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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명이오 Nov 09. 2022

학생의 입장에서 본 ‘학군의 중요성’

일반화의 오류가 아니라 결국 확률의 싸움

 저는 지방 광역시 출신이라 서울 중심지에서 벌어지는 교육 문화에 대해서 직접적인 경험은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지방에서조차 직접 느낀 학군의 중요성을 끄적여볼까 합니다.


 (지금 수험생활을 중심으로 연재하고 있는 ‘수험일기 20032023’에서 다루려고 했으나, 학군이 결국 경제력과 관련되기에 조금 민감한 소재이면서 수험생활이라는 주제와 거리감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적어 봅니다.)


 먼저 제가 어떤 환경에서 교육받았는지부터 말씀드릴게요. 저는 2000년대 초반 생이고, 부모님께서 한 직장에 다니시는 맞벌이 가정의 외동으로 자랐습니다. 지금도 그 직장에 장기근속하고 계시고요. 여건상 어머니는 저를 출산하기 바로 전날까지 정상 근무하셨고, 제가 3~4살이 될 때까지 재택근무와 집안일을 병행하셨어요. 복직 이후부터 지금까지 아주 성실히 가정에 기여한 가장 이상적인 배우자&어머니&며느리상이죠.


 아버지도 제가 태어난 다음날이 토요일이었는데 그거 겨우 휴무받아서 쉬신 일이 다입니다. 그때는 출산/육아휴직이 지금보다 훨씬 힘들었고, 토요일/일요일 근무도 흔했기 때문에 월차가 딱히 보장되지 않아서 힘드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여차저차 제가 태어났지만 양가 조부모님의 육아 도움을 받을 여력이 안 되었고, 그렇다고 베이비시터를 고용하기는 애매한 정말 평범한 가정이었습니다. (제가 아이의 입장에서 직접 겪어봤기 때문에 ‘이래서 저출산이구나…’라고 종종 생각합니다.)


 그래서 집은 항상 학군지에 있었으나, 어릴 때 부모님과 출퇴근을 같이하면서 몇 년정도 상대적으로 비학군지에서 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줄 알았으나, 커서 생각하니 절대 정상이 아니고, 그래서 ‘내 아이는 꼭 상위 학군지에서 평생 키워야지!’라고 느낀 몇 가지 일화를 항목별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저만 그렇게 느낀 것인지 의아해서 나름 찾아본 결과, 제가 지금 생각한 내용이 정상이더라고요. 저의 경험이 특수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학부모님들과 교육 전문가분들의 비슷한 의견이 있는 내용이니, 불편하신 분들은 뒤로가기를 누르시면 됩니다. 여러분의 에너지는 소중하니까요.


1. 내면에 새겨진 ‘자연스러움의 정의’가 다릅니다.

  항목은 제가 수험일기에서 개천 되려고 하는 저와 환경의 중요성을 중심으로 비슷하게 서술한 챕터가 있지만, 여기에 맞게 풀어보겠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일  점차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어린 학생들이 전자기기에 과몰입하게 되는 문제가 심화되었는데요. 확실히 비학군지에서 만난 애들이 전자기기를 과하게 사용합니다.


 어떤 집은 집에서 부모님이 업무 시간 외에 책 읽고 전공 공부하시니 자녀가 어려도 같이 공부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다른 어떤 집은 부모님이 TV, 컴퓨터, 스마트폰 위주로 여가를 보내시니 자녀 역시 전자기기에 자연스럽게 입문하게 되는 것이 환경의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친구와 카페에 가서 음료 받아오는 길에 보인 옆 테이블이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습니다. 문제집을 끙끙거리며 푸는 초등학교 저학년 딸과 중간중간 딸의 행동을 검사하며 스마트폰을 보는 엄마… 교과목 내용을 같이 공부하지 않더라도, 옆에서 취미로 책 정도는 괜찮지 않나 싶습니다.


2. ‘아쉬운 소리’를 듣게 됩니다.

 ‘너는 나보다 형편이 나으니까 내가 좀 더 받아도 된다.’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계속해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소리를 합니다. 호의를 권리처럼 아는 것을 넘어서죠. 본인의 권리를 추구하듯이, 호의를 추구하려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만나서 정말 ‘찐친이라고 생각했던’ 친구 한 명이 있습니다. 그 친구를 어쩔 수 없이 손절하게 된 계기가 생일선물 문제였습니다. 서로 학교가 달라져도 생일 때는 그 친구 집에서 꼭 만나서 대화 나누고 잘 지냈는데요. 그런 관계가 어느 순간 확 변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저는 학생 때는 생일선물이라고 해봐야 보통 서로 부담 안 주고 챙겨주려고 만원 정도로 사서 편지와 함께 줬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뭐 받고 싶은 거 있냐고 물어봐도 그냥 읽고 싶던 책 한 권을 얘기하곤 했죠.


 제 생일이 1~2월(솔직한 글이 나오도록 필명을 쓰고 있으니 대략적으로 말씀드립니다.), 그 친구 생일은 여름 어느 날입니다. 평소에 연락도 많이 줄었던 상황입니다.


 갑자기 그 친구 생일 2~3주 전에 카톡이 왔어요.(이것 역시 내용은 살리고 제 정체를 숨기기 위해 재구성했습니다.)


 ‘너 ㅇㅇ(제가 자주 입는 브랜드) 할인 얼마나 돼? 나 ~짜리(대략 4만 원) 바지 사고 싶은데 너무 비싸네.’

 ‘나 ~라서 15% 할인 가능할 걸?’

 ‘차라리 너랑 다음에 ㅇㅇ를 와서 사거나, 생일선물로 이걸 받거나 하는 게 낫겠다. 15%면 괜찮네.’

 저는 순간 멍해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지만, 평소에 그렇게 나쁜 요구를 꾸준히 해온 친구가 아니었으니 최대한 밝게 답했습니다.

 ‘그렇지 ㅋㅋㅋㅋㅋ 한 달만 참아’

 ‘(바지 전체 사진 1장, 시리얼 번호와 바코드 사진 1장) 빠이빠이~’

 저한테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더 이상 밝게 할 수 없었습니다.

 ‘기억해놓을게’

 ‘좋아. 나 시험 ~에 끝나고 ~에 생일 ~에 모고 ㅋㅋ’

 ‘나도 그쯤 시험 끝 ㅋㅋㅋㅋㅋ 시간 되면 그 주말에 보자’

 ‘그때 낮이 좋겠다’

 ‘그래그래’


그렇게 친구가 원하던 바지를 사서 현관문 앞에서 벨을 눌렀습니다.


 “잠깐만~ 나 아직 머리 감고 있어서.”

 “어, 알았어. 기다릴게.”

 몇 분 있다가

 “너 바지 갖고 있지? 나 빨아놓은 게 없어서 먼저 줘봐.”

 “응. 여기.”


 “이제 들어와. 하, 바지가 없었는데. 딱 맞았네.”

 “그러게.”


 그렇게 그 집에 있는 동안 이상하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없더라고요. 저만 이상하게 느꼈던 것인지, 그 친구는 당연하게 받을 것을 받았다고 생각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는 제가 놀러 왔다가 돌아갈 때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서 제가 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나오더라고요.


 “왜 나왔어?”

 “어, 가는 거 봐야지.”

 근데 건너편에서 다른 친구가 왔습니다.

 “왔어?”

 “어, 안녕.”

 “나 차 와서 갈게.”


 다른 친구가 오기 전에 제가 비켜주기를 바란 것일까요? 약속을 연달아 잡는 걸 저만 이상하게 생각한 것일까요?


 그날 이후로 친구로서의 정은 다 떨어졌으나, 제 생일 때 어떻게 나오나 싶어서 지켜봤습니다. 다시 겨울이 오고 제 생일날이 되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생일을 축하해줘서 답장했는데, 그 친구는 연락이 없었습니다. 오후에 인스타를 켰는데, 그 친구 스토리는 떠있었습니다. 눌러서 확인해보니, 당시 사귀던 사람과 커플템을 맞춘 인증샷이 있었어요.


 ‘본인은 2주 전부터 생일을 구실로 평소 선물 가격보다 많은 액수인 바지는 뜯어가듯이 받아놓고, 내 생일에는 일부러 피하는 거야? 연락은 하기 싫은데, 나도 볼 수 있는 인스타 스토리는 올리고? 나만 이상한가? 하… 어떻게 나오는지 보자.’


 그렇게 제 생일이 끝나기 10분 전인 오후 11시 50분쯤에 연락이 왔습니다. 카톡 5줄 정도요.


 ‘ㅇㅇ 생일 축하해. 오늘 잘 보냈어? 우리 엄청 오랫동안 못 봤는데 입시 끝나면 무조건 보자! 남은 방학 알차게 보내고 고3 화이팅(큰 이모티콘)’

 물론 선물 관련 얘기는 일절 없었고 이게 다입니다.

 ‘그래 축하해줘서 고맙고 시간 나면 보자! 너도 고3 화이팅하고 마무리 잘하고 기쁜 마음으로 만나.’


 그렇게 그 친구랑 쌓은 좋은 추억만 생각하고 더는 마음을 두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저도 정리하려니 마음은 불편했으나, 제가 연락을 안 하니 그 친구도 연락이 없더라고요. 고3 때 간혹 제가 인스타 스토리를 올리면 짧은 코멘트 두 번 정도만 있었어요.


 몇 달 동안 빈번한 연락이 없다가 9월 원서접수철이 되었습니다. 먼저 인스타 스토리로

 ‘뭐하고 지내냐. 나는 이제 원서 쓸 곳 다 정했어.’

 순간 뭐라고 답할지 한참 고민했고,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좋은 얘기가 안 나올 것 같아서 아예 읽지 않았습니다.


 열흘 뒤에 카톡으로도

 ‘너는 원서 넣었어?’

 저는 카톡을 볼 수 있을 때 최대한 빨리 답을 주는 편인데, 카톡을 들어갈 때마다 맨 위에 알림이 떠있어서 항상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후 열흘 정도가 지나고

 ‘바쁜가 보구먼’

 이것 역시 읽지 않았습니다. ‘나한테 함부로 대했으니 앞으로 멀어지도록 매정해져야지’라고 생각해도 쉽지 않았습니다. 저 나름대로 힘들어하면서 억지로 단념했습니다.


 갑자기 12월 말 오전 6시에 카톡이 왔습니다.

 ‘꿈에 네가 나왔네. 엄청 오랜만에 만나서 해운대에서 놀았어. 실제로도 만난 지 한참 되어서 궁금한데 잘 지내나 모르겠네. 아프거나 힘든 일 있으면 마음 내킬 때 연락 줘 언제든 반가울 것 같은데’

 저는 이 친구가 친구 관계 개선에 노력하는 것인가 싶어서 결국 바로 답을 했습니다.

 ‘나 요즘 아무래도 의사가 하고 싶어서 이과 재수 준비 중이야. 그냥 인간관계 회의감이 들어서 좀 숨어 살았어.(추후에 쓸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실제로 일이 있었습니다.) 부모님 출근하시면 전화라도 하자. 지금은 나도 샤워 중이야.’

 ‘아하 알겠어. 전화 주면 바로 받을게.’

 그렇게 밀린 얘기를 하고 몇 주 뒤에 마침 친구가 저희 집 근처에 공적인 일이 있어서 끝나고 보자는 약속을 해서 한 번 만나봤습니다. 저만 잊으면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더군요.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다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구나…’라고 느껴서 관계가 제자리로 돌아간 계기가 있습니다. 슬프게도 이제 우리 관계에서 ‘제자리’는 ‘원만함’이 아니라 ‘이별’을 의미합니다.


 열흘 전부터 구체적으로 친구가 ‘이 날짜들이 괜찮다’라고 해서 친구 집 근처에서 잡아놓은 약속을 갑자기 사흘 전에 취소하려고 인스타 디엠을 보내왔습니다.

 ‘요새 밖에서 만나기 넘 위험한 듯ㅜ’

 그래서 저는 최대한 좋게 끝내려 친구 의견에 동조하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나도 그 생각 중이야(이후 혹시 코로나 걸리면 안 되는 사정 서술)

 ‘그렇지 만나는 거 미룰까 아예 나중으로…

 ‘그러자 오징어 게임보다 빨리 걸리겠다

 라고 웃으며 넘기려 했는데 갑자기 그때부터 안 보더니 18시간 뒤에

 ‘ㅋㅋ. ㅠ라고 답장을 하더라고요. 용건이 끝났으니 연락도 필요 없다는 것일까요?


 거기까지는 백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근데 막상 약속 당일에 혹시나 싶어서 인스타를 켜서 친구의 스토리를 봤는데, 다른 친구들이랑 모여서 올린 사진이 있더라고요. 데자뷔인가 싶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본인 편하려고 여러 가지로 책임은 회피하되, 인스타 스토리는 올리고… ‘이것도 인스타 감성으로 쳐줘야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3.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가정교육의 영역인 예절’에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직접 겪은 예를 우선 하나만 풀어 볼게요.


 제가 학교를 안 가는 날에도 부모님은 출근을 하시니 저를 직장에서도 꽤 오랜 시간 키우셨습니다. 하교도 부모님 직장으로 해서 퇴근하실 때까지 시간을 보냈었죠. 직장에 초등학교 친구들이 놀러 온 적이 있는데요. 직원분들 간식 겸 거래처 접대용으로 놔둔 음료를 보관해야 하니 사무실에 냉장고가 당연히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비타 음료, 직원분들이 정기 배달 서비스를 신청하신 야쿠르트 음료(이거 꽤 비싸더라고요?), 아이스크림 등이 들어있었죠. 친구가 왔으니 어머니께서 냉장고에서 야쿠르트 음료를 하나씩 나눠주셨죠. 근데 다 먹고 본인들이 냉장고를 직접 열어서, 말도 없이, 마음대로, 여러 번 꺼내 먹더라고요(???)


 많이 먹는 건 좋은데, 보통 대접받은 음식을 다 먹으면

 “어머니, 이 통 여기 두면 될까요?”

 “어, 다 먹었니? 그거 아줌마 주면 돼. 더 먹을래?”

 “실례지만, 더 먹어도 되나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흘러가지 않나요? 솔직하게 더 먹겠다고 말하면 어른들도 딱히 뭐라고 안 하고 오히려 잘 먹는다고 좋아하실 건데, 손님으로 방문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라 해도 10살이 넘은 나이였는데, 손님으로 온 자리에서 냉장고에 손대는 행동이 의아했습니다. 마침 야쿠르트 배달하시는 아주머니가 와계셨는데, 그분께서도 그 장면을 보시고 나중에 어머니한테 따로 말씀하셨어요.


 “ㅇㅇ엄마, 쟤들 아무리 가정집이 아니라 직장에 놀러 왔다 해도 행동이 좀 이상하지 않아? 저건 가정교육으로 당연히 들어가는 문젠데. 손님으로 왔으면서 남의 냉장고를 벌컥벌컥 열다니 말이야.”

 “그렇죠? 저도 일에 집중하다가 문 여는 소리에 잠깐 보고 당황했어요.”

 “그리고 마음대로 먹은 음료도 가격대가 좀 그래. 우리 회사 비싼 제품을 여러 개씩 먹다니. 나도 애 키우는 엄마지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야.”


 연락을 한동안 안 했는데 어떤 날에는 갑자기 토요일에 찾아와서 사무실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가던데요? 같이 놀 때야 제가 주말에만 대신 쓰던 아버지 컴퓨터로 같이 놀았다고 해도 너무 사람을 이용하는 게 아닌가 했습니다. 어머니도 보시고


 “연락 안 한지 오래되었지 않아? 놀러 온다고 얘기했었어?”

 “응. 나한테 연락도 없었는데? 좀 당황스럽다.”

 “그래? 여기가 무슨 PC방도 아니고…”


4. 아이 혼자 의지가 있어서 수업에 열심히 참여해도 공부를 매우 방해합니다.

 제가 수업시간에 직접 겪은 일입니다. 초등학생이라도 화장을 일찍 시작한 여자애들이 있었어요. 초등학교에서는 책상 4개를 모둠으로 붙여서 하는 수업이 많잖아요? 한 번은 자리를 바꿨는데, 그런 부류의 여자애들 3명과 제가 같은 모둠이 된 것이죠.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이후 첫 수업 시간부터 걔들이 저한테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이동 수업인 영어 시간에 저는 열심히 수업을 듣고 활동도 참여하는데, 그 세 명이서 공부하는 저를 놀리듯이 제 필통을 뺏어서 서로 주고받고 저한테 던졌습니다. 그것도 여러 번이나 맞아서 제가 영어 선생님께 말씀드리니까 개별적으로도 지도하시고, 선생님들 쓰시는 펭귄 마크 쿨메신저를 통해 담임선생님께도 알려드리곤 했죠. 결국에는 자리를 옮겼습니다.




 “학군”


 중요합니다. 제가 몇 년 뒤에 결혼해서 애 낳아도 극상급 학군지로 가고 싶을 정도로 아주 잘 경험했습니다. 저도 어린 나이에 비하면 부동산 공부를 꽤 한 편이라서 이게 경제적으로 모두에게 쉬운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능력이 닿는 곳까지 최상의 학군지로 가고 싶네요.


 중학생 때 SNS를 구경하다가 본 재밌는 비유가 있습니다. ‘코이’라는 물고기의 한 종류의 특징을 누군가 정리했더라고요. 코이는 작은 어항, 연못, 강 등 본인이 사는 환경이 얼마나 방대한지에 따라 본인의 크기도 달라진다고 합니다. 작게는 5cm에서 크면 120cm 정도까지. ‘용의 꼬리냐, 뱀의 머리냐’ 의견이 분분해도, 이왕이면 용의 머리나 평균이라도 용의 몸통 정도가 되고 싶지 않을까요?


 저도 커서 공부를 하면서 어머니한테 가장 많이 했던 원망 중 하나가 어릴 때 몇 년이라도 비학군지에서 자라게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은 학군지여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 혼자 둘 수 없으니 어머니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로 공부가 힘드니 마음 아프게도 그런 말이 나왔어요.


 커서 영어 유치원의 존재를 알고는 저를 그 환경에 두지 않았다는 것도 잠깐 원망했습니다. 주변에 영유 나와서 자연스럽게 영어 잘하는 친구를 많이 봤거든요. 부모님 해외 파견 근무 기간에 따라가서 유학을 하거나 방학 때 어학연수 다녀와서 제2외국어도 잘하는 친구가 많았습니다. 저는 개천용 욕구가 강해서 혼자서 외국어를 어느 정도 익혔지만, 자연스럽게 생활하며 터득한 주변 수준에 이를 수 없고, 찾아서 배우는 과정은 더 고되고… 개고생 했습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진리입니다. 사람은 개개인을 고쳐 쓰지 않고, 다른 사람으로 바꿔 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려면 환경이 바뀌어야 함은 제 학창 시절 경험으로 충분히 느꼈습니다.


 어릴 때는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니, 선생님들이 전근 가시면 자주 뵐 수 없어서 아쉽고, 졸업해서 스승의 날에 방문해도 계속 뵐 수 있게 한 학교에 계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요. 학군에 따른 근무 난이도를 고려하니 확실히 선호/기피 학교가 생길만합니다.


 누군가는 이 글을 보고 제 인복이 박해서 생긴 개인적인 문제라고 비난할 수 있으나, 이후 제대로 된 학군에 자리 잡은 중학교~고등학교에서 만난 제 친구들을 생각하면 개인 차원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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