재밌게 할 수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