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상한 브랜딩, 척 없는 디자인
만우절에 배달의 민족에서 컨퍼런스를 진행했다. 컨퍼런스 제목은 일 잘하는 척 하는 법. 만우절에 일 잘하는 척이라니 매우 잘 어울리는 주제다. 듣고 깨달은 바와 생각되는 지점이 많아 공유하고자 한다.
배달의 민족 CBO인 장인성님이 쓴 책, [마케터의 일]을 보면 <성격 나쁜 동료와 일하는 법> 이라는 제목의 챕터가 있다. 해당 챕터의 내용은, 그런 방법이란 없으니 도망가란 것이었다. 하지만 책을 낸 이후로 방법을 찾으셨는지, 이번 배달의 민족 컨퍼런스에서 공유해주신 내용이 바로 <싫어하는 사람과 일하는 법>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회사에 내가 싫어하는 이상한 사람이 있는 것은 회사가 사람의 이상한 면이 나오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렇다. 회사에서 내가 싫어하는, 이상한 사람도 밖에서는 연애도 하거나 가정도 있는 평범한 사람 중 하나다. 그런데 이상하게 회사에서 일할 때면 이상한 사람이 되곤 한다. 그렇다는 것은 회사가 사람의 이상한 면이 나오도록, 아니 나와도 무방하게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 옆자리에 있는 사람이 누구야에 따라 회사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러니 회사에서는 기업문화가 사람의 이상한 면이 나오지 않게끔 조성해야 한다. 이번 배달의 민족 컨퍼런스를 통해 내부 구성원 관리를 하는 피플실이 어떤 분위기인지 잘 드러났는데, 재택근무 중에 입사한 구성원들이 소속감을 느끼도록 배려를 한다거나, 신입 구성원의 이름으로 n행시를 지은 카드를 주는 등 내부 구성원과 관계를 꽤 끈끈하게 쌓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소위 말하는 프로페셔널한 회사는 성과를 위해 개인주의가 심하고 드라이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쿨~하다 하는 것과는 다소 상반된 분위기였다.
이런 쿨하고 프로페셔널한 척 없는 문화는 커뮤니케이션 실에서 담당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디서 샀는지 궁금한 점프슈트를 입고, 손목에는 알록달록한 스와치를 찬 채로 손으로 대충~ 갈겨쓴 피피티를 하는 모습은 자칫 가볍고 우스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점프슈트는 안상수 디자이너 때부터 이어지는 디자이너의 교복이며 피피티 장표 하나하나 일일이 손으로 쓴 데다 모든 장표에 움직이는 이미지까지 직접 만들어 넣었다. 게다가 내용의 주제는 잘하는 척! 하지 말자가 결국 핵심이기 때문에 손으로 갈겨쓴 것마저 주제에 잘 맞는 디자인이라 볼 수 있다.
일 잘하는 척의 주요한 내용은 척! 하지 말고 쉬운 용어에, 개념어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히 보이는 말을 쓰자는 것. 본질을 추구하느라 당장 놓인 퍼포먼스를 소홀히 하지 말 것.
그리고 한 가지 비밀을 공유해주었는데, 창의성은 비효율적이란 것이었다! 비효율적인 일을 얼마큼 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 일 잘하는 기업이 과시를 하는 방법이다. 또한 사람은 비효율적인 것에 감동한다. 효율성만 따지는 사람하고는 절대 연애는 할 수 없다. 공작새를 생각해보자. 공작새의 꼬리는 생존에는 하등 쓸모없다. 크고 화려하게 과시만 할 뿐이다. 그런 과시를 하고도 포식자에게 잡히지 않고 생존했다는 것 자체가 그 공작새가 얼마나 강한 공작새인지 보여준다. 동시에 보는 눈도 즐겁게 해 준다. 회사에 대입해보면, 당장 재미만 있는 마케팅이 당장 쓸모없어 보일 수 있으나, 그런 마케팅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기업이 얼마나 튼튼한 기업인지 보여주는 것이며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각 부서를 대표하는 분들을 보면, 모든 면이 특출난 개인이 아니라 한 가지 분야에 특출난 분들이 서로를 보완하는 것처럼 보였다. 브랜딩실에서는 회사가 지향해야 할 기업문화를 제시하고, 커뮤니케이션 실에선 그 기업문화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고, 피플실에서 그 기업문화를 실행하며 만들어 나간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다 같이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서 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