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서한에서
회사 사정이 영 좋지 못하다. 나는 회사에서 끝까지 데려가 주려고 해서 감사했으나 글을 발행하는 날인 오늘, 불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듣고 나니 마침 이번에 소개할 문장이 지금 상황에 더 와닿긴 하다.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이 문장은 워렌 버핏이 2001년 버크셔 헤서웨이 주주서한에서 했던 말이다. 이 문장에서 물은 현금을 의미하며, 물이 빠진다는 것은 현금 여유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당시는 닷컴 버블이 터지며 부실기업들이 드러났던 때이기도 하다. 여유롭고 좋은 시기에는 모두가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으나 어려운 시기가 오면 본모습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문장처럼 회사가 어려워지니 사람들이 발가벗겨져 적나라게 보였다. 잠수해서 어디 갔는지 알 수 없는 사람. 이미 다른 배로 갈아탈 준비를 마친 사람. 다른 배에 타며 쓰던 튜브는 남 몰라라 내팽개친 사람. 함께 다른 배로 갈아타자고 손 내밀어주는 사람. 왜 물이 빠지고 있냐고 입만 둥둥 떠있는 사람. 더 이상 물이 빠지진 않을 테니 안심하라던 사람. 튜브라도 챙겨달라며 무단으로 들고나간 사람. 수영장 물에 오줌 눈 사람. 자기가 수영장 물에 오줌 눈 줄도 모르는 사람. 이럴 줄 알고 여분의 수영복을 챙겨둔 사람. 자기는 수영복 입고 있었다며 다른 사람을 하찮게 보는 사람.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말처럼 모두 제각각이다.
그럼 나는 어떻나. 나는 스스로 수영복을 입고 있으니 괜찮겠지 안심하고 끝까지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물이 빠지고 나니 나도 다른 배에 타야 하는 사람인 것을 알았다. 수영장 물에 내가 수영복을 입고 있는지 아닌지 제대로 파악을 못한 꼴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다행이다. 물은 언젠가는 다시 차오를테고, 내가 지금 다른 사람 모습을 기억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지금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텐데, 적어도 추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