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에게 제발 잠 좀 처자라고 들려주는 쫌 동화 같은 이야기 51
레옹2야, 오늘 너랑 자전거 타고 호수공원 한 바퀴 도는데 30분밖에 안 걸린 거 아니? 아까 등나무덩굴 앞에서 슈나우져 만났을 때 생각나지? 녀석이 그렇게 짓고 달려들어도 니가 평정심 잃지 않고 계속 달리는데 집중한 덕이란다.(칭찬 후 적절한 보상은 진리라고? 옜다, 오리 육포 뜯으면서 얌전히 마저 들으렴.)
레옹2야, 니가 처음부터 이렇게 모범적인 달리기를 한 건 아니야. 기억하니? 4년 전 생후 6개월 된 너는 달릴 때 앞을 보는 대신 고개를 땅에 처박고 내달렸단다. 니 목줄을 놓치는 상상만으로도 난 공포에 떨어야 했지. 과연 너를 무사히 키울 수 있을지 확신이 안 들더라. 하루는 빼꼼히 열린 대문 사이로 니가 탈출을 감행한 적이 있어. 목격자에 따르면, 갑자기 나타난 니가 좁은 골목길을 땅바닥만 보며 질주하더니, 편의점 사거리에서 주춤하는 것도 잠시 다시 땅바닥만 보며 올림픽도로로 이어진 길을 향해 용수철 튕기듯 우회전을 하더래.(올림픽도로는 신호등도 없는 자동차전용도로라는 거 감안하고 들어줄래?) 세상에, 이쯤 되면 상황은 불 보듯 뻔한 거란다. 자동차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와 함께 펼쳐질 생후 6개월짜리 강아지의 교통사고 현장! 근데 말이야. 니가 사라진 방향으로 미친 듯이 발걸음을 옮겼을 때 이건 마치 내가 전혀 다른 세상으로 순간이동한 건 아닌가 싶더라. 마주한 풍경이 길도 사람도 자동차도 세상 평화롭더라 이거야. 그때였어. 골목 끝에 새로 생긴 A호텔 옆문이 활짝 열리더니, 벨보이 차림의 남자가 무언가를 들고 나오는 모습이 포착된 건. 그래, 맞아. 남자의 손에 목덜미 잡힌 채 들려 나온 무언가는 다름 아닌 네 녀석이었단다!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레옹2?
몇 달 후 우리는 올림픽대로가 없는 안전한(?) 근교로 이사를 왔고, 너는 이제 앞을 보고 달리는 아주 모범적인 강아지가 됐지. 참, 니가 들어갔던 그 A호텔 말인데, 신박한 아이디어의 반려견 패키지로 요즘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다지 뭐냐? 듣고 있는 거니, 레옹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