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일럿대디 Nov 05. 2018

바보같이... 파스만 붙이며 버텼네요

육아하면, 아플 새도 없습니다.

육아하면, 아플 새도 없습니다.


처음 제가 믿을 건 강인한 체력이라고 말했던 걸 기억하실 거예요. 사관학교에서 힘들었던 4년, 임관 후에도 매년 정기적으로 신체검사와 체력테스트를 통과해야 하고, 운동 삼아 배드민턴을 꾸준히 치니 체력만큼은 평균 이상 일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체력과 면역력이 비례하지는 않는지, 자주 잔병치례를 하네요. 늘 감기 정도는 달고 삽니다.



쉬이 몸이 아프다 보니, 이를 대비해 구급약 통에 감기약 정도는 신경 써 구비해 두려고 해요. 자주 아픈 사람들은 잘 알거라 생각합니다. 찬장에 상비약이 잘 정돈돼 있을 때의 뿌듯함 말이에요. 없으면 불안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죠.

그런데 때마침 감기약이 똑 떨어졌습니다. 배고파하는 아이에게 이유식을 주려던 참인데, 머리도 아프고 연신 재채기가 나와 제대로 먹이기가 쉽지 않네요.


한편 사회생활을 할 땐, 이런 제 모습은 때에 따라 유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책상에서 흐르는 콧물을 휴지로 막고 있으면, 휴가를 얻어 병원에 가거나 업무에서 배려받곤 했지요. 항상 누군가는 나를 대신해 줄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차례 잔병치례가 끝나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커피를 사곤 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어요.


제가 아프면, 대신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 하나 바라보는 아이를 두고 몸져누우면 누가 밥하고 우유 먹이고 씻기고 재우나요. 불쌍한 우리 아기를 보고 있자면, 내 몸 하나 아픈 건 이유도 아닙니다. 이렇게 가다간 몸이 망가질 거란 느낌은 들지만 그만둘 수 없어요. 제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은,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뿐이니, 제가 힘내야 합니다.


오늘따라 아내가 늦게 왔어요. 회식이었다는 말에, 나는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고 아파하고 있는데 이제야 집에 왔냐며 따졌지만, 이것도 업무의 연장이라며 오히려 무안만 줍니다.

아내의 말도 이해가 가긴 하지만, 그래도 아픈 사람을 두고 그렇게 말하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이에요. 약 사다 주는 게 전부는 아닌데....... 그만하면 되었네요. 더 이야기하는 것보단 어서 잠이라도 더 자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무릎 보호대 하나 주세요.”


의료용이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붙은 보호대 한 쌍을 약국에서 구입했습니다. 때 아닌 더위로 몸에 닿은 모든 부분에 땀이 나지만, 덥다고 미룰 수는 없었어요. 아이를 안을 때면 저도 모르게 ‘악’ 소리를 지를 정도로 두 무릎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건강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내조와 육아, 모두 완벽하게 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어느 것 하나 못한다 소리를 듣기 싫었어요. 노력 하나만큼은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저의 하루는 일과 육아의 연속입니다. 하루에 10번은 더 산책 나가고, 집에 돌아와 밀린 가사를 해요. 저녁이 돼 아이를 재우고 집안일을 마무리 한 뒤에야 잠자리에 듭니다.


아침이 되었어요. 투정 부리는 아이를 업고 식사를 준비합니다. 배고프다고 보채는 아이에게 우유 주는 일도 잊지 않으면서요. 아내는 오늘따라 피곤한지 먹는 둥 마는 둥 차려놓은 밥을 남기고 출근합니다. 조금 속상하지만 어쩌겠어요, 더 맛있는 반찬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식탁을 정리합니다.


이제 저와 아이, 둘 뿐이네요. 외출 준비를 시작할 시간입니다. 미리 끓여둔 물을 조심스럽게 보온병에 담고 준비한 간식을 챙겨요. 기저귀와 물티슈도 잘 들어가 있으니 걱정은 없습니다. 이제 만약을 대비해 비타민 사탕 몇 개만 챙기면 돼요.


등에는 가방을, 앞에는 아이를 아기띠로 안고 현관을 나섭니다. 조금 무겁긴 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아요. 아이보다 더 무거운 배낭을 메고 훈련도 했었기에 괜찮습니다. 그저 좋았다고만 할까요.

곤충과 나무를 하나씩 설명할 때마다 마치 제 말을 이해하는 듯한 아이에 미소에 힘든 것도 잊습니다. 이런 게 부모의 마음일까 하며, 아이에게만 온 관심을 쏟아가요. 정작 제 몸 챙기는 일은 고민하지 못하면서 말입니다.


아이의 밥시간은 체크했지만, 제가 언제 밥을 먹었는지는 ‘허기진 배로’ 가늠하곤 했죠. 그럴 때면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거나 아이가 남긴 간식으로 주린 배를 달래곤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부르튼 발이 보이면 “오늘도 많이 걸었구나”라고 느꼈을 뿐, 다른 생각은 없었어요. 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한숨이라도 더 자기 바빴으니까요. 제가 하는 모든 준비에 부모를 위한 것은 없었습니다.


결국 그런 ‘나를 돌보지 않는 육아’는 조금씩 몸을 망가트려만 갔습니다. 


끼니를 수시로 거르며 제때 밥을 먹지 못한 결과로 이어진 폭식은, 전에 없던 군살을 온몸 이곳저곳에 만들었습니다. 소화가 잘되지 않아 체기를 진정하기 위해 소화제를 달고 살았어요. 하루 종일 애기 띠를 하고 있었기에, 아이를 지탱하는 두 어깨는 멍이 잦을 날이 없었고, 허리는 굽어져 끊어질 듯 아팠습니다. 바보같이 파스만 붙이며 버텼네요.


조금이라도 불편한 것이 생기면 안아달라는 아이를 받아주니 두 무릎이 성 할 날이 없었고, 육아를 시작한 지 6개월이 되던 어느 날, 저는 두 무릎에 ‘보호대’를 착용했습니다. 아니해야만 했죠. 하지 않고선 걸을 때마다 찾아오는 그 시린 고통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아프다고 아이를 내버려 둘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며 나를 위안할 뿐이에요.

매거진의 이전글 잠 한번 푹 자보는 소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