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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좀 지나야 할 수 있는 말들

수험일기 20032023

by 필명이오

학생 때 외부 강연이 많잖아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자! 그럼 하나, 둘, 셋 하면 옆에 있는 친구랑 마주 보고 ‘친구야, 사랑한다!’를 크게 말해요. 하나, 둘, 셋!”이라 말하시면 사춘기 학생들은 보통 부끄러워서 침묵하거나 새빨개진 얼굴로 ‘크흠, 스르한다.’하고 넘기죠. 저도 제 친구들도 다 그렇게 커서 성인이 되었습니다. 학생 때는 있는 그대로 마음을 표할 때도 가끔 있었지만 보통은 부끄러우니까 장난식으로 말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도전할 일이 있을 때 친구가 먼저 제 표정을 읽고 ‘할 수 있다!’라고 하면 저는 일부러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나도 알고 있다! 나 원래 잘해.’라고 답하며 웃고 넘기는 식이었죠. 그래도 서로 먼저 진지하게 고민을 말할 때면, 친구로서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뭐라 말해줘야 잘 와닿을까?’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말해주긴 했어도, 평소에 ‘네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야. 고맙다.’ 이렇게까지 표현하진 않았죠.


근데 시간이 몇 년 지나서 각자 대학교에 들어가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처럼 재수를 하고, 교복을 입는 학생에서 벗어나 인생이 갈수록 힘들어지니 서로가 더 각별해졌어요. 사회에서 차가운 현실을 살다가 잠깐 만날 때 우리끼리라도 따뜻하게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게 된 것이죠. ‘서두’에서도 나온 제 친구 A와 B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연락된 친구들이랑 대화할 때면 이 사실이 와닿습니다.


저는 공부에 집중하느라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지 않았지만, 중학교 친구들은 일을 시작한 친구들이 많습니다. 친구들이 늦은 시간 퇴근할 때 전화를 하거나, 가끔 직접 만나 밥을 먹으면서 일할 때 힘들었던 부분을 얘기할 때가 있어요. 직원이라고 함부로 대하는 진상 손님들, 같이 일하는 사이인데도 텃세 부리면서 학창 시절 일진들이나 하던 정치질을 시전 하는 동료들 얘기를 들을 때면 저도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이 친구도 알고 보면 학교 다니면서 용돈 번다고 일도 열심히 하고 이렇게 좋은 사람인데, 왜 사람을 힘들게 만드나?’ 싶어서요. 만약 그 친구가 잘못한 일이면 모르겠는데, 그냥 잘 모르는 사회초년생의 간절함을 악용해서 생긴 부당한 경우는 저도 감정이입이 되니까 화가 납니다.


저도 ‘Part 2’에서 서술했듯이 힘들었던 부분을 혼자서 끙끙 앓고 있던 상황에서 여름 즈음에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어쩌다 보니 각자 힘들었던 일을 터놓고 얘기했습니다. 저도 이과로 바뀐 과목과 생활 방식에, 친구들도 첫 학기와 일터에 적응하느라 분주하게 보내다가 만난 것이었죠. 오히려 다 터놓고 솔직하게 얘기하니 서로 자존감이 떨어져 있다가도 ‘아,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존재구나.’라고 뿌듯해지고 ‘얘는 그래도 내 편에 서주는구나.’하고 더 깊은 사이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힘들 때 티 내면 다른 사람들도 힘들게 만드는 것이 될까 두려웠는데, 지친 마음이 자연스럽게 얼굴에 다 드러날 때 너무 숨기기만 하는 것도 안 좋았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야 어른이 되어 할 수 있는 말들이 있습니다. 그런 말의 힘이 오글거린다고 부끄러웠던 시절은 어쩌면 우리가 항상 함께였기에, 아침에 눈 뜨면 학교에서 보는 사이였기에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분위기에서 힘을 얻고 있다가 그것이 졸업과 함께 한순간 사라졌기에 우리가 지금 지치고 때로는 회상에 잠기는 것이 아닐까요?


중학교 친구 한 명을 더 얘기해볼까요? 저번장에서 저에게도 친구 사귀기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고 했었죠? 친구 C는 그때 정말 우연히 만났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저랑 C는 반은 다른데 같은 층을 써서 얼굴만 대충 아는 정도였습니다. 말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죠. 가을에 초등학교 친구가 부산 사직동 아시아드 경기장에서 하는 공연 티켓을 어렵게 구해서 보러 간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부산은 연예인을 보기 정말 어렵습니다. 대학 축제를 제외하면 특히 아이돌을 볼 기회는 크게 두 번밖에 없습니다. ‘아송페’와 ‘원아페’입니다. 그중 하나의 티켓을 구했다고 밖에 구경이라도 같이 가지 않겠냐고 했죠.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연예인을 본 적이 없었고 공연장 분위기가 궁금하기도 했어서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랑 공연장 밖을 돌아다니다가 C를 봤어요. 이제 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C도 같은 반 친구 여럿이서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 소심했던 제가 인사할 용기를 못 내서 그냥 같이 온 친구랑 멀리 있었습니다. 근데 C가 먼저 ‘너 우리 학교 애 맞지?’하면서 하이파이브를 하려는 자세로 다가왔어요. 저도 먼저 다가와준 것에 고맙고 학교 밖에서 보니 반가워서 떨리는 목소리로 ‘어, 어, 맞아. 너 ㅇㅇㅇ 맞지?’라고 말했습니다. 그게 저희의 첫 시작이었고 지금도 잘 지내고 있어요. 그때 친구 따라서 아시아드 경기장에 가지 않았더라면 이 친구랑 친해지지 못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을 정도로요. 이래서 인생이 예상할 수 없어서 재밌다고 하는 건가 봅니다. 내 순간적인 선택에 따라 앞으로 어떤 일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질지 어쩌면 게임보다 더 금방 바뀌니까요.


전과를 결심하고 처음 이과 책을 산 것도 친구 C와 놀러 갔을 때였습니다. 저는 친구들이랑 놀러 갈 때 같이 서점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데요. 서면에 가면 좋은 향과 분위기에 독서 자극이 많이 되는 교보문고에 꼭 들렀어요. 1층에서 각자 좋아하는 아이돌의 앨범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같이 구경하고, 지하 1층에 문제집도 보러 갔었죠. 특히 엄청나게 쌓여 있는 EBS 수능특강을 구경했어요. 그날은 집 근처 대학가에서 편하게 놀다가 밥 먹고 들어가는 길에 동네 서점에 들렀습니다. 이리저리 편하게 보는 와중에도 유명한 과학 개념서 겸 문제집 하나가 눈에 계속 걸리는 겁니다. 그렇게 그 무거운 개념서의 ‘화학 1’과 ‘화학 2’ 이렇게 두 권을 사들고 집에 왔죠. 그때부터 저의 문/이과 이중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직도 그 개념서를 보면 손에 처음 집었을 때의 울림이 기억납니다. 지금 글을 쓰면서 자아실현을 실감할 때 빨라지는 심장박동의 울림처럼 그때도 ‘이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구나! 그걸 지금 시작하고 있어!’라는 짜릿함이 있었습니다.


재수를 하는 지금은 그 책만큼 ‘아. 내가 재수를 하고 있구나. 내가 고등학교 과정에 머물러 있구나…’라고 느끼게 하는 매개체가 따로 없습니다. 메가스터디 같은 고등 인강 사이트를 들어갈 때는 처음 과목별 선생님을 고르고 수강 신청을 할 때 빼고는 고3/n수 탭을 누를 일이 없습니다. 듣고 있는 선생님의 후속 커리큘럼이 추가되어도 ‘수강 중인 강좌’ 탭을 누르고, ‘선생님 홈’을 눌러서 추가 수강 신청만 하기 때문에 별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는데요. ‘고등학교 화학 1’ 이렇게 적힌 그 책을 볼 때면 친구 C와 고등학교 1학년 때 오랜만에 만났던 모든 장면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러면서 작은 후회가 밀려와 원망할 대상을 찾죠. ‘그때가 기회였는데, 그냥 다 버리고 이과 수능 공부만 할 걸… 부모님은 왜 허락을 안 해주셨을까.’하고요. 시간이 좀 지나서 C는 서울에 있는 한 예술 학과에 다니기 위해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영원히 같은 동네에서 전화 한 번이면 바로 만나서 밥 먹을 수 있을 줄 알았죠. 하지만 다시는 오지 않을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카톡이 오면 ‘이 사람이 나를 생각해서 연락해줬구나.’라고 생각되어서 제가 급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최대한 빨리 정성스럽게 답을 해주는 편인데요. 그렇지 않은 사람도 다름의 영역이니까 존중하는 편입니다. C는 원래 카톡을 자주 확인하지는 않는데 답은 꼭 해주는 편입니다. 근데 20살이 되고 몇 달 동안 제가 먼저 연락을 해도 잘 닿질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8월 말에 ‘이제 연락 자주 할게.’라고 카톡이 와서 ‘그래. 자주 하자.’라고 답하고, 며칠 후 주말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친구는 자취방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전화 잘했다고 오랜만에 3시간 30분이나 통화를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제가 목이 쉬어서 어머니가 퇴근 전에 저한테 전화를 거셨을 때 제가 무슨 일 생긴 줄 알았다고 깜짝 놀라셨었죠.


그때서야 친구의 사정을 들었습니다. 3달간 식당에서 용돈 벌려고 경험 삼아 알바를 했는데 너무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들으면서 그동안 연락 못했던 이유에 놀랐고 친구가 속상했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요. 소심했던 시절의 저랑 친해졌을 정도로 친화력이 엄청난 친구라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친구는 사회생활하면서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소수의 진상 손님도 있었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분위기 때문에 힘들어서 매일 울었다는 것을 듣고, 학창 시절에 그렇게 밝았던 친구가 특정 배경 때문에 우울해질 수밖에 없었음에 저 역시 슬펐습니다. 그만둔 지 몇 주가 지나서 마음을 추스르고 저한테 담담히 얘기하는 친구가 대단했습니다. 친구의 고민을 듣고 저도 재수하면서 느낀 감정과 고민을 털어놨죠.


“야야, C야. 내가 재수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게 있거든?”

“뭔데?”

“그게 좀 긴데, 일단 들어 봐. 우리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이렇게 학교가 바뀌거나 단순히 한 학년만 바뀌더라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반이 바뀌어서 인간관계의 풀이 바뀌고 확장도 일어나잖아?”

“그렇지.”

“나도 막상 학교 다닐 때는 몰랐는데, 그런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인간관계의 확장’이 중요하더라. 내가 새 학기만 되면 스트레스 엄청 받았는데, 지나고 나니까 그렇게 계속 사람을 보게 하는 환경이 생각보다 중요했어. 재수하면서 그런 쪽으로 결핍이 일어나니까 마음이 힘들더라. 내가 이걸 언제 느꼈냐면, 우리 집 근처 대학 다니는 고등학교 친구 하나가 있거든? 그 친구랑 가까우니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만나서 밥을 먹어. 학생 때는 굳이 멀어서 안 갔던 바닷가 맛집도 성인 되어서 가보고. 근데 그 친구를 보니까 느껴지더라. 그 친구는 나 같은 고등학교 친구 말고도 대학에서 새로 인간관계를 만들다가 나를 본 거니까 그냥 내가 친구 1로서 반가운 느낌인데, 나는 가족 외에 사람을 보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인격체 자체가 반갑더라. 수능 원서 접수할 때 독학 재수하는 친구들이랑 내려오면서 이 얘기를 했는데, 그 친구들은 듣자마자 뭔 느낌인지 알더라고.”

제 얘기를 다 듣고 친구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하하! 야! 나도 대학 왔는데 중학교처럼 깊은 친구 사귀는 단계까지는 힘들어. 나도 그런 걸 보면 그게 네가 재수해서 생긴 문제는 아닐 거야. 또 나는 정원이 적으니까 소수정예 수업도 꽤 있어서 끼리끼리 노는 느낌이 강해. 끼어들기 힘든 분위기랄까? 그리고 내가 적응한다고 연락을 자주 못하다 보니까 어느 날 엄마랑 통화하는데 내가 연락하는 친구가 없더라고? 그래서 친했던 애들한테 연락 못해서 미안하다고 내 근황을 말했지.”

“아, 그래서 나한테도 연락한 거였어?”

“어, 그러네. 그래서 우리 연락된 거였구나! 아무튼, 그렇게 연락하면 신기한 게 뭔 줄 알아? 내 얘기를 하니까 걔들도 다 본인 얘기를 해줘. 뭐 어떻게 살고 있었고, 학교 다니고, 그런 얘기들? 나는 되게 좋았어.”

“그랬구나. 근데 나도 너랑 연락되어서 좋아. 사실 요즘 좀 슬럼프였거든. 새로 만나는 사람이 없으니까 괜히 내 잘못도 없고 다 지난 일에도 의미 없는 자책이나 하게 되더라. 나는 왜 학창 시절에 더 활발하게 못 지냈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야! 서울대만 생각해! 우리 집 바로 옆이 서울대야. 너도 와. 다 할 수 있어. 거기서 재밌게 놀면 돼.”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너랑 바로 옆방에서 자취하면 요리해서 나눠 먹거나 배달비도 아낄 수 있잖아. 덜 외롭고. 서로 부를 일 있으면 옆방에 벨 누르고.”

“그니까. 나도 생활비 쓰면서 느낀 건데 배달시키면 돈 아끼기 진짜 힘들어. 너도 빨리 올라 와. 나는 진짜 아깝다고 생각하는 게, 지금 이 순간에도 네가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어. 그러니까 서울대만 생각해. 의대만 생각하라고.”

“알았어. 알았어. 내가 지금은 마음의 여유가 없지만, 대학 붙어서 괜찮아지면 너한테도 더 잘할게.”

친구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너 원하는 대학 붙으면 슬퍼도 실실 웃으면서 다니는 거 아니냐?”

“아, 막 마약 한 것처럼? 하하! 원하는 대학 붙으면 뭘 하든지 재수보다는 행복하겠지. 나 진짜 누가 붙여준다면 머리 깎고 들어갈 수 있어.”


이렇게 3시간 30분이나 전화했습니다. 대단하죠? 이 친구랑 고등학교 2학년 크리스마스에 ‘서두’에서 언급한 그 버거킹 지점에서 ‘와. 우리가 이제 고3이다. 어떡해?’라고 하면서 밥 먹은 게 가장 최근에 만났던 것이었어요. 얼굴은 자주 못 봐도 서로 진심이라서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서로가 진심으로 대한다면 시간이 좀 지났더라도 어제 학교에서 본 사이처럼 돌아갈 수 있음을 알게 도와준 친구 C에게 정말 고맙다고 글을 남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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