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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일럿대디 Nov 12. 2018

외로워서. 너무나 외로워 결국 울어 버렸네요.

독박 육아라는 무서운 말

이제야 왜 사람들이 “독박 육아, 독박 육아”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심지어 독박 육아란 말을 듣기만 해도 울적해지네요. 육아에 연관된 모든 의무와 책임은 나에게 있고, 즐거움은 너에게만 있는 그런 말. 사실 저는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이런 생각은 피해의식이 가득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이라고도 생각했었죠. 제가 당사자가 되기 전 까지는.


유난히 더운 여름입니다.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훨씬 웃돌아, 뉴스에서는 이상고온이라고 떠들어 댈 정도예요. 그런 더위를 아이와 함께 보내던 8월의 어느 날, 평소 친하다고 생각하는 선배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매일 짜증 섞인 아이의 울음소리만 듣다 오랜만에 사람 목소리를 들으니, 그토록 반가울 수 없어요. 잘 지내니? 휴직은 할 만 해?라는 안부 인사부터, 그동안 들을 수 없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접하니 숨통이 트이는 느낌입니다. 육아는 잠시 잊고 한참을 웃고 떠들다 보니, 곧 아이가 일어날 시간이네요. 이제 전화를 끊고 간식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자, 잠깐만 이라고 하더니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냅니다.


 “아기 키우느라 매일 집에만 있으니 시간도 많아 심심하지? 허송세월 보내면 아까우니 뭐라도 좀 해. 영어나 공부를 하든 자격증을 따든 열심히 살아야 우울증도 안 걸려.” 

선배는 걱정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 걱정해서 하는 말인지 조언을 하려던 것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제가 힘든 건 다른 사람에겐 중요하지도, 고려의 대상도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제 막 끊으려던 참이었기도 하고 더 이상 통화할 용기도 없어 떨리는 목소리로 짧게 “알았다.”라고 대답하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네요. 선배의 전화는 고마웠습니다. 그러나 전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을 들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요.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저를 이해해 주는 사람도 육아가 쉽다는 생각을 하는데, 다른 사람은 어떻겠어요.


“역시,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구나. 복직하면 ‘집에서 놀다 온 사람’으로 낙인찍히겠네.” 아이 하나로도 벅찬데, 밀려드는 걱정에 정신 차리기가 힘듭니다.


그날 저는 ‘독박 육아’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독박 육아란, 아이 키우는 것을 혼자 해야 함은 물론이며, 육아가 끝나도 사회로 ‘돌아갈 자리’까지 없어지는 그런 무서운 말. 혹, 돌아간다 해도 육아로 비롯된 ‘경력단절’이나 ‘업무공백으로 생기는 책임’ 그리고 ‘집에서 쉬고 왔다는 꼬리표’ 모두를 껴안아야 하는, 그런 무서운 말이었네요.

아내가 원망스럽습니다. 이 말도 안 되게 힘든 육아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아내에게 “왜 똑바로 말해주지 않았냐”라고 따지고 싶네요.


우울한 기분 때문이었을까요. 평소 즐겨 듣던 볼 빨간 사춘기의 ‘나만 안 되는 연애’가 제 이야기 같습니다.


노래 속의 주인공은 “왠지 오늘따라 마음이 아픈지 했더니, 오늘은 그대가 날 떠나가는 날이래요.”라고 담담히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왜 항상 나는 이렇게 외로운 사랑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이상한 날이에요.”라며 ‘상대방’에게 물어보기도 하죠. 끝내는 “왜 그랬는지 묻고 싶죠 날 사랑하긴 했는지, 그랬다면 왜 날 안아 줬는지 그렇게 예뻐했는지.”라며 속마음을 내비칩니다.


왠지 오늘따라 마음이 우울하고 슬픈 날 이유는 저 혼자 독박 육아를 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이렇게 날 집에 놔둘 거였으면 왜 날 안아주고 예뻐했는지 따지고 싶어 집니다.


외로워요. 외로워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지만, 하소연할 곳이 없습니다. 펑펑 울고 나면 속 시원해질 것 같은데, 낮잠 자는 아이가 깰까 이마저도 소리 죽여 울어 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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