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원리를 파악하자
광고홍보를 전공하면 1학년때부터 시장조사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광고기획을 하려면 시장조사는 필수니까! 그래서 온갖 데이터를 모은다. 교수님께서는 데이터를 단순히 나열하면 안된다고 하셨지만, 다른 학우들도 나와 생각이 같은지, 발표할 때보면 모두 비슷비슷한 자료를 보여주며 발표하고 있다. 심지어 컨셉까지도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시장조사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데이터다. 한참 빅데이터가 주목받기 시작한 때여서 더 데이터에 집중했다. 심지어 없는 데이터는 설문을 통해 만들어낸다. 그도 안되면 FGI(표적집단면접법 : 핵심고객을 모아두고 진행하는 인터뷰)를 통해 보충 설명한다. 이렇게 데이터를 모아모아 만든 기획서는 다음과 같다.
자사분석 > 시장 분석 > 소비자분석(설문,FGI) > 인사이트 도출 > 컨셉도출 > (크리에이티브 방안)
이는 아주 정석적이지만, 정말 데이터가 없는 경우에는 활용하기 어렵다. 일례로, [노인용 전동스쿠터] 브랜딩 기획 과제를 맡았을 때는 정말 자료가 없어서 시작부터 난황을 겪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위와 같은 흐름으로 기획하면 뻔해질 수 밖에 없다. 아래 기획 사례를 보기 전에, 나라면 다음 노인용 전동스쿠터를 어떤 컨셉으로 브랜딩할지 생각해보자.
#자사분석
우리가 맡은 브랜드는 국내 브랜드로, 미적인 제품에 성능도 꽤 좋은 제품이었다. 가격도 국내 제품 중에서 가장 높았으나 해외 제품 중에는 더 비싸고 더 성능 좋은 제품도 있었기 때문에 중상위 정도 되는 브랜드라 할 수 있겠다.
#시장분석
고령화로 인해 실버 산업이 각광받고 있으며 실제로 해당 시장도 매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노인용 전동스쿠터는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오기 때문에 생각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구매할 수 있다.
#소비자분석
실버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액티브 시니어(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활동적인 60대를 이르는 말)들에 대해 소개한다. 이들은 소비력이 크고 경제활동이 왕성하다. (분석은 좀 더 깊이 파고 들어야 하기 때문에 소개한다고 표현했다.)
#인사이트 도출
제품의 특장점과 연관짓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만든 제품이기 때문에 시니어 세대는 '국산'제품을 애용한다는 인사이트를 FGI에서 도출할 여지가 많다.
#컨셉도출
결국 '국산 프리미엄'이라는 컨셉을 도출한다.
나 역시 이렇게 평범한 기획서를 써왔다. 내 입장에서 이렇게 평범한(?) 기획안이 나오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기획하는 법을 정해뒀기 때문이었다. 사실 기획은 방법이 정해져있지 않다. 문제만 잘 찾아서 해결하면 된다. 내가 이번에 기획한 것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자사분석 > 과제설정 > 시장분석 > 타깃 분석 > 문제점도출 (> 인사이트 도출 > 컨셉도출 > 크리에이티브 방안)
#자사분석
제품성능은 충분히 좋고, 가격대가 높다.
#과제설정
성능만 내세울 경우 해외브랜드와의 경쟁에서 끝없이 경쟁해야 하니, 성능은 굳이 내세우지 않는다. 가격대가 높으니 프리미엄 이미지를 가져야 한다.
#시장분석
노인용 전동스쿠터를 이용하는 것은 노인이지만, 그들에게 사드리는 것은 장년층이다! 그러나 한가지 함정이 있다. 장년층을 타깃으로 생각하면 장년층이 부모에게 사주는 것이기 때문에 '효'라는 컨셉에 갇히기 쉽다. 실제로 대부분의 노인용 전동스쿠터는 '효'를 컨셉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다. 후발주자로서 차별화를 해야 한다.
#타깃 분석
우리 제품은 프리미엄 브랜드로 미학적 가치가 있다. 이를 알아보고 소비할 핵심고객은 액티브 시니어들이다. 이들에게 '효도선물'로 노인용 전동스쿠터를 주는 것은 정말 좋지 않은 선택이다. 액티브 시니어들에게 '노인용 전동스쿠터'는 액티브 하지 못한, '노인들의 나약함'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애초에 이들은 자신의 물건을 직접 구매한다!
#문제점 도출
여기까지 생각했으면 문제점은 간단하다. '노인용 전동스쿠터 = 노인들의 나약함'이라는 인식. 이 인식을 개선하면 된다.
나는 시장조사를 하면서 해당 시장이 돌아가는 원리를 알아내려고 한다. 시장원리를 알아야 시장 내 경쟁 브랜드들이 왜 해당 컨셉(위의 사례에서는 '효')을 갖고 커뮤니케이션하는지 이해된다. 시장원리를 알아야 우리가 노려야 할 타깃이 분명해진다. 시장원리를 알아야 간과했던 문제점도 보인다. 시장원리를 알아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더불어, 원리에 대해서 설명하면 수치는 정말 부수적인 것이 된다. 굳이 수치를 넣어야 한다면, 노인용 전동스쿠터의 이용 세대와 구매 세대에 대한 통계자료 비교 및 액티브 시니어들의 구매패턴에 대한 자료만 있으면 된다. '실버 시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같은 데이터는 너무 부수적이어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나는 데이터 수치를 자꾸 채우려하기보다는 해당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원리를 파악하려고 한다. 원리를 알아야 적용하고 변화할 수 있으니까. 그래야 사회'과학'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