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일기 20032023 Part3
제 기억상으로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명절 차례는 물론 6월에 있는 할아버지 제사를 할머니 댁에서 지냈습니다. 그래서 명절 전날에 어머니는 아침 일찍부터 차로 30분 거리인 할머니 댁으로 음식하러 가셨어요. 그러면 저는 어머니를 따라가서 사촌오빠들이 저를 봐줄 때도 있었지만(당시에는 같이 노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오빠들이 정말 착하게 ‘놀아준’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집에 단 둘이 있을 때도 있었어요.
저는 특히 5살 때부터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데요. 푹 자고 일어났더니 엄마가 없어서 순간적으로 당황했습니다. 엄마가 며칠 전부터 ‘이 날은 엄마가 할머니 댁에 가서 음식하고 있을게. ㅇㅇ이는 아빠랑 놀고 있어.’라고 알려줘도 막상 비몽사몽 하니 까먹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눈 비비면서 나오면 아빠가 ‘엄마 음식하러 갔어. 뭐 먹고 싶은 거 있어?’라고 했죠. 그러면 저는 보통 정신이 없어서 ‘으으응.’ 이랬습니다. 근데 지금 생각하면 명절 때 아빠랑 단 둘이 있는 날 꼭 돈가스를 먹었습니다. 그때는 배달 어플이 없던 때라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쌓인 배달 책자를 보고 시켜먹거나 아빠랑 차를 타고 돈가스집에 갔었죠. 통통한 일식 돈가스가 아니라 얇고 바삭바삭한 경양식 돈가스요. 식기를 완전히 다루기 힘든 때라서 아빠가 나이프로 ‘착착’ 소리를 내며 작게 잘라 준 돈가스가 정말 맛있었습니다. 한 번은 설날이었는데, 돈가스집에서 어린 딸이 아빠랑 둘이 돈가스 먹으러 왔다고 귤 두 개를 챙겨 주신 적도 있어요.
점심으로 돈가스를 배부르게 먹고 나면 꼭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명절 특집으로 투니버스나 챔프 같은 어린이 채널에서 애니메이션 극장판을 계속 틀어줬는데, 그때는 OTT 서비스가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않았기에 명절이 아니면 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거기 나오는 영화들을 몰아봤죠. 어느 장면에서 어떻게 전개되는지 대사까지 다 외웠지만 계속 봐도 재밌었어요. 오히려 늦게 일어나서 중간 부분부터 볼 때도 앞 내용을 알고 있으니 보는데 지장이 없었죠.
제가 그때부터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만화는 ‘짱구는 못말려’입니다. 아이들이 보기 좋은 장난스러운 장면이 많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가족, 친구, 반려동물에 대한 교훈 또한 많습니다. 저도 어릴 때는 그냥 재밌는 장면이라고만 생각했는데요. 커서 그 장면을 다시 보거나 유튜브가 상용화되면서 영화 요약 겸 해설을 볼 때면 다른 의미가 보여 저의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 소름 돋을 때가 많습니다.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에 이해한 내용, 주인공 부모님의 나이가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어린이를 그리워해서 감정 이입이 되는 장면, 그 사이에서 느껴진 괴리감.
그리고 어릴 땐 그저 지나가는 캐릭터라고 느꼈는데, 지금 보면 나랑 똑같아 보이는 캐릭터가 하나 있죠. 그렇습니다. 이름부터 재수, 삼수를 넘어, n수생들을 울리는 ‘오수’입니다. 이름은 오수이지만, 아직 4수생이죠. 짱구네 집이 짱구의 실수로 어찌어찌 날아가서 집이 다시 지어지는 동안 ‘와르르 맨션’이라는 1.5룸에서 살던 시절에 옆방에 사는 학생으로 등장한 캐릭터입니다. 오수가 처음 등장하면서 하는 자기소개를 어린 나이에 들었을 때는 솔직히 시험 몇 수 개념도 잘 몰랐고, 그냥 숫자 놀이로 대충 이해했는데요. 이제 입시를 겪어서 내용을 다 이해하다 못해, 오수가 걸어간 길을 저도 조금씩 걷고 있습니다… 갑자기 할 말이 없어지네요.
어… 지금 삶은 너무 팍팍하니 낭만 가득한 2000년대로 가봅시다. 돈가스 집에서 귤을 받았던 일을 생각하니 떠오른 비슷한 일이 있습니다. 제가 5살 때까지 엄마, 아빠, 저, 외삼촌 No.3 이렇게 4명이서 같이 살았는데요. 외삼촌이 저처럼 물건 정리하는 걸 좋아해서 세차를 엄청 열심히 해요.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차 랩핑에 조그만 흠집까지도 신경 쓰는 완벽주의자였습니다. 제가 물건을 대할 때랑 비슷한 것 같아요.
아무튼 삼촌이 같이 살던 시절 가끔 세차장에 가서 본격적으로 광을 낼 때면 저를 드라이브 삼아 데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3~4살이었고 그냥 삼촌 근처에 앉아서 세차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앞치마를 한 어떤 아주머니께서 저를 근처 가게로 데려가서 TV로 투니버스를 틀어주시고 공짜로 콜팝까지 손에 쥐어 주시더라고요? 제가 어릴 때까지만 해도 그게 가능한 ‘낭만의 시대’였습니다. 나중에 삼촌이 가게로 와서 애 봐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계산하겠다고 했는데도 돈을 안 받으셨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가게가 BHC였구나 했어요. 15년이 넘은 기억인데도 너무 좋은 추억이라 아직 생생하죠. 어릴 때는 더 강하게 느껴졌던 톡톡 쏘는 콜라랑 바삭한 치킨 너겟이 기억나요. 그분이 엄청 많이 주셨는데 순수할 때라 먹으면서 ‘조금만 더 먹다가 엄마, 아빠, 삼촌도 줘야지.’라는 생각도 했었어요. 결국엔 너무 맛있어서 6개밖에 못 남겼지만요…
지금 삶이 힘들 때 떠올릴 수 있는 추억 하나하나가 있음에 감사하고 저도 그나마 버티는 중입니다. 어린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신, 그리고 지금의 제가 글로써 자아실현을 할 수 있도록 제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행운을 빌며 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