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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 속 물고기

수험일기 20032023

by 필명이오

수족관에서 물고기를 데려와 보신 적이 있나요? 요즘은 마트에 직접 가서 장을 본 일이 없어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대형 마트에 동물 판매 코너가 꽤 크게 있었습니다. 물고기, 햄스터, 친칠라 등 종류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지나갈 때면 장난감 코너 못지않게 아이들이 꼭 키우고 싶다고 드러눕는 광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생명의 무게를 모르고 철없던 시절에는 그런 때가 있었죠.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하는지 노견과 노묘가 있는 주변 가정을 통해 많이 봐서 생명을 직접 데려올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만, 6~7살쯤 그 마트에서 물고기를 데려온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물고기를 사면 길고 두꺼운 투명 비닐봉지에 물을 조금 담고, 뜰채로 고른 물고기를 담고, 나머지 공간에 산소를 가득 채워 봉지를 빵빵하게 묶어서 주는데요. 이때 집에 물고기를 데려가서 꼭 지켜야 할 주의사항을 알려줍니다.


‘절대 봉지를 풀어서 쏟듯이 물고기를 어항에 넣으면 안 된다. 물고기가 쇼크가 와서 바로 죽는다. 때문에 이 봉지 그대로 어항에 담아서 30분 동안 수온을 맞춰야 한다. 그다음에 봉지 위에 칼집을 조금 내서 물고기 스스로 나올 때까지 놔둬야 한다.’


최근에 찾아보니 이게 ‘물맞댐’이라는 과정이더라고요. 물고기도 미리 물을 맞대는 과정을 통해 적응할 시간을 줘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생각인데, 학창 시절 ‘반배정’이 꼭 물고기를 어항에다 가득 모아 놓고 키우는 것 같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물고기를, 무작위로 건져서, 한 어항에다, 물맞댐 없이, 집어넣고 ‘오늘부터 1년 동안은 너네가 한 어항에서 살아야 하니까 서로 사이좋게 지내.’하는 것과 다름없죠. 그래서 적응을 잘 못 하는 학생들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물맞댐을 안 해주니까 쇼크가 오는 거죠. 현실적으로 학교에서 물맞댐을 할 방법이 없긴 합니다. 중학생 때 일주일에 한두 번 외부 강사분들이 오시는 선택형 스포츠 수업 시간이 있어도, 다들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랑 같은 수업이 되려고 가위바위보를 이겨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몇 번씩 협동 수업을 해도 접점이 없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친해지기 어렵죠. 학년 내에서 인맥이 마당발인 인싸들은 친한 무리가 군데군데 있어서 물맞댐이랑 비슷한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같은 반이 된 학생들의 상성에 따라 물의 온도가 결정되니 이들도 스트레스받기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 그래도 암묵적으로 미리 알려준 게 딱 하나 있기는 하죠.


‘어항은 해가 바뀔 때마다 섞어서 같은 어항이었던 물고기들도 있겠지만, 처음 본 거나 마찬가지인 다른 물고기들도 같이 지내게 할 거야.’


이러면 물고기들은 1년이 끝나고 또 다른 1년이 시작하기 전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습니다. ‘내년에는 어떤 애랑 어항을 같이 써야 하지? 올해 같이 생활한 얘는 친구니까 또 같은 어항 걸렸으면 좋겠다. 쟤는 좀 불편한 사인데, 설마 같은 어항이겠어? 수족관에 어항이 이렇게나 많은데…’라는 생각이 계속 나겠죠. 오죽하면 매년 2월 말이면 SNS 인기글에 ‘반배정 잘 되는 기운 넘치는 부적’이 많이 보일까요.


여러분 근데 그거 아시죠? 새 학기에 긴장 안 하는 학생은 없어요. 아무리 재밌고 잘 나가는 학생이라도 긴장해요. 내년에도 본인은 잘 나가는 학생으로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어쩌면 일반적인 학생들보다 더 긴장할지도 모릅니다. 모두의 눈길을 의식해서 인기가 있을 때 자존감이 높아진 만큼, 작년보다 상대적으로 잘 나가지 못하면 남들이 그만큼 나를 낮게 볼까 봐 무서운 것이죠. 내가 소심한 학생이라서 긴장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와 상관없는 환경 변화 때문에 모두가 긴장하는 게 당연한 시기입니다. 어항을 바꿀 때라서 누구는 전에 살던 어항보다 물이 너무 차가울까 봐, 또 다른 누구는 물이 너무 뜨거울까 봐 걱정합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죠.


저도 반배정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부류였습니다. 저는 목적성이 분명한 말하기는 잘하는데 사교적인 대화는 처음에 잘 못했어요. 발표처럼 다른 사람이 내 얘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으면 말을 논리적으로 잘 하지만, 사람이 꽤 많은 집단 내에서 이목부터 끌어 말을 하라면 거기서 막혔습니다. 그리고 발표는 ‘발화 목적과 내용’이 일치하는데, 친구 사귀기는 그렇지 않죠. 발표 같은 경우는 ‘저는 A라고 믿습니다. 근거는 B입니다.’라고 말해서 A라는 논리를 주장하면 되지만, 친구를 사귈 때는 무슨 고백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오늘부터 친구 할래?’ 이렇게 하는 게 아니니까요. 처음에 인사, 공통 관심사 찾기, 그나마 내가 아는 분야가 나오면 그걸로 얘기하기. 글로 써놓고 보면 더 웃기죠. 저도 여러분도 다 알고 있습니다. 게임 공략법처럼 글로 써놓고 이론이라 생각하고 따라 한다고 사교성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을요. 오히려 친구 사귀기를 항상 ‘지금이 실전’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연습’이라고 생각하면 제가 편해지니 결과도 더 좋았습니다. 게임으로 비유해 보자면, 기회가 딱 한 번 주어지는 보스 잡기가 아니라, 기회가 넉넉히 주어지니 그동안 내 몸에 익히면 되는 ‘기간 한정 튜토리얼 모드’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저는 학교를 다니면서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고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학교에서 에너지를 쓰는 시간 이상으로 집에서 에너지를 충전해야 사람을 대할 수 있는 내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인간관계를 생성하고 유지할 때 에너지가 소모된다고만 생각했어요. 사람들 속에 섞이면서 에너지가 충전된다는 외향적인 사람은 저는 절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졸업하고 생각하니 저는 에너지 소모 때문에 스트레스받았던 양의 몇 배 이상으로 사회화가 많이 된 편이에요. 저는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에 따라서 적극성 차이가 많이 나서 친구가 없어도 봤고, 많아도 봤습니다. 인간관계와 별개로 공부는 항상 꾸준히 했는데 반에서 조용하게 있어 보기도 했고, 활발하게 있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외로웠던 시절이 지금 생각하면 안타깝고 그때는 왜 그랬나 싶지만, 오히려 모든 입장에 다 공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컸습니다.


다만 정말 왜 그러는지 이해도 안 가고 별로라고 생각하는 부류는 극명하게 급을 나누고, 학생들 사이에 생기는 모든 여론을 본인이 통제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세대에나, 어디서나, 저런 부류 한 명쯤은 꼭 있어서 주변 사람들마저 예민하게 만들고 수많은 오해를 하게 되죠. 학폭에 걸리면 안 되니까 은근히, 더 교묘하게 끼워주는 척하지만, 여론으로는 소외되게 하면서 본인의 우월감을 과시하는 행동을 반복하니 같이 생활하는 사람이 학교만 가면 예민해집니다.


‘선동당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선동하는 한 사람의 말을 무시하면 해결되는 문제 아닌가?’


이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막상 그렇게 소수라도 여론의 주류가 선동하는 상황에 놓이면 예민한 상태에서 판단력에 필요한 시야가 확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많아야 고등학생인 나이라면 아직은 사회생활을 한 성인보다 몸에 와닿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에 예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피해자로서 똑같이 복수하고 싶은 인간적이면서 비인간적인 마음을 품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흑심에 쓰는 에너지나 적극적인 복수를 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그것은 저를 갉아먹기만 하더라고요.


분위기가 안 좋은 조합한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반은 어떻게 해도 1년 뒤에 쪼개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쪼개져서 다음 학년에서 같은 반이었던 학생들이 만나면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 우리가 선동당해서 서로 오해했네. 선동한 사람이 나쁜 사람이지, 그 사람이 이간질하려고 말한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어. 앞으로는 잘 지내야지.’


결국 다들 알게 되어 있습니다. ‘걔가 말했던 내용이랑 많이 다른데? 얘 생각보다 엄청 괜찮은 사람인데 내가 색안경 끼고 봤구나.’ 다들 그렇게 생각합니다. 결국 그 사람만 옆에 남는 사람이 없어지죠. 이후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쌓은 추억이 많은 지금 생각하면, 그런 사람이 얼마나 당하는 사람들보다 맹목적인지 불쌍할 정도예요. 평소 급식 먹으면서 대화만 해도 웃겨서 밥을 못 먹을 정도로 재밌고, 수능 끝나고 국내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 길을 걸을 때 다리 아픈 줄 모르는, 진정한 인간관계를 만들 기회를 스스로 발로 차 버린 것 아니겠어요? 그렇게 나는 행복하게 살고 있을 때 가해자 스스로 침몰하는 것을 곁눈질로 한 번 목격까지만 해주면 됩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 다들 아시죠? 그 사람은 버릇 못 고쳐서 대학가서나 사회생활할 때 그대로 하다가 문제 일으킬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 생각은 똑같으니까 다들 느낄 겁니다.


얼마 전 제가 10살 때 썼던 시를 어머니 SNS에서 발견했습니다. 형형색색 사인펜을 손에 잡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써 내려간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시였습니다. 당시 교지에 삽입할 작품을 하나씩 만드는 수업시간이었는데요. 담임선생님께서도 제출된 작품들을 둘러보시다가 제 시를 발견하시곤 모든 아이들 앞에서 읽어 주셨습니다. 그중에서 이 주제와 관련 있는 1~2연을 보여 드리자면,


우리 반을 소개합니다 - 1~2연 큐브 같은 우리 반


우리 반은 큐브다.

왜냐하면, 큐브도 돌고 돌고

우리의 감정도 하루하루 돌고 돌아서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 반은 큐브다.

왜냐하면, 큐브도 알록달록 색깔이 있듯이

얼굴과 생김새가 다른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제가 한창 큐브 맞추기에 빠져서 그것만 바라보다 보니, 떠오르는 주제가 딱 저거 하나였나 봅니다. 지금 보니 표현 방식이라고는 비유법밖에 없는 유치한 시라고 느껴지지만, 이 시와 스마트폰 초창기에 찍은 낮은 화질의 제 사진을 함께 볼 때면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죠.


어릴 때는 제가 쓴 시처럼 한 반이 큐브처럼 잘 짜여 있어서 돌리고 돌려 올바른 그림으로 맞추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더 커서 생각하니 큐브가 아니라 ‘그림이 정해지지 않은 퍼즐’이더라고요. 어떤 이들은 모서리에 맞는 모양으로 생겼고, 또 어떤 이들은 가운데에 맞는 모양으로 생긴 것이죠. 단지 퍼즐의 한 그림을 구상하고 맞추기 용이하게 칼같이 자른 조각들이 아니고, ‘이만큼의 조각끼리 한 반으로 정해서 그림을 만들도록 하자!’라는 의도로 만들어진 집단이라고 할까요? 똑같은 조각이라도 어느 방향에서는 안 맞을 수 있고, 서로 맞춰갈 의지가 있다면 다양한 방향으로 돌려서 맞물리도록 연결할 수 있는 집단인 셈이죠.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양쪽에서 맞출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어느 한쪽만 돌아다니며 다른 한쪽에 맞물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개선 없는 무기한 인내’에 지칠 게 분명하거든요. 어떤 이는 ‘나는 튀어나온 쟤랑 맞추고 싶은데, 왜 나도 튀어나온 조각으로 태어났을까? 나를 오목하게 깎아서 맞물리게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매우 위험한 상태까지 갈 수 있죠. 특히 학창 시절에는 모두가 자신이 누구랑 다닐지 고민하고, 다른 이들은 누구랑 다니는지 신경 쓰고, 심한 사람은 그것을 계급화할 정도로 친구 때문에 예민하다는 것은 저도 학교 생활을 겪었으니 백번 이해합니다. 근데 서로가 달라서 생기는 문제를 자신이 틀렸다고 곡해해서 모든 문제의 원인을 스스로에게 돌리지는 마세요. 자괴감으로 고통스러울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어떤 이는 튀어나온 조각이라서 좋고, 다른 어떤 이는 오목한 조각이라서 좋은 겁니다. 퍼즐이 네 방향이니, 다 오목한 조각일 수 있고, 다 튀어나온 조각일 수 있고, 또 둘 다 가진 조각일 수도 있습니다. 내 조각의 형태가 마음에 안 든다고 스스로를 깎고 깎아서 자아를 잃는 상태까지는 제발 가지 마세요. 그런다고 다 맞출 수 있는 문제가 아닐뿐더러, 나중에는 ‘나는 누구였지? 내가 원래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안 나서 더 힘들어.’라고 느낄 거예요. 본연의 모습 그대로 사회에서 숨 쉬어야 일단 0순위로 나도 나여서 편하고, 그다음에 사회도 자연스러운 나를 더 좋아하는 겁니다.


저도 저걸 몰라서 혼란스럽고 외로웠으나 그럼에도 진심으로 다가온 친구들과 부대끼며 깨닫고 성장했음에서 제 학창 시절의 의의를 찾았습니다. 처음부터 우량주인 삼성전자 같은 사람도 있지만, 어느 순간 기하급수적으로 치고 올라오는 성장주인 테슬라 같은 사람도 있는 겁니다. 이번장에서 많이 의아하셨다면 당신은 삼성전자, 제 얘기가 꼭 당신 주변에 CCTV를 달아 놓고 관찰한 일지 같으셨다면 당신은 테슬라가 될 겁니다. 우리 모두 테슬라 같은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 사회로 나가기 이전에 학교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연습 게임은 연습하라고 만든 것이니 열심히 치고받아 봅시다! 저는 다음장에서 여러분들을 힐링해드릴 가슴 따뜻한 이야기로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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