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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핀 pin insight Jul 10. 2018

허공에 한번만 뿌리면 모든 먼지가 사라져요. 진짜?

인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공간항균탈취제'라는 제품 브랜딩을 과제를 한 적이 있다. 이 제품을 쉽게 설명하자면, 페브리즈의 주성분을 물에 희석하지 않아서 가격은 비교적 매우 비싸지만 효과는 극대화한 제품이었다. 제품 성능이 어느정도로 좋냐면, 허공에 뿌리기만 해도 웬만한 방크기의 공간에 거의 모든 세균이 박멸되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사실, 나도 믿겨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랜딩을 맡았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만병통치제 같은 제품을 브랜딩하기 위해서 약장수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약장수처럼 소위 약을 팔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최선의 답을 구하기 위해 차근차근 공부해갔다. 일단 시장분석부터. 해당 카테고리 제품들을 사람들이 어떠한 마인드로 소비를 하는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래로 넘어가기 전에 한번 생각해보고 넘어가자


항균을 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해보고, 관련된 행동을 살펴봤다.

 항균은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다. 예방은 완전히 '인식'의 영역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예방활동은 고정관념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손에는 세군이 많다', '콧물이 나고 기침이 나는 것은 호흡기 질병이다' 같은 고정관념이 있어서 우리는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쓴다. 그러므로 '공간'을 항균하는 우리 제품을 위해 '방 안에 세균이 가득해요~'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고등어를 구우면 미세먼지가 발생한다고 해볼까?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보였다. 집안에는 주로 공기청정기를 쓴다는 것! 공기청정기를 보니 실내 공기가 안좋다고 빨간 불도 들어오고 띵똥띵동 소리도 나고. 공기 정화가 끝나면 뾰로롱 소리도 났다. 반면에 이 제품은 그냥 분무기다. 게다가 냄새도 거의 나지 않는다. 항균탈취제라서 냄새가 나지 않는단다! 악취가 날 때는 냄새가 없어져서 그렇다치는데, 그러면 페브리즈랑 다를 것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제품을 보여주면 대부분이 페브리즈를 떠올렸다. 왜냐면, 소비자는 '제품 형태'로 용도를 구분하기 때문이다.


기존 탈취제는 제품 형태에 따라 용도가 달라진다. ('상습적으로 악취가 나는 폐쇄적인 공간에'라 쓸 걸)

 분무기 형태의 제품은 '직접적인 대상'에 '능동적'으로 뿌리는 제품이다. 게다가 항균보다 '탈취'에 초점이 맞춰진 제품이다. 공간에는 '냄새먹는 하마'같이 비치 형태의 제품이나 자동분사 형태인 제품이 더 잘 어울렸다. 그렇다고 제품 형태를 바꾸자고 하는 것은 약간 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인식을 전환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꼭 찾고 싶었다.


 그 무언가는 일상 생활에서 우연히 찾을 수 있었다.

'청소'는 애슐리 주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한시간마다 분무기로 소독해야 되서 생각났다
울 어머니는 항상 환기를 하시는 편이고 환기를 안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시는 분이다.

 청소는 공간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게다가 아주 능동적인 활동이다. 청소를 할 때면 누구나 먼지가 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너무 춥거나 더운 날, 혹은 날씨가 굳은 날에는 공기청정기를 틀겠지만, 공기청정기를 켜는 것은 수동적인 행동이다. 좀 더 청소에  열심인 사람들은 능동적인 행동을 원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인식을 심기 위해 '환기로는 부족해'라는 캠페인 슬로건을 제시했다.


 이전에는 식약청에서 인증받은 공서를 가지고 제품 성능을 어필하려 했다. '식약청에서 인증했으니 믿으세요'라는 것이다. 하지만 분무기같이 직접 뿌려야 하는 제품은 행동에 동기를 심어줘야 한다. 그 동기는 빡빡한 팩트보다 '아 그럴 것 같다'하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공감'의 영역인 것이다. 좋은 인사이트가 있다면 수치화된 자료는 보완만 해줄 뿐이다. 자료를 봐야만 납득되는 것은 인사이트가 아니다. '청소를 하면 먼지가 나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거나 공기청정기를 켜신다구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제는 직접 뿌리세요.' 이쪽이 좀 더 공감이 된다. (이래도 뿌리기 전과 후의 세균수를 비교해줘야 효과적이긴 하다.)


 예방 차원에서는 공인된 인증서보다 일차원적인 행동이 더 설득력 있었다. 생각해보면 우린 행동할 때 아주 구체적인 팩트를 따지지 않는다. 어림 잡아서 생각하거나 주어지는 선택지 안에서만 생각한다. 누군가 이유를 대가며 부탁하면 그 이유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고 이유가 있으니까 부탁을 들어준다. 그럴 것만 같으니까 행동하고, 그러면 안될 것 같아서 하지 않는다. 팩트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푸념하면 안된다. 인식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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