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한다. ‘만약 남한과 북한이 통일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훨씬 더 강력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많은 학자도 이런 생각에 지지를 보낸다. 통일되면 인구가 약 1억 명 정도가 될 것이고, 내수 경제가 자립하기에 적정 인구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인구가 많은 나라가 부럽기도 하다. 인도에 있던 친구가 나에게 다가와 물어본 적이 있다.
“필선, 한국은 정말 작은 나라인데 어떻게 그 작은 나라에 삼성과 엘지와 현대가 다 들어가 있어?”
“신기하지? 만약 한국이 땅덩어리가 조금만 더 컸으면 너넨 큰일 났어. 다행인지 알아.”
“하하하”
인도인이 바라보는 한국은 거대한 나라일 수밖에 없다. 인도에서 에어컨은 엘지로 통한다. 삼성은 스마트폰으로 유명하고, 현대는 자동차로 유명하다.
그 친구는 작은 나라에 글로벌 거대 기업이 세 개나 있는 것이 신기해한다. 인도의 국토는 한국의 33배다. 인도인이 보기에 한국은 작아도 너무 작은 나라다. 반대로 한국인이 보기에는 인도는 커도 너무 크다. 면적만으로 보면 한국은 인도의 한 개의 주보다 작다. 2018년 기준 델리 위성도시들을 모두 포함한 NCR(델리 광역수도권)에만 약 5,200만 명이 산다. 인도의 수도권 인구수가 한국의 총인구수와 비슷하다. 볼리우드로 알려진 뭄바이에는 약 1,300만 명이 거주한다. 그 외에 콜카타, 벵갈로, 첸나이 등 거대 도시에도 약 1천만 명씩 살고 있다. 총인구수는 약 14.2억 명이다. 인도에는 주민등록을 신고하지 않은 사람도 많으니 실제 인구는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
인도는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하나의 국가라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하지만 지금의 인도는 이전 인도의 일부분일 뿐이다. 독립 이전에는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몰디브가 모두 영국령 인도 제국에 속해 있었다.
만약 지금처럼 분리되지 않고 아직도 한 나라였다면 총인구수는 얼마였을까? 현재 인도 14.2억, 파키스탄 2.4억, 방글라데시 1.7억, 스리랑카 2천만 명을 모두 합하면 18.3억 명이다. 전 세계 인구가 80억 명이니 20퍼센트가 넘는 수치다.
만약 전 세계인이 섞여 있는 곳에 가서 ‘인도인 손드세요.’라고 한다면 다섯 명 중 한 명은 인도인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인도는 왜 분리되었을까? 인도와 파키스탄은 왜 그렇게 앙숙이 되었을까?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인도가 지금과 같이 분할된 이유에는 영국이 있다. 영국의 지배는 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굴제국 말미에 혼란이 생긴 틈을 타고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와 프랑스와 영국이 인도 상권을 손에 넣기 위해 달려든다. 1,600년에 건립한 동인도회사를 앞세운 영국이 1757년 플라시 전투로 프랑스를 몰아냈다. 19세기 중반 세포이의 항쟁이 실패로 끝나며 동인도회사가 아닌 영국 정부의 직접통치가 시작됐다. 영국의 통치에 항거하며 많은 정치 단체가 생겨났다. 그중 1885년 결성된 '인도 국민회의'가 독립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 특히, 독립운동에 대한 영국의 냉담한 반응에 대응하여 보이콧 및 스와데시 운동(국산품 장려 운동)이 전 인도로 파급되었다. 이에 대해 영국은 인도를 완벽하게 지배하기 위하여 기존의 사회상태를 바꾸고 분할통치 정책을 취하여 힌두교와 이슬람교 간의 종교 대립을 부추겼다. 무굴제국이 지배하던 때에도 분리되지 않았던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의 골은 영국의 의도대로 점점 깊어졌다. 한 번 벌어진 사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1차 대전 이후 영국은 인도에게 자치령 지위를 제시했다. 하지만 인도 국민회의는 이를 거부하고, 완전한 독립을 목표로 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마하트마 간디는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며 영국에 맞섰다.
이에 반해 무슬림 연맹은 파키스탄의 분리를 요구했다. 결국, 2차 대전 후 영국은 인도를 독립시켜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국은 곱게 떠나가지 않았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로 나눈 후 영구 분리하여 버렸다. 뱅갈과 펀잡으로 나뉜 동서 파키스탄 분리였다. 이동 시 배로 가면 5일 걸리는 1600Km 거리로 나누어서 독립방안을 제시한다. 그것도 2개월 이내에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들은 남으라는 식의 졸속 분할이었다. 이를 국민회의가 수락했다. 이때 스리랑카와 몰디브도 분리됐다. 다시 동파키스탄은 1971년 독립해 방글라데시가 되었다.
인도는 1947년 8월 15일 영연방의 자치령으로 독립하게 된다. 인도는 주권국가가 되었고, 1950년 1월 26일 새로운 헌법을 공포한 후에 영국연방 안에서 공화국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우리나라의 독립일인 8월 15일은 인도의 독립기념일이기도 하다.
영국은 수천 년을 이어온 인도의 역사를 단 300년 만에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임의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폭동과 학살이 있었다. 지금도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서는 갈등의 골이 남아있으며, 테러 사건, 국경선 근처에서의 무력 충돌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은 인도를 물러나면서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기고 떠났다.
아직도 영국이 신사의 나라라고 생각하는가? 지배의 기록에 신사란 없다. 사람이 많이 모여 힘이 권력이 되면, 신사란 단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권력을 유지할 이익의 논리만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