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감핀 pin insight Jun 27. 2018

명감독은 명장면을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매거진 B 호시노야 편 리뷰

 내 첫 여행 내일로 5박 6일. 어디서 자든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는 자는 시간을 아깝게 생각했다. 한 6시간 자고 나면 씻고 준비해서 또 나갔다. 서유럽 여행을 할 때도 비행기나 새벽 기차에서 자곤 했다. 자연스럽게 숙소는 늘 뒷전이었다.


 숙소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에어비앤비를 접하고 나서부터이다. 어떤 숙소에 투숙하냐에 따라 여행의 컨셉 자체가 달라졌다. 이번 강릉 여행에서도 숙소 먼저 정했다. 이번에 잡은 숙소는 포토카페를 운영하는 한옥집이었다. 반백의 머리를 길게 기른 주인 아저씨가 우리를 반겨줬다. 한옥집에 들어가는 순간에는 구들장 냄새가 났다. 우리는 방바닥에 요를 깔아놓고 추억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강릉에서 묵었던 포토카페 한옥 [중기골목] | 주인아저씨께서 서비스로 사진도 찍어주셨다

 아예 '숙소' 자체가 여행이 되기도 한다. 시간이 많지 않고 육체적으로 지친 현대인들은 이제 가만히 '호텔'에 투숙하는 것 자체를 여행으로 여긴다. 그저 현실과 약간 떨어진 좋은 공간에서 사적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렇게 '호캉스'가 탄생했다. 그리고 그 끝은 '호시노야'에 있다.

호시노야 도쿄 | 매거진 b 호시노야 편 107p

 호시노야 도쿄 점은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있다. '현실과 약간 떨어진' 공간이라 하기에는 너무 도심에 있다. 도심과 호시노야를 구분시켜 놓을 필요가 있었다. 호시노야는 이 문제를 영리하게 극복했다. 전통 료칸처럼 신발을 벗게 한 것이다! 사람들은 신발을 벗으면서 '이제 호시노야에 입성하는군'하고 생각하게 된다.

신발을 벗는 순간부터 호캉스 시작이다 | 매거진 b 호시노야 편 마지막 페이지
명감독은 얼마나 명장면을 잘 만들어내는 것보다 명장면과 명장면을 잘 잇는데 달려있다.

 이 말은 건축에도 통용되는 말 같다. '얼마나 멋지고 좋은 공간을 만들어내느냐' 보다 좋은 공간과 좋은 공간을 어떻게 구분하고 또 어떻게 이어지게 할 것이냐가 정말 좋은 공간의 핵심이다. 호시노야는 '신발을 벗는 것'으로 외부와 내부를 구분했을 뿐 아니라 현실과 호시노야를 구분했다.

 

모두가 쉽게 입을 수 있는 기모노 | 매거진 b 호시노야 편 37p

 그럼 호시노야는 좋은 공간을 어떻게 만들까? 호시노야에서 제공하는 기모노가 좋은 공간을 만드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팟캐스트 b에서 말하길, '아무리 좋은 공간도 사람이 없으면 아주 불편한 공간이 된다. 누군가와 섞이진 않지만 나와 비슷한 적정한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가장 좋은 공간이 된다.'고 한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특히 무의식 속에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교, 병원을 생각해보자. 이 곳은 사람이 없으면 불편하다 못해 공포스러운 공간이 된다. 반면에 모두가 신발을 벗고 기모노를 입고 있는 호시노야는 도심과는 분리된 다른 공간이 됐다.


p.s 호시노야는 현대 삶에 지친 사람이라면 아주 환영할 곳이다. 특히 이 곳에서는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가 선택할 것은 오로지 '예, 아니오' 딱 두가지다. 호시노야에서는 고객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타이밍에 맞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너무 많은 선택지에 '선택장애'를 겪고 있는 현대인에게 이보다 좋은 서비스는 있을 수 없다.

현대인의 최대고민인 '점심 뭐먹지?'란 고민을 덜어준다 | 매거진 b 호시노야 편 88p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은 '오목'이라는 아이러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