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그냥 내버려 둘 순 없었나요
오늘도 한바탕 했어요. 싸우려고 결혼했는지, 결혼해서 싸우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부부싸움을 하면 대부분, 하소연하는 건 제 몫입니다. 아내는 싸울 때 몇 마디 하지 않아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몇 마디 안 하는 말 모두가 가슴에 사무칩니다.
이렇게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라는 제 생각과, 정 반대의 단어만을 골라 담아 저를 몰아세우죠. 오늘따라 다툴 때 들은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한바탕 싸우고 난 뒤라 이성이 마비된 상태이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떠오르는 실망감을 감추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이와 온종일 집안에 있다 보면, 모든 것이 통제되어 있는 ‘감옥’ 속에 살고 있는 느낌이 들 때가있죠. 밖에 나가보아야 이미 수백 번 다녀 눈 감고 그 위치를 찾는 게 가능한 ‘놀이터’ 그리고 ‘익숙한 풍경’뿐입니다. 좋아하던 자전거도 이제는 신물 내 하고, 지난주에 사준 축구공은 어디 갔는지 알 수가 없어 무엇으로 놀아주어야 할지 고민이네요.
아이가 낮잠이라도 잘 때면 잠시도 저를 놔주지 않는 아이를 보느라 밀린 집안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외부와 단절될 때 느끼는 상실감이에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고, 자신의 일을 하고 싶은 마음. 그 강렬한 욕구는 육아를 한다고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점점 더 커져, 불안한 마음으로 자라나죠.
그렇다고 지금 딱히 할 건 없네요. 그저, 세상과의 끊을 놓지 않기 위해 아이가 일찍 잠들면 핸드폰을 붙잡고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를 살펴볼 뿐입니다.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구나, 이 친구가 청첩장을 보냈었는데 깜빡했네! 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야겠다, 결국남자 주인공이 고백하면서 드라마가 끝났구나, 라는 소식을 확인해요. 사소하지만 세상과의 끊을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입니다. 그런데 또 이런 저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봐요. 기어이 한마디를 합니다.
“핸드폰 볼 시간에 설거지라도 하고, 육아 책좀 보면 좀 안 돼?”
사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핸드폰을 들고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도 본인이 더 잘 알죠. 제시간을 놓친 뉴스나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눈으로 방문하는 시간이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 서운해요. 속상합니다. 제가 듣기엔 이런 말로 밖에 안 들리네요.
“집에서 놀지 말고 일이나 좀 해”
제가 너무 나간 걸까요. 너무 힘든 나머지 무슨 말을 해도 나쁘게 듣는구나, 라고 생각해도 상관없습니다.
지금 내가 필요한 걸주지 않는 사람은, 남이나 다름없어요. 지금 나에게 이해해 주는 척, 위해주는 척하는 조언이 필요 없다는 걸 그 사람은 언제쯤 알 수 있을까요. 그저 내버려 둘 수는 없었나요.
혼자서 잘할 수 있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었다면 더 잘했을 겁니다.
오늘도 뼈속까지 파고드는 외로움에 잠이 오지 않아요. 육아와 가사에서 지친 저에게, 차가운 말은 큰상처가 되었습니다. 육아로 나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것도 서러운 데 나를 위해 쓰는 그 잠깐의 시간이 그렇게 아까웠을까요. 곱씹어볼수록 울컥하는 게 속에서 올라오지만, 이제는 싸울 힘도 없습니다.
그렇게 나는 없고 육아만 있는, 나를 돌볼 시간조차 없는 그런 하루가 오늘도 끝나갑니다. 여기서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네요. 아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