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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핀 pin insight Jun 21. 2018

처음부터 아주 좋은 아이디어는 없다. 약간 좋을 뿐

아이디어 회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지난 글에서는 시장분석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전 글을 짧게 요약하자면, 현 시장 상황을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장 원리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함을 피력했다. 해당 시장 원리를 알아야 경쟁사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 현재 자신의 문제점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문제점을 파악했다면 이제 해결해야 한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아이디어 회의를 하지만 단번에 좋은 해결책이 나오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한가지 문제점에도 해결하는 방법은 다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는 규모가 작게 나오기 때문이다. 작게 나온 아이디어는 보잘 것 없어 보이기 쉽기 때문에 무시해버리기 쉽다.


 내가 이런 일을 경험한 것은 지난 번에 소개한 '노인용 전동스쿠터'과제를 기획할 때였다. '장년층이 부모님게 사드린다'는 시장 원리를 이해했다. 핵심고객인 '액티브 시니어'에게 노인용 전동스쿠터 자체가 인식이 부정적이다는 문제점도 파악했다.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인사이트도 도출하고, 컨셉도 잡았으며 카피도 3가지를 생각해냈다. 그런데 좀 더 규모감이 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럴 때 나는 과제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친구한테 내 과제를 설명하고 조언을 구하는 편이다. 특히 과제에 많은 영감을 주는 '정수리'라는 친구가 있다. 그런데 나에게 영감을 주는 이 친구는 의외로 경영, 광고 전공자가 아닌 마술사다! 그래서 설명할 때는 아래와 같이 최대한 전공용어를 쓰지 않고 쉽게 설명하려고 하는 편이다.


 "노인용 전동스쿠터 브랜딩을 하는데 핵심고객인 '활동적인 노인'들은 이거 싫어하드라? '노인용'이라는 게 나약한 이미지 인가봐. 내가 맡은 제품은 남성적인 디자인이라서 60대 남성들 중에 경제적으로 좀 부유하고 활동적인 사람들이 좋아할 거 같아. 왜냐구? 내가 봤을 때 이 사람들은 음... '또 다시 서른'을 맞이한 세대같아.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면서 진짜 사회인이 되는 느낌이 50대에서 60대로 넘어가는 게 노년으로 거듭나는 느낌이랑 비슷할 것 같아. 그래서 더 '젊음'이나 '청춘'에 집착?하는 것 같고 나이드는 게 싫을 것 같아"

'또 다시, 서른'이란 말이 좋아서 ppt에도 추가했다.

 "근데 내가 봤을 땐 30대나 60대나 이룬 것이 많은 멋있는 나이라고 생각해. '노인간지'나는 나이랄까? 아예 '황혼의 멋'이라는 컨셉으로 가려고. 아주 발칙하고 도발적인 느낌으로 갈거야. 슬로건도 'Be Old' 어때? 나이 든 것이 당당함을 넘어서 자랑스러운 느낌을 주려고." 하고 아래 시안들을 보여줬다.

'나이는 못 속여'라는 말이 다르게 들린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이 녀석이 혼자 웃더니 '그럼 그거네, 멋쟁이 신사 나가신다 길을길을 비켜라~♬' 하더니 마저 웃느라 말을 잇지 못하는 것 아닌가! 난 진지하게 고민하고 좋은 생각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웃어버려서 장난으로 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필요한 조언은 구하지도 않고 정색하며 화를 냈다. 친구는 진지하게 들었다고 해명하느라 고생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멋쟁이 신사 나가신다'가 기획안과 잘 어울렸다. '길을길을 비켜라'라는 말도 묘하게 내가 원하는 전략과 맞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개선장군 같은 느낌이랄까? 순간 '인권문제를 다루는 사람'이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노인인권 문제에 앞장 서는 멋쟁이 노년 신사가 떠올랐다.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독일에서 봤던 성소수자 퍼레이드가 생각나 '노인용 전동스쿠터로 노인인권 퍼레이드를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리고 점점 판을 키웠다.


그것은 바로


기네스북에 도전하기로 한 것

 검색해보니 노인용 전동스쿠터로 퍼레이드를 한 사례는 전세계에 단 한 건도 없었다. 못할 것도 없었다. 기네스에 심사 요청을 하는 비용은 70만원 밖에 안한다! 등록비도 700만원대이다. 사실, 기네스에 등재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멋있게 잘 차려입은 노년 신사들이 노인 인권을 위해 노인용 전동스쿠터를 퍼레이드를 하면 뉴스에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1천만원도 안되는 비용으로 사회문제를 제기하고 브랜드도 홍보하고 일석이조아닌가!


 이후로 아이디어 회의는 가벼운 마음으로 하고 한다. 이 전까지는 컨셉까지 가는 길이 너무 험난해서 힘이 바짝 들어간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아이디어는 가볍고 작게 나온다. 즉흥적이며 연상적으로. 아이디어 회의할 때부터 진지한 마음으로 하면 가벼운 아이디어는 무시되기 싶다. '멋쟁이 신사 나가신다. 길을길을 비켜라~'에서 '노년 신사들의 기네스도전'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올 줄을 꿈에도 몰랐으니까.


p.s. 이 글을 쓰면서 간만에 찾아들어봤는데 지코버전이 더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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