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빌어먹을 세상따위] 리뷰
제임스와 엘리사. 이 둘의 관계는 참 특이하면서도 변화무쌍하다. 처음에는 사회에 소외된 사람들끼리 서로 알아보고 예의주시한다. 둘은 너무나 달랐다. 엘리사는 감정이 넘치는 반면, 제임스는 감정이 거의 없다.하지만 의지할 사람이 없었던 둘은 서로 대화를 나누다 함께 떠나게 된다. 집을 떠나면서 제임스는 점점 감정을 되찾고 서로 각별한 사이가 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둘이 의기투합한 것은 아니었다. 집을 떠난 목적은 달랐다. 엘리사는 새아버지에게서 떠나고 싶었고 제임스는 감정을 느끼고 싶어 엘리사를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임스에게 둘의 관계는 잠재적 범죄자와 피해자였던 것이다. 제임스는 엘리사를 문제없이 죽이려고 엘리사가 하자는대로 맞춰주기 시작한다.
다른 꿍꿍이 속이 있었지만, 나는 이런 제임스의 모습이 바람직한 연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이는 '내 취향보다 상대 취향에 은근슬쩍 맞춰줄 수 있는 사이'이다. 애초에 사고방식과 취향, 목적이 완전히 같은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나는 고어하고 무서운 것을 못보지만 상대가 원한다면 즐기는 척 보려한다. (눈가리고) 받은 선물은 뭐든지 무조건 사용하고 지니고 다닌다. 상대에게 맞추다보면 관계가 변하게 된다. '범죄자와 피해자' 관계에서 '연인'의 관계로 바뀌는 것처럼.
둘 사이는 많은 대화가 오고 가진 않는다. 나는 전에는 관계를 유지하려면 '대화'가 필수라고 생각했다. 상대가 말하지 않아 답답해했던 적도 있고 말하지 않는 순간을 어색해 하기도 했다. 소개받는 자리는 지금도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서 잘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좋은 관계는 말이 필요없다. 상대가 내 말을 꼭 들을 이유도 없다. 그저 함께하는 그 순간이 좋으면 제일 좋은 관계다.
굳이 말하지 않았던 생각과 감정들은 모았다가 특별한 날 혹은 특별하고 싶은 날에 편지로 쓴다. 편지에는 둘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힘이 있다. 시작부터 '누구에게'를 써야되지 않는가. '누구에게'와 '누구가 씀'에 최대한 많이 생각해야 한다. '누구에게'는 '나에게 너는 어떤 사람이다'를 쓰는 것이고 '누구가 씀'은 '너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를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편지를 씀으로써 너와 나의 관계를 정의하는 것이다. 관계를 정의하는 것만으로도 둘 사이는 달라질 수 있다. '제임스와 엘리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