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 아래로 금이 가기 시작한 스무 살의 하반기를 마주한다.
2008년 하반기는 상반기와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깨고 싶지 않을 정도로 꿈속에서는 자유롭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현실의 불안과 누군가의 죽음, 뉴스 같은 것들이 꿈속까지 따라 들어왔고, 그 혼란은 어김없이 나를 괴롭혔다.
2008.07.05
대단한 꿈을 꿨다. 누가 죽었다. 자살.
꿈과 실제의 상황이 연결이 된 터라 꿈과 현실 사이에서 헤맸다.
꿈속에서 나는 그 죽음을 첫 번째로 발견한 사람이 되었고,
112에 전화해 횡설수설했다. 아니지 아니지, 그 이전에 119에 전화를 해야 하지.라고 하면서
119를 불렀다.
그리고 시간은 앞으로 넘어가 장례식장. 생각했던 대로, 나만 빼고 모든 사람이 울었다.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그게 죄책감이 되었다. 기억 안 나는 사람을 붙잡고 죽었어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정말로 눈물이 나지 않아서 놀랍다고, 어쩌면 죽길 바란다는 생각을
읽고 사라져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하나도 안 슬펐다. 진짜로, 생각했던 대로 하나도 안 슬퍼서 오히려 자신한테 소름 끼쳤다.
그래봤자 꿈일 뿐이지만. 슬프지 않은 대신, 죄책감은 엄청났다.
여기까진 내 감상이고 피 봤지, 죽는 거 봤지. 이거 순전히 그 사람한테 좋은 꿈이다.
내가 직접 죽는 꿈을 꿔야 좋은 꿈이라는데, 남 좋은 꿈만 꿨다. 그것도 내가 조홀라
싫어하는 놈 좋으라는 꿈을.
감정태그 : 분노
살아가면서 어린 나이에 증오하는 대상이 생긴다는 건 참 슬프고 괴로운 일이다.
이건 내게 트라우마를 남긴 대상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의 죽음은 현재의 나로서도 환영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린 내 꿈속에서 그가 자살을 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착하게 119도 불러주지 않았는가.
꿈속에서 슬퍼하지 않은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기특하다. 아집을 가지고 이 악물고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다는 것 또한 멋지다고 말해주고 싶다. 착한 스무 살의 나는 슬퍼하지 않았다는 자신을 소름 끼쳐했지만, 시간이 흐른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어떤 결의가 느껴지는 꿈이라 좋다.
꿈 해몽도 열심히 찾아본 모양이다. 내게 트라우마를 준 상대는 잘 살고 있을 것이다,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꿈을 또 기다리고 있다. 아직도.
2008.07.09
오래간만에 밤늦게 바람 쐴 겸 외출.
핸드폰 배터리 충전도 그득 해놨고, 방전될 걱정은 없슈.
그리고 오늘 꿈에는 G가 나왔다, 그리고 전진이 나왔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영양가 없게 G가 전진으로 바뀌었다. 전진을 손가락질하면서
“우와, 전진이다~ 전진~ 전진~”
개꿈.
감정태그 : ?
종종 홍대 주변으로 바람 쐬러 버스를 타고 늦은 밤에 나가곤 했다.
24시 카페 같은 데에 노트북을 펴고 과제를 하거나, 스무 살을 만끽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소꿉친구가 나왔고, 그는 연예인으로 변했네. 그래서 바로 개꿈이라고 남겨놓은 모양이다.
2008.08.09
슬슬 또 꿈에 나올 때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꿈에
나왔다. (요샌 나온 적이 없었으니까.) 결국 너무 더워서 이렇게 일찍 일어나고 말았지만, 꿈
내용도 내용이라 그냥 다시 자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
분명 계속 그렇게 익숙해질 때쯤마다 한 번씩 팟 하고 꿈속에서 등장하기 때문에.
너무 더워서 찬물로 샤워하고 진짜 너무 더워.. 밤엔 올림픽 개막식 보다가 잠들어서
한국 선수단 입장 놓쳤다. 지금 얼음 왕창 넣은 콜라가 무진장 마시고 싶어 죽겠는데, 엄마가
탄산음료 사는 것을 거부한다, 최악에 최악.. 죽을 맛이다.
감정태그 : 그리움
2008년은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던 해였다. 조그만 집에 가족이 옹기종기 오래 살던 때이기도 하다.
나이만 먹었지 생활 방식과 환경은 청소년 시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떠나간 관계들,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어린 시절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많았던 것 같다. 스무 살을 보내는 동안 이 친구에 대한 꿈은 끊임없이,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그렇게 너의 꿈은 내 일상이었다.
2008.09.27
꿈에 나와서, 정말 생생하게 나와서 손을 뻗으면 닿았어서 그래서 계속 꿈을 꾸려고 열심히 잤다.
중간중간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일어날 수가 없었다. 너무 생생했다.
너무 밝게 웃어 주었다, 그 행복한 아우라를.
감정태그 : 그리움
어렴풋이 떠올려보면 이 꿈은 장국영에 대한 꿈이다.
고등학생 때 엄마의 추천으로 그의 영화를 하나둘 찾아보며 빠져들었고, 그 눈빛을 꿈에서라도 더 오래 보고 싶었던 것이다. 2008년 이전의 나는 꿈에서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썼는데, 이 꿈에서는 처음으로 깨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이 무렵부터 꿈은 빠져나와야 할 곳이 아니라, 붙들고 싶은 곳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2008.10.02
세상 미쳤다. 그리고 나는 자고 있었다. 높은 톤에 번쩍 눈을 떴다.
사람들이 자꾸 죽어. 아 생각해 보니 오늘 꿈은 사기가 저하되는 꿈이었다.
꿈꾸면서 아 절대 잊어버리면 안 돼라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최진실이 죽었대!! 하고 꿈을 뚫고 들어와서,
꿈 때문에 울뻔했던 것까지만 기억난다. 뭔가 굉장히 소중한 부분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그대로 계속 누워서 엄마가 읽어주는 최진실 관련 기사를 듣고, 회사 가는 엄마를 배웅하고, 다시 누워 잠에 들었다.
감정태그 : 그리움, 슬픔
같은 날, 현실의 기록에도 죽음의 기척이 짙게 묻어 있다. 싸이월드에는 이런 문장들이 남아 있다.
한숨만 나온다. 기브미 쪼꼬레, 예전에 엄마 병원에 있었을 때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 몇은 벌써 돌아가셨다고 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용기 내서 안부 문자를 보냈던 내 엄마는 걸려온 전화에 울었다.
나는 또 잊고 있었던 엄마의 부재가 얼마나 큰 이야기인지 다시 생각했다. 엄마는 울었다.
엄마를 안아주려고 크게 두 팔 쫙 뻗고, 다가와 다가와 베이베 했는데 엄마가 웃었다. 우리 엄만 낙천적이야.
전화 통화 했을 때, 안부를 물었던 아저씨는 얼굴도 잘 기억 안 나는 그 아줌마의 최근 상태가 매우 악화됐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일주일, 그놈에 일주일. 몇 번을 살고 싶어 기를 쓰고, 몇 번을 살게 하려 기를 쓰고 발악해도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꿈에서는 연예인의 부고가 엄마의 목소리를 타고 잠을 뚫었고, 현실에서는 병원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전화를 받고 울었고, 나는 그런 엄마를 두 팔 벌려 안아주었다.
병원이라는 공간 안에서는 고작 일주일 차이로도 사람의 상태가 급격히 달라진다.
누군가는 악화되고,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어떻게든 더 살아보려고 버틴다. 그래서 이 기록에서 “그놈에 일주일”이라는 말은, 시간 자체를 원망하는 말처럼 읽힌다. 이 무렵의 꿈은 더 이상 현실과 분리된 세계가 아니었다.
현실의 충격이 그대로 밀고 들어오는 통로가 되어 있었다.
2008.10.09
아오 깜짝 놀랐다. 꿈속이 오랜만에 굉장히 리얼했고
빌어먹을 하필이면-_-.
꿈속에서 읽었던 내용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니라고 했다.
안된다고 했다. 아무런 힘도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했다.
전에 했던 말들을 반복했다. 그렇게 거지 같은 꿈 속에서 한참 편지를 읽으며 괴로워하고 있을 때 마침 전화가 왔다.
다행이었다. 그래서 깰 수 있었다.
감정태그 : 슬픔, 그리움
꿈속에서의 편지. 누군가에게 편지를 통해 몇 번이고 거절과 무력함에 대한 이야기를 받아 보는 것은 썩 유쾌한 꿈은 아니다. 전에 했던 말을 반복했다는 것은, 현실에서도 거절을 거듭 받았다는 것이다. 난 누구에게 어떤 거절의 말을 들었던 것일까. 기억이 나지 않아 누구였는지도 가늠되지 않는다. 다만 어쩔 수 없다는 말, 아무런 힘도 없다는 말이 깊이 남는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전화가 걸려와 꿈에서 깰 수 있어 빠져나올 수 있었네.
2008.12.06
그동안 꿈을 못 꾼 탓에 꿈을 몰아 꿨는데, 잠깐 자고 깨고 다시 잠들고 깨고를 반복하면서 다른 내용의 꿈들을 3-4개 정도 꾼 것 같다. 그런데 기억에 정확하게 남는 꿈은 한 가지인데 꿈속이 고양이 천지였다, 너무 좋았어.
에메랄드 눈의 흑묘, 치즈 태비, 붉은 태비 등등.. 꼭 안을 때의 느낌이 너무 따뜻하고 생생해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 녀석들은 내 주변을 맴돌고 맴돌고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면서 나를 주시했다.
으아 동고비를 닮은 에메랄드 눈의 고양이가 잊히지 않는다. 너무 예뻤어.
감정태그 : 기쁨, 묘함, 자기애
하반기의 꿈속에서 가장 따뜻하고 예쁜 꿈이다.
죽음과 편지와 균열 사이에 아름다운 고양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맴돌던 밤이 하나 끼어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안았을 때의 체온까지 기억하는 것이 그 위로가 얼마나 컸는지를 상기시킨다. ‘동고비’를 닮은 에메랄드 눈의 고양이는 예전 고양이 갤러리에서 눈팅하던 어떤 집의 한 작고 어여쁜 고양이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2026년 내 침대 위에는 노엘이라는 이름의 은빛 태비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있게 됨을 2008년의 난 감히 꿈도 꾸지 못하겠지.
2008.12.07
새벽에 샤이닝을 보다가 잤다.
아침에 결국 엄마 따라 목욕탕 안 갔다, 그러고 나서 계속 꿈에서 헤맸다. 옅은 잠이어서 자꾸 깨고 다시 잠들고 깨고 다시 잠들고를 반복하면서 하루 종일 잤으니까 꿈을 정말 많이 꿨다. 주말에 몰아서 그동안 꾸지 못했던 꿈들을 꿨다.
샤이닝 보다가 자서 그런지 꿈들이 다들 삭막했다. 특히나 가장 마지막에 꾼 꿈속에서 엄청 괴로워했다.
그런 등장인물들은 밝고 아름다운 이야기에서 만나야 하는데 왜 하필, 그런 거지 같은 내용에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방적인 대화였다, 눈이 공허했고 나를 공기로 만들었다. 그녀는 내 질문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으며,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현실에서도 오히려 나를 지켜주던 그녀는 꿈속에서도 그렇게 나를 챙기는 이야기만 하기 바빴다.
어떻게든 꿈속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애썼지만, 결국 포기하고 이런 끔찍한 꿈의 주인공으로 그녀가 나오는 꿈을 꾼 것에 소름이 돋았다. 꿈속에서 정말 엉망진창으로 헤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늘 꾼 꿈속에서 나는.
기분이 나쁘다. 꿈속에서만큼은 자유로운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감정태그 : 슬픔, 분노, 절망
하루 사이의 꿈은 샤이닝을 통해 낙차가 커졌다. 그래도 20대까지는 한번 잠들면 꽤 오랜 시간 잠에 들 수 있었다.
불면이 심한 편도 아니었고, 밤을 새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래서 몰아서 자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잘 수 있어서, 날 잡고 꿈속을 탐험한 주말이었나 보다. 꿈속에서 누군가를 지키려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대화는 일방적이었고, 공기가 된 나는 아마도 그녀의 나를 위한답시고 하는 일방적인 조언을 어떻게든 정상적인 ‘대화’로 풀어가고자 했는 모양이다.
그리고 나서의 한 문장. ‘꿈속에서만큼은 자유로운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문장이 2008년 하반기 전체를 관통하는 말이란 생각이 든다.
2008.12.31
고요히 고요히 파문을 기다렸다.
휴대폰 액정만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꿈 장면은 단 한 장면이다.
요런 꿈을 꾼 지도 오랜만이었다. 전화가 온 꿈이다. 꿈속에서 괴로워했다,
그 단 한 장면이 쭉 이어졌는데 벨이 계속 울렸던 꿈인데 그 장면이 그렇게 처음으로 악몽으로 느껴졌다. 전화를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빨리 꿈에서 깨길 바라는 내용이었다.
음.. 이게 장면으로는 겁나 짧은 꿈인데, 밤새 시달렸다.
감정태그 : 두려움
고요히 고요히 파문을 기다렸다. 장석남 시인의 ‘뺨의 도둑’을 읽었었나 보다.
꿈속에서 전화를 받아야 하나 고민하는 꿈, 이전에 꿈속에서 편지를 받고 거절과 무력함에 사로잡힌 꿈과도 연결될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전 꿈속의 거절을 다시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 악몽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10월의 전화는 나를 꿈에서 꺼내주었는데, 12월의 전화는 꿈 안에서 나를 가뒀다.
받을 수도, 끊을 수도 없는 꿈 속에서 긴 밤을 보낸 내가 안타깝다.
2008년 마지막 꿈이 이것이라는 게 아프다. 꽤 괴로운 스무 살의 마지막이네.
상반기 꿈들이 조금 넓어진 내 세상의 표면을 더듬는 것이었다면, 하반기의 꿈들은 그 표면 아래로 알 수 없는 현실이 침투하기 시작한 해였다.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은 밤, 손을 뻗으면 닿을까 계속 잠들고 싶었던 밤, 죽음이 꿈을 뚫고 들어온 날, 고양이들이 내게 위로를 주던 밤, 그리고 끝내 꿈속에서조차도 자유롭지 못했다고 적은 밤.
그렇게 균열은 천천히 깊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시작된 균열에서 이어진 2009년의 나는 또 어떤 꿈을 꾸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