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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일럿대디 Nov 02. 2018

애 보는 게 뭐가 힘드니

라테 대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미안하지만 아내 걱정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보고 싶어 업무에 집중이 되지 않았죠. 팔불출이 따로 없었지만 경험해 본 사람은 다 이해할 거예요.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아이 사진을 넘기고, 또 언제 새로운 사진이 올라오나 하며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정말이지 집을 나서자마자 보고 싶어 지는 아이를 하루 종일 보지 못한다는 건 고문과 같아요. 마음은 언제나 집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눈치 보며 칼 퇴근은 꿈도 꾸지 못했는데, 이제는 명분이 생겼습니다. 힘든 아내를 도와줘야 한다는 이유로 퇴근시간이 되기도 전에 이미 가방을 챙기고 컴퓨터는 종료해 두었어요.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왜 그렇게 울상이야”


집에 들어서자 아이를 내던지듯 저에게 맡기고 짜증을 내는 아내에게 제가 한 말이에요. 흔한 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하루 종일 볼 특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꼭 그렇게 힘든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특히 아이에게 짜증을 내는 모습은 참을 수가 없어요. 그럴 때면 저도 덩달아 화냅니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쉽게 끝나지 않았어요. 사소한 문제에서 출발했지만 더러워진 집과, 없어진 아침 저녁상에 관한 불평이 이어지며, 늦은 밤까지 싸움은 계속됩니다.


“네 아이니 네가 한번 키워봐라. 넌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이 기분을 모를 거야” 


싸움이 일상이 되던 어느 날, 핏대를 세우며 서로의 잘못을 헐뜯던 중 아내가 이렇게 말하네요. 그 말에 저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할 말은 많았어요. 나처럼 잘해주는 남자는 없을 텐데, 이를 몰라주는 아내가 미웠습니다. 다른 집 남자들은 아이보기 싫어 일부러 퇴근도 늦게 하고, 없던 회식도 잡는다던데 그동안 일찍 들어온 과거가 한없이 초라해 보이네요.


한편으론 “그래 될 대로 돼라”하는 마음입니다. 내가 안으면 더 잘 자고, 울음도 뚝 그치는 아이. 엄마보다 아빠를 더 잘 따르고 분명 아내보다 육아 경험이 더 있으니 수월할 것이라 생각도 들었어요. 아내도 직장에서 상사에 치여 숨 막히는 하루를 보내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휴, 한번 감정이 뒤틀리기 시작하니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게 없네요.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돌아왔는지 확실하게 말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다시는 육아가 힘들다고 하지 않겠죠. 오늘도 하루 종일 집에서 쉬었으면서 뭐가 힘드냐?, 라는 말로 다시 싸움을 이어갑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육아휴직 이야기를 꺼낸 기억이 나네요. 표면상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 커리어도 유지해야 하고, 육아보다 일을 더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기회를 주고 싶다”, “아내가 육아휴직을 했으면 남편도 해야 하는 것이 공평한 것 같다”라는 이유를 들며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말했어요. 아내는 잠시 고민하더니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하자”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알고 있었을까요. 남편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말입니다.




나름 멋진 말로 포장했지만, 그 표면적인 이야기와는 달리, 거창한 수식어까지 붙일 것은 아닙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누군가는 비난할지도 몰라요. 그래서 조금 두렵지만, 아직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사정을 이곳에 적어봅니다.


먼저, 내가 더 아이를 잘 본다는 ‘자만심’에서 온 말이었습니다. 아이가 울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내보다는, 동생을 봐온 ‘경력’으로 육아를 더 잘할 수 있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지요.  


또 한 가지. 좀 쉬고 싶었습니다. 몇 달 전 근무지를 옮긴 터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있었거든요. 온종일 집에서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는 아내가 부러워서 그런 결정을 했느냐?라고 물어본다면 “그렇다”라는 대답이, 보다 솔직한 제 마음일지도 모르겠네요. 그 당시, ‘육아’는 일종의 도피처이자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나도 라테 대디가 되어 볼까?”

여유로움과 기품이 흐르는, 남성의 육아휴직률이 30퍼센트를 넘고, 아침이면 정장 차림에 출근하는 남성과 비슷한 비율로 한 손엔 ‘라테’를 다른 한 손엔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어느 한 유럽의 아침을 기대했습니다. 


지금까지 고생만 했으니 의도는 불순하지만 ‘여유’를 즐기며 멋진 삶을 살고 싶기도 하네요. 그렇게 제 것을 챙기기 위해 ‘아름다운 말’로 포장하며, 아내에게 ‘출근’을 강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맙게도 아내는 육아 대신 복직을 택하네요. 혹여나 아내의 마음이 바뀔지 모르니 어서 휴직서를 제출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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