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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일럿대디 Oct 31. 2018

조리원이, 제일 편하더라

쉴 수 있을때 편하게 지낼걸.......

운명이라 생각했습니다. 바쁘신 아버지 대신 산통이 오는 어머니 곁을 지키고, 한참 공부해야할 고등학교 시절 나이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힘들었지만 즐거웠어요. 그저, 너무 좋았습니다.


그렇게 어느 초겨울 어머니의 산통을 지켜보던 학생은, 어른이 돼 아내와 해산의 고통을 함께했습니다. 사실 어머니가 병원이 떠나가라 소리 지르시는 것은 들었지만 분만실에서 동생을 보지는 못습니다. 아무래도 자녀가 함께 있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이 순간을 위해서 조퇴까지 하고 왔다는 한마디 변명조차 하지 못했어요. 결정적인 순간엔 초초하게 복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아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의 모습은 몰랐어요. 



그래서 일까, 열 달을 꼬박 기다려온 내 아이를 품에 안았지만 어색한 기분만 감돌았습니다. 아내를 실신하기 직전까지 괴롭히고 나온 아이가 조금은 미워도 보였지요. 하지만 아빠로서 그런 마음을 내비칠 순 없습니다. 아기도 나름 고생을 하고 나왔을 테니까요. 

먼저 아내에게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사랑한다고 속삭인 뒤, 아이에게 나머지 인사를 했습니다. 이내 아이는 간호사의 손에 들려 신생아실로 옮겨졌어요. 누군가는 너무 짧아 아쉽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얼굴에 핏기 하나 없는 아내를 돌보는 일이 우선입니다. 말없이 두 손을 꼭 잡아주어요.


“다른 생각하지 말고 푹 쉬다 와”


순산했다는 소식을 전할 때마다 들은 말이에요. 조리원에서 몸조리하는 아내에게도 꼭 전해달라고 당부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금 그 말을 들었다면 무척이나 고마워했겠지만 그때는 잘 몰랐기에, 흘려들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죠.



그렇게 주위의 조언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에도 수십 번 병동과 신생아실을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아이의 꼭 감은 두 눈과 무엇인가를 쥐려고 아등바등 대는 고운 손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어요. 아내 역시 다음 수유시간이 한참 남았는데도 아이를 보러 가자며 졸라댔습니다.


평화로운 조리원의 이 주는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어느덧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에요. 추운 겨울바람에 행여 감기라도 걸릴까, 두꺼운 이불로 아이를 꼭 감싸 안았습니다. 몇 겹이나 이불로 감쌌지만 너무 작아 안고 있기 불편하네요.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저 행복하기만합니다. 


“여보 어떻게 해야 해?”


쉽지만은 않을 거란 생각은 했어요. 처음부터 잘 되었다면 오히려 이상했을지 모릅니다. 주변에서 하는 조언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고 막연하게나마 짐작했지요.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게다가 동생들을 키워 본 경험에 자신만만했는데, 아이가 울 때면 ‘어쩔 줄 몰랐고’ 애꿎은 기저귀만 열고 닫았을 뿐입니다. 

물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에요.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며 초보 엄마인 아내보다는 울리는 횟수는 적었습니다. 아직 몸이 성치 않은 아내보다 빠른 몸놀림으로 우유를 주고, 기저귀를 갈았다, 젖은 자리에 불편해하는 아이를 안아주어서 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서투르게나마 아내를 도와주는 것도 이제 끝나갑니다.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야 해요. 아이와 단둘이 있을 아내가 내심 걱정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옷을 갈아입습니다. 아내도 걱정이 되나 봐요. 애써 웃는 얼굴로 마중을 해 주지만 그늘진 얼굴에 근심이 한가득 입니다. 눈치껏 오늘 저녁은 밖에서 사와야겠다고 생각하며, 무거운 마음을 덜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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