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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일럿대디 Nov 04. 2018

잠 한번 푹 자보는 소원

만성 피로에는 커피도 소용없어요

본격적인 육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라테를 마시며 책을 읽던 저는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기 위한 커피는 늘어가도, 독서량은 현저히 줄어들더군요. 아무리 책을 읽어도 제가 힘들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고른 책이 좋지 않다는 건 아니에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감명을 받기도 했고, 육아 의지를 북돋아준 책도 많았습니다. 다만, 육아를 하며 온전히 책을 읽고 교훈을 얻어낼 여유가 없었다고나 할까요. 책에 소개된 내용을 받아들이고, 나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힘든 현실 속에서 여유 부리기 어려웠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더군다나 밤낮 가리지 않고 저를 힘들게 하는 아이 때문에 온전히 정신 차리기도 버거웠습니다. 수면부족으로 피로가 몰려드니 책보다는 차라리 잠이나 한숨 더 자자라는 생각뿐이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책을 읽는 것은 사치입니다.


이런 상황이 오리란 걸 왜 미리 알지 못했을까요. 다 저의 착각 때문입니다. 육아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어요. 아이가 깨어있는 시간만을 고려대상에 넣어 생각했습니다. 육아와 관련된 가사를 제외하고서라도, 단순히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놀아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당연히 하루 육아를 끝내면 편안히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질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있었습니다. 잠만큼은 푹 잘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죠.


한편, 제가 육아에 전념하지 않을 때, 아이가 밤에 깨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밤새 얼마나 많이 깼는지는 다음날, 아내의 쾡한 눈을 보면 알 수 있었죠. 그러나 그때는 ‘나는 일을 하니까’라는 핑계로 그랬는지, 밤새 울고 보채는 아이는 아내에게 맡기고 세상모르게 잤습니다.

물론 다음날 출근을 위한 휴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와 같이 위험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반드시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니까요. 다만, 아내를 모른척한 과거 탓에 지금에 와서, 밤에 같이 애를 봐달라고 말할 면목이 없을 뿐입니다.


이제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편안히 눈 붙이고 잘 수 있게 한 아내의 노력에 버금가는 수고를 해야 할 때에요. 처음에는 이런 걱정도 들었습니다. 아이가 울 때 못 일어나면 어쩌나, 제시간에 일어나 우유를 준비할 수 있을까, 라는 식의 불안감이었죠.

그러나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아이가 조금이라도 칭얼댈 때면, 어지간히 잠을 사랑하던 저도 번쩍 눈을 뜨게 되네요. 전적으로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일어나는 것 까지는 좋습니다.


그러나 진짜는 지금부터죠.


아이는 매일 밤 두 시간마다 칼같이 울어댑니다. 우유를 먹이고 축축해진 기저귀를 갈고 다시 재우기까진 적어도 30분 이상 걸려요. 그러나 이것도 아이가 우유를 한 번에 바로 먹을 때입니다. 맘 같아선 빨리 먹고 잠들면 좋겠는데, 자기도 피곤한지 먹다 말다 하며 부모를 시험에 빠뜨리네요.

이제 다 먹었다 싶어도 바로 눕힐 순 없습니다. 행여 트림을 않고 바로 눕혀 재우면, 처음엔 잘 자는듯해도 이내 먹은 우유를 게워내고 울어대죠. 비몽사몽간에 우유를 타다 데인 손이 아파오지만, 주저할 틈은 없습니다. 아이는 저만 바라보니까요.

우유로 얼룩진 침대를 닦은 뒤, 다시 토할까 두려워 쪼그려 아이를 안아 재우니, 토끼잠을 잘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이런 밤을 며칠 겪었을 뿐인데 전에 아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침만 되면 침대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렇게 저에게는 하나의 소원이 생겼습니다.


 ‘잠 한번 푹 자보는 소원’


커피를 마셔도 피곤이 가시지 않던 어느 주말, 너무 피곤해 아내에게 한숨 잘 동안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삼십 분만 눈 좀 붙이고 오겠다고요.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그리 곱지 않습니다.

일하느라 피곤하다 변명이라도 했으면 이토록 화나지는 않았을 겁니다. 조금 짜증  내더라도 아이를 봐주었으면 이해할 수 있었을 거예요. 한데....... 애 낮잠 잘 때 뭐했냐니요. 그 시간에 쓸데없이 놀지 말고 잠이나 자라고 핀잔을 주니 눈물이 핑 돕니다.


아, 아이가 낮잠 잘 때 쉬라니요.


얼마 전 사회면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업무량이 과다해 제대로 쉬지 못하는 보육교사를 위한 대책으로 ‘점심시간에 쉬는 시간을 가지세요’라는 내용인데, 굉장히 많은 댓글이 달렸죠. 밀린 수첩도 써야 하고, 교구 정리에 오후 활동 준비에도 바쁜 시간입니다. 간혹 한두 아이만 낮잠을 거부하면 이마저도 부족한 시간인데, 이 시간에 쉬라니요. 정말 무책임한 대안이네요.

혹시 아이가 한 명이니 다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여러 명을 봐야 하는 선생님보다는 쉬울 거예요. 아이가 낮잠 잘 때면 사회에서 잊히고 있다는 불안감에, 의무적으로 그다지 친하지 않던 사람들과 연락을 할 여유는 있었지요.


그러나 우리가 이런 걸 가지고 여유 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것도 잠시예요. 밀린 집안일과 때마다 찾아오는 식사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아이는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쉬라니요. 정말, 맘 편히 푹 쉬어봤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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