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에게 제발 잠 좀 자라고 들려주는 쫌 동화 같은 이야기 51
레옹2야, 내가 전에 니 할머니 핀 이야기한 적 있지? 니가 못 먹는 생선회를 핀은 초고추장까지 쳐서 야무지게 먹었단 얘기 말이야.(너는 못 먹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안 먹는 거라고 그때 박박 우겼잖니? 후쿠시마 원전수 방류 안 했으면 어쩔 뻔했니, 레옹 2?) 오늘이 바로 니 할머니 핀의 기일이란다.
핀은 늙어서도 본연의 까칠함을 잃지 않은 자기 색이 아주 강한 개였어. 시력과 청력이 다해 가면서는 그나마 남은 후각으로 일상을 보냈지. 마치 세상에 믿을 건 자기 코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 그날을 떠올리자니 다시 가슴에서 불덩이가 치미는구나. 교외 식당에서 맛있게 밥을 먹었으면 바로 출발할 것이지 나는 왜 주차장 한편에 니 엄마와 할머니를 내려놓은 걸까? 잠시 전화받는 사이 벌어진 그날의 참담한 사고! 앞이 잘 보이지 않던 핀이 코를 땅에 박고 가닿은 곳에는 혈기왕성한 시베리안허스키 한 마리가 묶여있었고,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전광석화로 핀의 가슴팍을 물고 흔들었지. 짧은 비명에 놀라 뛰어갔을 때 본 녀석의 눈을 나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단다. 악마를 품은 듯한 갈색과 푸른색의 그 오드아이를!(레옹2야, 오드아이들 만나면 왜 쳐다보지도 말라했는지 이제 알겠지?)
피투성이 핀을 싣고 동물병원으로 가는 길, 피 땀 눈물범벅인 채로 인공호흡하는 내게 핀이 불같이 화를 한 번 내더라. 처음엔 아파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나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그래서 자기 딸 레옹 잘 돌봐야 한다고 있는 힘 다해 마지막으로 울부짖은 거였지. 병원에 가도 결국 심폐소생이 안 될 거라는 거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단다.(핀을 끌어안고 병원으로 가는데 말이지. 생명이 꺼져가는 모든 과정이 손끝에서 일일이 다 느껴지는 거야. 믿을 수 없을 만큼 모두 다!) 그렇게 나는 니 할머니 핀을 보내야 했어.
레옹2야, 그 얼마 후 나에게 미션 하나가 생겼단다. 핀의 복수를 하지 않고는 도저히 발 뻗고 못 자겠더라.(니가 나라도 그러지 않겠니?) 늦은 시간까지 잡지 마감을 하던 어느 날 퇴근길이었어. 목적지는 그날의 식당. 영업시간이 한참 지난 후라 주차장에는 쥐새끼 하나 없었지. 주위를 쓱 둘러본 후 개집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어. 넓은 주차장 어디에도 우려했던 CCTV는 다행히 없더라. 목줄을 한 오드아이와 나 둘밖에 없는 공간, 녀석을 향해 무작정 돌진했어. 물론 손에는 가공할만한 무기를 들고 말이야. 그리고 일순간 오드아이와 눈을 마주치는데, “엄마야, 눈이 오드아이가 아니야!” 그렇게 깜짝 놀라 잠에서 깨곤 했단다.
맞아. 미션은 임파서블이고, 여전히 나는 발 뻗고 못 잔다는 이야기란다. 실망했니, 레옹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