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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명이오 Apr 29. 2023

주어진 것에 온전히 만족하는 삶에 관하여

답은 이미 내 안에 있으니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일이었다. 우리 부모님 회사의 옛날 사장님이셨던 친가 친척분은 업계 모임을 다니셨다. 거기서 매년 진행하는 패키지여행에 친척분이 참여하실 때면, 엄마 아빠는 그 빈자리를 채우려 더 바쁘게 일해야 했다. 그 와중에 엄마 아빠는 내 몫의 경비를 추가로 지불하고, 일하는 동안 딸만이라도 여행 보내는 방법을 택했다. 당신들은 나를 데리고 해외여행까지 갈 시간을 낼 수가 없으니, 나라도 먼저 다녀오라는 뜻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 아빠는 비행기라고는 신혼여행 때 타본 제주도행이 다였다.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 4년 동안 매년 겨울방학 시즌에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어르신들의 입맛에 맞춘 패키지여행이라 지역은 주로 비행시간이 짧은 동남아시아와 일본이긴 했으나, 내 미흡한 영어라도 실전에서 써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2017년 추석 황금연휴 때 엄마 아빠도 40대 중반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여권 도장을 찍어봤다. 그곳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였다. 여행 막바지에 우리 가족과 친해진 몇몇 분들과 호텔 1층 펍에 모여서 놀기도 했다. 나는 거기서 일하시는 필리핀 출신 가수분과 영어로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일행 중 우리 엄마 옆에 앉아있던 신혼부부가 나를 부르셨다.


 “ㅇㅇ아, 잠깐 이리 와볼래요?”


 “네? 저요?”


 “이게 좀 상처가 될 수도 있는데요…”


 “아,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삼촌이 치과의사인데요. ㅇㅇ이 목이 약간 앞으로 튀어나와 있어요.”


 “어? 전혀 몰랐어요.”


 “이렇게 엄지랑 검지 손가락을 턱에 붙여서 목을 뒤로 당겨볼래요?”


 부인분도 옆에서 나를 지켜보며 올바른 동작을 보여주셨다.


 “이렇게요?”


 “그렇게만 해도 충분히 예뻐요.”


 “응, 응. 예뻐요.”


 “그렇게 심하진 않은데, 약간 일자목으로 보여요. 유튜브에 스트레칭 영상 많으니까 보고 따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교정 시작할 때 광대보다 턱이 튀어나왔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목은 처음 들었어요.”


 “지금부터 스트레칭해주면 돼요. 사람 얼굴형이 크게 분류하면 총 세 가지거든요? 1급은 정상, 2급은 광대가 더 튀어나온 형태, 3급은 턱이 더 튀어나온 형태. ㅇㅇ이 같은 경우는 3급, 중안모함몰이에요. 1급이 정상이지만, 2급, 3급이라고 해서 미인이 없는 건 아니에요. 연예인으로 예를 들자면, ~~씨는 2급이고, ~~씨는 3급이에요.”


 “아… 제가 궁금한 게 많은데요. 잘 때 입을 벌리고 자면 턱이 더 튀어나온다거나, 음식을 먹는 방향에 따라서 턱이 달라진다는 얘기들이 진짜인가요?”


 웃으면서 고개를 살짝 흔드셨다.


 “하하, 사람이 후천적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사실 1%도 되지 않아요.”


 “아…”


 “아까처럼 턱 당겨 볼래요?”


 “이렇게요?”


 “응. 수술까지 가지 않고 그렇게만 해도 충분히 예뻐요. 스트레칭만 많이 해줘도 돼요.”



 며칠 전에 대학병원 진료를 다녀오고, 상념에 잠겨 있다가 갑자기 그때가 떠올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적어도 내 상태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으니, 바꿀 수 없는 문제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해답이 나오고, 때로는 그것이 내 안에 이미 있을 때가 많다. 바꿀 수 있는 건 최선을 위해 노력하고, 그럴 수 없다면 ‘이미 있는 것을 어떻게 지혜롭게 쓸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절망에 빠져있는 것보단 낫겠지… 제발 그러길 바라며 오늘도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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