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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필선 Jan 18. 2024

야자나무로 만든 집

야자나무 잎 팝니다

인도에서 길을 가다 보면 야자나무 잎을 한가득 싣고 지나가는 손수레를 만날 때가 있다. 집을 짓거나 보수하는 사람에게 판매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도에는 빈부격차가 정말 심하다.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대도시의 큰 길가에는 번듯한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지만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어김없이 빈민가가 나온다. 그리고 빈민가 사람들은 집을 살 돈도 없기에 바람이라도 막기 위해 무언가로 집을 짓고 산다. 그 재료 중 가장 유용한 것이 야자나무 잎이다. 야자나무 잎을 반으로 잘라 얽히게 엮으면 바람을 막아주는 훌륭한 재료가 된다. 또한, 지붕에 깔면 자연스럽게 물길을 만들어 빗물이 잘 빠진다. 마치 우리나라에는 초가집이 있듯이 인도에는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집이 있다. 이런 집은 쉽고 싸게 지을 수 있지만, 주기적으로 보수가 필요하다. 그래서 야자나무 잎을 손수레에 싣고 다니며 파는 사람이 있다.


벽돌집에 살고 싶어요

내가 델리에 머무르는 동안 현지 ‘에이전트 Agent’가 구해준 운전사도 그런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집에서 살았다.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라 말도 다르고,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은근히 무시했다. ‘카스트 Caste’나 ‘자띠 Jati’를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계급도 낮아 보였다. 그 운전사는 한국인이 타는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서서히 새로운 세상을 접했다. 푹신한 소파에도 앉아보고, 맥도널드에 가서 햄버거도 먹어보고, 컴퓨터로 일하는 모습도 보면서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던 세상을 알아갔다. 그러더니 조금씩 갖고 싶은 것이 생겼다.


첫 시작은 라디오였다. 당시 TATA(한국의 현대처럼 거대기업이자 자동차 회사 이름)의 차량에는 라디오가 옵션이었다. 그리고 내가 타던 차량은 라디오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라디오를 들을 일이 없으니 필요 없었다. 운전사는 언젠가부터 크리켓 경기를 듣고 싶다며 라디오를 사달라고 했다. 우리 회사 직원도 아니고, 에이전트 Agent 소속이면서 나에게 사달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에게 얘기하지 말고 너의 사장에게 얘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고 졸랐다. 나는 다시 말했다. “차량도 내 차가 아니야. 너희 사장이 임대한 차야. 너희 사장에게 얘기해.” 하지만 여전히 라디오를 사달라고 했다. 매일 같은 얘기를 듣는 것도 힘들고, 그 정도는 정당한 요구인 것 같아서 에이전트 사장에게 얘기해서 라디오를 사주었다. 운전사는 라디오로 크리켓 경기(야구 비슷한 게임) 중계를 매일 들었다. 인도에서 크리켓은 거의 유일한 국민 스포츠이다. 라디오가 생기자, 라디오 사달라는 얘기를 안 들어서 좋았지만 운전하는 내내 크리켓 방송을 들어서 귀에서 피가 나는 것 같았다.


라디오를 사주고 한참이 지났다. 이번에는 집에 TV가 없다며, TV 임대하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인도에서는 TV도 임대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정수기를 임대로 사용하고 있으니 가전제품도 임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라디오 사달라는 얘기를 하지 않아서 좋았건만, 이제 다시 시작이었다. 매일같이 TV 임대할 돈 달라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만하라고 해도 멈추지 않았다. 알고 보니 나에게만 그런 것도 아니고 에이전트 사장에게도 매일 졸랐다고 했다. 결국, 에이전트 사장은 운전사 월급을 조금 올려주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운전사는 TV를 임대했다. 이제 다른 것은 바랄 게 없으리라 생각했다.


다시 한참이 지났다. 이번에는 벽돌이었다. 벽돌을 사서 집을 짓겠다고 벽돌 살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왜 자꾸만 나에게 얘기하는지 모르겠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졸라댔다. 일하러 가기 전에 졸라대고, 일하고 오면 졸라대고, 운전하다 졸라대고, 집에 오면 졸라댔다. 화도 내고, 달래도 보았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나중에는 그와 협상했다. ‘나는 돈을 못 준다. 에이전트 사장에게 가서 매일 얘기해라. 그러면 내가 나중에 사장을 만나서 돈 주라고 얘기하겠다.’ 그때부터 돈 달라는 얘기는 없었다. 대신 말이 바뀌었다. “오늘도 에이전트 사장에게 가서 얘기했어요.” 돈 달라고 조르는 것보다 들을만했다. 나는 잘했다고 했다. 나도 며칠 후에 사장 만나서 얘기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 에이전트 사장을 만나서 얘기했다. “벽돌 사달라는 얘기 못 듣겠습니다. 돈을 빌려주던지, 아니면 운전사를 바꿔주던지 뭐라도 해주세요.” 보다 못한 에이전트 사장은 결국 벽돌 살 돈을 가불 해줬다. 정확한 금액은 모르지만, 몇 개월 치 월급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었다. 운전사는 벽돌을 샀고, 거의 한 달 동안 벽돌을 쌓아 올려 벽돌집을 만들었다. 나중에 놀러 오라며 자랑까지 했다.


욕심은 비교에서 시작한다

이 친구를 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욕심은 비교 대상이 있어야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앞집도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집에 살고, 옆집, 뒷집 할 것 없이 동네 사람들 모두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집에서 살던 이 친구가 한국인이 타는 차를 운전하지 않았다면 벽돌집을 짓고 싶은 욕심이 생겼을까? 옆집이나 앞집 사람과 비슷한 꿈을 꾸고 주위 사람처럼 살지 않았을까? 만약 소파에도 앉아보지 않고, TV를 보지도 않고, 맥도날드도 가보지 않았다면 벽돌집을 짓고 싶은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옆집처럼 뒷집처럼 그 생활에 만족하며 벽돌집은 꿈도 꾸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인도에서 일하는 동안, 여러 지역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얘기할 기회가 많았다. 중산층 이상의 사람은 신분 상승 욕구가 높은 사람이 많다. 하지만 하층민은 신분 상승 욕구가 높지 않다. 자신의 삶이 변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특히 계급 제도가 뿌리 깊이 박혀있는 인도에서 삶을 바꾸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꿈의 크기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꿈꾸지 못하면 상상할 수 없고, 상상하지 못하면 원하지도 바라지도 못한다. 그리고 바라지 못하면 얻지도 못한다.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볼 것인가?

운전사가 다른 지역에서 와서 ‘힌디어’를 잘하지 못했기에 힌디어책과 영어책을 사주고 공부를 하라고 했다. 매일 책을 얼마나 봤는지 확인했고, 영어도 조금씩 가르쳐줬다. 나날이 변해가는 모습이 보였다. 힌디어도 제법 하기 시작했고, 영어도 곧잘 했다. 나중에 책을 가지고 오지 않아, 책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친구가 달라고 해서 줬다고 했다. 꿈을 꾸라고 책을 사줬는데, 꿈을 현실로 만들 도구라는 걸 모르니 그냥 놓아버린 것이다. 답답하고 화도 났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그냥 다른 영어책을 하나 사줬다. 그리고 경고도 했다. 


“이 책 다른 사람 주면 가만 안 둘 거야. 차에 항상 가지고 다니고 내가 보여달라고 하면 보여줘. 알았어?”

“예. 썰”

“그리고, 크리켓 좀 그만 듣고, 나 일하는 동안 차에서 영어 공부하고 있어. 나 일 끝나고 나올 때마다 손에 책 들려있는지 확인한다.”

“예. 썰”


대답은 잘한다. 그 후로 영어책을 보는 모습을 자주 봤다. 물론 대부분 시간에는 크리켓을 들었지만, 그래도 가끔 영어책을 보는 모습을 봤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자 힌디어도 꽤 잘하고, 특히 영어가 많이 늘었다. 영어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내가 매일 보고 듣는 것이 나를 형성한다. 몇 해 전 작가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북콘서트를 찾아다녔다. 그전까지만 해도 작가를 만나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막상 찾아보니 작가를 만날 방법이 상당히 많았다. 거의 매주, 때로는 한 주에 2회 이상 북콘서트에 다녔다. 가끔은 질문할 기회도 있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자 내가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작가를 처음 본다는 사람을 만나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그 분도 작가가 되었다. 미리캔버스 책을 쓰신 상냥한 주디님이다. 꿈을 쫓는 사람에게는 최대한 도와주려고 한다. 나도 그런 과정을 똑같이 겪었기 때문이다.


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이 누구이고,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보고 배우는가에 따라 생각이 바뀌고 꿈이 바뀐다. 매일 비슷한 환경 속에 산다면, 내일의 모습이 오늘과 비슷한 건 당연하다. 오히려 내일이 바뀐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매일 생활하는 환경이 야자나무로 만든 집인 사람과 번듯한 사무실인 사람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삶을 바꾸고 싶다면 우선 환경을 바꿔야 한다. 벽돌집에 살고 싶다면, 우선 야자나무로 만든 집을 나와야 한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일단 매일 책을 읽고 글을 한 줄이라도 쓰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환경은 꿈을 그리는 밑바탕이다. 나를 바꾸기 힘들다면 만나는 사람, 생활하는 환경을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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