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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일럿대디 Nov 06. 2018

당신만은 내 편이길 바랬어

바뀌지 않아도 돼. 그냥 들어주기만 하면 안 되겠니?

사실, 생각해보니 장모님 께서는 제가 육아휴직을 말씀드릴 때도 부정적이셨어요. 처음 육아휴직을 이야기하던 날부터 시작됐는데, 제가 둔한 탓에 느끼지 못했습니다.


회사에 휴직서를 제출한 직후의 이야기입니다. 제 본가는 춘천이에요. 고등학교 때 온 가족이 이사를 한 뒤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제가 현재 살고 있는 부산과는 차로 5시간이 넘게 걸려요. 직접 부모님을 뵙고 휴직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도리인 줄 알지만, 아이도 어리고 거리가 멀다는 핑계로 전화를 드렸습니다.
전화기 앞에서 몇 번을 망설였는지. 정말 많이 걱정했습니다. 반대하시면 어쩌나 하고요. 그러나 생각보다 흔쾌히 허락해 주시네요.


이제 다 되었습니다. 장인 장모님께서 아내를 위해 휴직을 한다는 사위를 다그치시라 곤 생각되지 않아요. 오히려 응원의 말을 해주시지 않을까요? 


처가는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 자가용으로 30분 거리에 있습니다. 이마저도 차가 막히지 않는 평일이면 20분 안에 도착할 수 있어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전화드린 부모님께 너무 쉽게 허락을 받아 그런지, 오늘 안에 양가 부모님 모두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기저귀 가방을 챙겨보아요.


음악 차트의 1위부터 10위까지의 노래가 끝나갈 때, 처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집 앞 인도 위에 언제부터였는지 귀여운 손녀를 보기 위해 기다리시는 그림자가 보여요. 두 분께 딸아이를 안겨 드린 뒤 짐을 챙겨 뒤따라 올라갑니다.

거실에는 이미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어요. 배고팠던 터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저희 내외는 상에 둘러앉아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식사를 마친 뒤 장모님께서 내오신 다과상을 마주하고 휴직 이야기를 꺼냈어요.


"제가 아이를 보기로 했습니다."


내심 이런 기대가 있었어요. 어쩌면 칭찬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없다, 혹은 우리 딸을 이토록 아껴주다니 너무 고맙네 정도의 말을 들을 거라 기대했죠. 그러나 제가 말을 이어갈 틈도 없이 굳은 얼굴로 바라보시는 게 아니겠어요. 제가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얼굴보다 무서운 표정이었습니다.


잠시 제가 잘못 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지만, 단호하게 반대의사를 표현하신 까닭에 더 이상의 오해는 없었습니다. 제 기대는 어긋나 버렸어요.

단순하게 아내를 위한 결정이라면 무엇이든 환영받아야 한다, 라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제 실수입니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 남자는 바깥일을 해야 한다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억지로 식어버린 차를 목으로 넘겼어요. 더 이상 말이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상대방의 뜻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복병에 꽤나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때 빨리 알았어야 했어요. 육아의 시작과 함께, 처월드가 시작되리란 걸 말이죠.




너만이라도 내편이면 안되니?



얼마간의 냉전이 있었지만 결국, 휴직은 허락받았습니다. 이미 저질러 놓고 말씀드렸던 터라 허락이라는 표현은 조금 어색한 감이 있네요.  


휴직을 하고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장모님의 잦은 방문입니다. 혹시 싫었냐고요? 아니에요. 물론 불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오실 때마다 냉장고에 채워지는 반찬들 하며, 일주일에 한두 번은 단 몇 시간이라도 ‘아이에게 해방’될 수 있었기 때문에 은근히 기다린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몸이 편한 만큼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죠.


육아에 있어 우리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입니다. 가치관 자체가 전혀 달랐어요. 부모라면 누구나 막연하게라도 ‘이렇게 키우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돼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저는 ‘사랑으로 받아주어야 한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모님은 대체로 ‘엄격해야 한다’라는 육아관이네요. 아내와 처남에게 그리하셨고, 이제 손녀 차례입니다.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늘 불안합니다. 잠깐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무서운 얼굴로 손녀를 혼내시는 장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요. 아이가 알면 얼마나 알까, 라는 마음에 아이를 편들기라도 하면 “그렇게 감싸주면 버릇 나빠진다”라는 훈계를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 저 역시 ‘나의 육아관’ 대로 아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육아를 하는 것은 ‘부모로서의 꿈’ 같은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던 우리는, 좀처럼 양보가 없었습니다. 이견이 생길 때마다 ‘부드러운 말로 포장된 공격’을 이어졌죠.  


저의 주 무기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이렇게 키우라고 했습니다. 아직 아이는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라고 말씀드리면, 장모님은 늘 “책이 전부 맞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해도 잘 키울 수 있다. 내 방법대로 딸 둘 아들 하나 잘 키웠다. 네 방법대로 하면 애 버릇만 나빠진다.”라는 레퍼토리로 반박하시곤 하셨죠.


물론 제가 하자는 방법에 동의해 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짧게 “그래”라고 하시며 손녀를 예뻐해 주셨죠. 그러나 그때뿐입니다. 뒤돌아서면 결국 당신께서 하고 싶은 대로 손녀를 대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네요. 이런 일이 벌어질 때면 ‘어떤 것이 진심일까’ 하는 의문에, 답답함이 몰려오지만 마음속 이야기를 할 곳은 없습니다.  


멀리 계신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이야기하면 걱정만 안겨드릴 뿐입니다. 그렇게 휴직을 응원해 주셨는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는 않아요. 그저 가슴속에 꾹꾹 담아놓을 뿐입니다.

아내에게 말해볼까 고민해 보았지만, 이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한두 번은 기대를 가지고 대화를 시도했어요. 적어도 육아에 있어 ‘공통된 가치관’을 공유하는 부부라면 이해해 줄거라 생각하며 말이죠.


“여보가 장모님께 이야기 좀 해줘. 나 너무 힘들다.”


갈등을 해결해 주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말없이 들어만 주어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내 앞에선 나를 위로해주고 내편이길 바라고 한 말이었는데, 결국 그날의 결말은 ‘부부싸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들은 대답은 이랬어요.


“우리를 위해서 이토록 희생해 주시는 분 안 계시다. 배부른 소리 하지 말고 말씀하시는 대로 해라. 두 분 없었으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힘들었을 거다.”


변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그저 말없이 한번 안아줄 수는 없었을까요? 역시 이것은 외로운 싸움, 혼자 오롯이 감당해야 할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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