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에게 제발 잠 좀 처자라고 들려주는 쫌 동화 같은 이바구 51
니 이름은 ‘레옹2’지만, 내가 기분 좋을 때 넌 ‘귀염둥이’가 되고, 니가 사고라도 치면 영락없이 넌 ‘웬수덩어리’가 되곤 하지. 근데 말이다, 레옹2. 그 ‘웬수덩어리’로 불릴 때가 제일 좋다던 녀석이 있었단다.
니 할머니 핀이 지금의 너보다 어렸을 때 이야기란다. 그때는 주말마다 핀을 데리고 부모님 계시는 본가에 갔었지. 도착하면 녀석을 두고 곧바로 동네 친구들을 만나러 갔는데, 내가 나가고 나면 엄마는 아빠를 향해 푸념 한 바가지를 쏟아놓곤 했어.(핀 말로는 엄마는 아빠가 듣는지 마는지 따위 관심도 없어 보였고, 푸념의 레퍼토리는 한결같았대.)
“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저러고 개나 데리고 싸돌아다니니 언놈이 좋아해? 뜬금없이 잡지 기자한다했을 때부터 내 알아봤어. 조신한 직업 다 놔두고 미친년맹키로 툭하면 이 나라 저 나라 이민가방 들고 촬영이니 뭐니 나 댕기니 암만해도 역마살이 낀 게 분명해. 대체 언제 제짝 만나 결혼하려고 저러는지. 에그, 웬수덩어리.”
“당신 닮아서 애가 술 무서운 줄 모르고 저렇게 마셔대는 거 아니야. 뭔 놈의 직업이 허구한 날 회식인지, 제때 전화라도 받으면 내 말을 안 해. 에그, 웬수덩어리.”
“과학자인지 기술자인지 된답시고 이공대에 들어가더니만, 웬 놈의 기자 나부랭이를 하고 있으니 뭐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지. 에그, 웬수덩어리.”
근데 레옹2야, 핀은 이런 엄마의 푸념이 싫지가 않았어. 나중엔 오히려 자장가 삼아 낮잠까지 잤으니까. 특히 엄마가 말끝마다 입버릇처럼 내뱉는 그 말을 아주 좋아했지. ‘웬수덩어리.’ 핀에게 ‘웬수덩어리’라는 말은, 엄마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 막둥이!’라고 혼자서 외치는 소리로 들렸어. 암만 들어도 거칠지만 따뜻한 소리, 가족이 뭔지 알게 하는 소리, 언젠가 못 견디게 그리울 소리!(첫 번째 주인에게 파양 당하고 나에게 온 핀은 당시 자신에게 가족이란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생각했단다.)
레옹2야, 그런 핀에게도 가족이 생긴 거야. 녀석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주전부리로 새로 산 내 안경테를 잘근잘근 씹어 먹던 날이었지. 사고 현장을 목격한 내가 그냥 보고만 있진 않았겠지?(레옹2, 니가 잘 알잖니?) 얼굴이 벌게진 내가 녀석을 잽싸게 낚아챘는데, 바로 그때 핀이 분명히 들었대. 내가 신음처럼 내뱉는 소리를.
“에그, 웬수덩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