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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명이오 Apr 27. 2023

잃어봐야 그 진가를 깨닫게 되는 건강

이 시련 또한 나에게 좋은 일로 돌아오길 바라며

 중학생 때 2년 정도 교정했지만 여전히 어설퍼서 교정전문치과를 찾게 되었다. 재교정이라서 1년 정도 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내 나름의 희망회로를 돌렸지만 처참히 무너졌다.


 “어… 사실 제 아들이 04년생이에요. 그래서 정말 딸 같은 마음인데, 이미 교정을 한 번 한 상태에서 재교정까지 할 마음을 먹기도 힘들었을 거잖아요? 이번에 확실히 끝내야 하는데, 두 번, 세 번,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재교정하기 어렵잖아요? 혹시 대학병원을 가보시는 건 어떠세요?”


 “대학병원이라면 부산대 병원을 추천하시는 건가요?”


 “네. 아무래도 거기가 부산에서 제일 크고, 여러 과에서 차트 공유가 되니까 적절한 치료를 받기 수월할 것 같아요. 저희는 교정치료만 해서 다른 치료는 여러 병원을 들르셔야 해요. 지금 보시면 신경치료된 윗니에는 보존과 치료가 필요할 것 같고, 위쪽 사랑니 두 개도 구강악안면외과에서 빼셔야 하고, 발치된 아랫니에는 아마 보철과에서 또 치료를 받으셔야 할 것 같아요. 교정 후에 아래잇몸 내려앉은 것도 그렇고… 여러과의 문제가 조금씩 섞여 있는 케이스거든요? 너무 멀어서 치료받으러 거기까지 가는 게 부담되실 수는 있어요. 근데 교정해보셔서 잘 아시겠지만, 치과 맨날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보통 3~4주에 한 번 가시면 되니까 그 방법이 더 좋으실 거예요. 근데… 이미 발치된 케이스라 거기서도 해결하기 쉽지는 않을 거예요. 처음에 교정과 진료로 가서 진단받으면, 다음에는 어느 과로 가면 된다고 알려주시니까 그렇게 치료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원장님께서 진료의뢰서도 자세히 써주셨다.




 양산에 있는 부산대학교 치과병원 진료를 봐야 할 것 같다고 하니 아빠가 차를 끌고 같이 가줬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 한 번 해보실게요. 다물어보시고… 네…”


 “전치 발치되어 있다는데 몇 번이에요?”


 “잠시만요… 음… 31번이요.”


 교수님께서 들어오시고 진료의뢰서에 쓰여있는 첫 교정받은 병원 이름을 검색하셨다.


 “요즘 사이트 없는 데가 많다. 그자? 음… 지금 처음 교정 끝난 지 4년이 지났는데, 저를 찾아오셨잖아요. 듣고 싶은 말이 뭡니까?”


 “저는… 교정을 했는데도 앞니 교합도 안 맞고, 턱관절도 아프고, 잇몸 퇴축도 심하니까… 교수님께서 재교정으로 개선해 주실 수 있다는 답을 원합니다.”


 “턱관절은 통증이 느껴진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7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7개월… 음… 그건 교정과 직간접적인 영향이 있다고 명확하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일단… 처음 교정을 접근한 방식이 이런 결과들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처음에 교정 치료받을 병원을 고를 때 좀 여러 군데 알아보시지 그러셨어요.”


 “거기서 교정 치료를 꽤 많이 하길래 괜찮을 줄 알았죠… 그때는… 제가 너무 어렸네요…”


 “그래도 부모님 다 계셨을 거 아니에요? 교정 전문의를 좀 알아보시지. 그 선생님은 무슨 전공이셨나요?”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셨어요…”


 “교정 전문의랑 구강악 전문의랑 바라보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죠.”


 “아, 아무래도 관점의 차이가…”


 “그럴 수밖에 없어요. 옛날에 했던 건 그렇다 치고, 지금 여기서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 재교정하려면 이걸 풀어내서 치아들을 원래 각도로 돌려놓아야 하는데, 발치한 부분에 분명히 빈 공간이 생길 건데, 그럼 그건 어떡할까? 임플란트를 해요? 그것도 전치에? 으으응~ 그건 아니지.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이 상태에서 재교정을 한다 쳐도 부작용이 따라오는데, 그게 지금 느끼는 부작용보다 덜하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럼 저는 이 상태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예. 그렇죠.”


 내 나이 이제 겨우 21살인데…


 “… 교수님께서 그렇게 많은 경험을 가지고 저를 보시는데도,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라도 없나요?”


 “지금 환자분에 대한 데이터가 많이 없는 상태인데… 안타깝지만 환자분을 도울 방법이 없네요. 다른 교수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지만, 저는 재교정을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강 반대편으로 너무 많이 건너와버렸습니다. 우리가 옷을 입을 때도 첫 단추가 제일 중요하지 않습니까? 지금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는데, 첫 단추로 돌아갈 방법이 없어요. 정말 극단적인 방법으로 뭐 처음에 했던 걸 풀고, 임플란트도 하고, 이것 저것 다 하자고 하기에는… 거기에 들어가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따졌을 때, 그렇게까지 해서 얻는 결과가 만족스럽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처음에 끝까지 안 알려주고 ‘일단 한 번 해봅시다.’하고 끌고 가는 것보단 솔직하게 상태를 말씀드리는 게 좋잖아요?”


 “네, 그렇죠… 하아… 교수님,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예.”


 “이… 아랫니 뿌리 쪽에 빈 공간은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없습니다. 그게 왜 그렇게 되는지 발치 전에 이유는 들으셨나요?“


 “아뇨… 저는 그냥 공간이 부족해서 4개를 다 살리고 교정하면 주걱턱이나 돌출입처럼 될 거라는 얘기만 들었어요…”


 “지금 그 부분은 처음보다 개선된 것 같나요?”


 “아뇨 딱히…”


 ”허허, 그럼 뭐야… 치아 각도에 안 맞게 안쪽으로 밀어 넣은 형태거든요. 그러면 잇몸뼈가 그렇게 내려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 나잇대가 되어서 늦게나마 교정을 시작하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전치 발치를 진행할 경우에 ‘블랙트라이앵글이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 두 번, 세 번 안내해 드리고, 동의서까지 다 써서 진행하는데, 하고 나면 하나같이 하시는 말씀이 ‘이거 어떻게 좀 안 됩니까?’입니다. 그건 방법이 없습니다. 굳이 치아 삭제를 하려 해도 절반 이상을 갈아내야 할 텐데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말씀하신 치아 삭제라는 방법은 라미네이트 같은 건가요?”


 “아뇨. 치아가 삼각형으로 생겼으니까 구멍이 크게 보이는데, 옆면을 평평하게 갈아내고 간격을 더 좁히면 빈 공간이 점점 줄어들잖아요?”


 교수님이 왼손으로 V를 만들어 상세히 설명하셨다.


 “공간이 이렇게 벌어져 있다. 치아를 깎는다. 둘을 붙인다. 공간이 줄어든다. 치아 삭제. 이해가 되시나요?“


 “예.”


 ”그걸 진행할 때도 보통 0.5 이하만 삭제하는 걸 목표로 하는데, 지금 발치된 부분까지 메우는 건 불가능해요. 환자분 상태에서는 추천할 수 없습니다.”


 “예… 교수님, 이제 완벽히 이해했습니다…”


 “예. 이제 내려오셔도 됩니다.”




 차에 타서 내가 너무 우울해 보이니까 아빠가 말했다.


 “어… ㅇㅇ아, 혹시 배고프나? 뭐 먹을래? 아빠 밥 먹을 건데.”


 “응…”


 “뭐 먹고 싶은 거 있나?”


 “국도 타고 가면서 어디 먹으러 갈 데 볼까?”


 “응.”


 “그래. 간판 보고 그냥 들어가자. 와, 아빠 이 동네 15년 만에 와보는 것 같다. 이래 변했나?”


 “여기가 어딘데?”


 “여기가… 북구 화명동 요쪽이지. 여기 옛날에 ㅇㅇ고모 살았다이가. 어, 저기 ~~국밥 먹을래?”


 “응.”



 오늘따라 국밥이 왜 이렇게 쓴 것인가…


 “아빠도 교합 안 맞아?”


 “응?”


 “위아래 교합 잘 안 맞냐고…”


 “없어도 다 잘 살더라. 괘않다.”


 “그래… 어차피 나이 먹으면 다들 임플란트 하는데 뭐… 바꿀 수 없잖아.”


 “그래. 있는 거 관리 잘하면 되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멀쩡한 이가 없으면 삐뚤어진 이로… 전화위복. 내가 꼭 치아 관리 열심히 해서 백몇십 살까지 살다가, 죽기 전 마지막 끼니까지 본니로 꼭꼭 씹어 먹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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