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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난 레옹이 Mar 21. 2022

술주정하기 딱 좋은 날

봄까치꽃인지 큰개불알풀인지

녀석이 현관 앞에서 사자 눈빛을 한 채 나를 향해 도발한다. 탐스러운 앞발을 반복해가며 굴러대자 늘어진 양쪽 귀가 덩달아 우스꽝스럽게 펄럭인다. 밖에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날 때 녀석은 늘 이런 식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날씨가 대략 화창이렷다. 녀석의 도발을 핑계 삼아 다시 한번 집을 나선다. 매일 가는 공원 초입에는 일주일 전부터 봄의 전령사로 알려진 봄까치꽃이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았다. 연보라색 꽃망울이 앙증맞아 초록창을 찾아보니 꽃말이 ‘기쁜 소식’이란다. 아! 몇 군데 걸어놓은 술 약속들이 대뇌에서 용수철처럼 튕겨져 나온다. 입맛을 다신다. 봄까치꽃 덕에 어쩌면 오늘은 한동안 뜸했던 나의 술상에도 이야기 꽃이 피려나 보다.


내 주위에는 유난히 애주가가 많다. 오죽하면 한때 ‘초뺑이파(초뺑이-남도식 방언으로 술주정뱅이를 일컬음)’를 결성하고 매일 밤 용맹정진 왕성한 조직활동(?)을 했던 시절도 있었으니 말 다했다. 물론 멤버들이 하나 둘 건강상, 그리고 정황상 본의 아니게 탈퇴를 하면서 지금은 유명무실한 휴면 조직이 돼버렸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나의 정예 멤버들은 서로 친밀한 사이임을 드러내고 싶을 때, 상대방에게 ‘초뺑이’라 부르며 이제는 술잔이 아닌 은밀한 정과 추억을 나누곤 한다. 주변이, 정황이 이렇다 보니 특별히 약속하지 않아도 아주 자연스럽게 나의 저녁 만남은 술자리로까지 이어질 때가 많다. 딱히 어떤 성과(?)를 바라고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는 건 아니지만, 간혹 가뭄에 콩 나듯 그 안에서 제너럴한 관계가 스페셜한 관계로 전환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번지르르한 허울을 벗어던지고 서로의 진솔한 내면으로 소통하게 하는 힘. 알코올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가끔씩 매우 위대하다. 물론 상대에 대해 어떤 마음이 하나라도 있어야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서 얻은 소중한 사람들, 아름다운 관계들이 이제와 생각해보니, 쓸쓸한 계절 나에게 무엇보다도 따뜻한 가슴이 돼주고 있더라.


물론 무엇이건 도를 넘게 되면 결국 해가 되기 마련이다. 알코올의 긍정적 힘은 인정하되, 우리 주변에는 알코올과 함께한 훈훈한 사례만큼이나 그 폐해로 일그러진 사람이, 관계가 그리고 실적(?)이 산재해 있음을 부정 못하겠다. 몇 해 전 나는 만취상태로 술주정을 심하게 한 적이 있다. 아니 있다고 들었다. 과거 몇몇 만취 사례를 전해 들어 종합해본 결과, 나의 술주정은 대체로 상대를 물리적으로 괴롭히는데 집중하는 경향이더라. 내 딴엔 장난이랍시고 하는 짓일 텐데 개망나니가 따로 없다. 나와의 관계에 세월의 견고함이 미처 더해지기 전이었던 상대는 당연히 기억 안 난다는 내 말을 못 믿었고, 나의 술주정에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낙인을 모질게 찍었다. 꽤 여러 번 사과를 시도했으나, 기억나지 않는 일에 대해 사과하는 거 자체가 진정성 없게 느껴졌겠지. 당시 마음의 상처로 많이 아프고 힘들어했지만, 어느새 그 마음에 딱지가 지고 굳은살도 생겼다. 이제는 모질었던 상대가 되려 고맙다는 생각까지 든다. 더 너저분하게 엉키지 않도록 실타래를 정리한 건 결국 상대였으니까. 그래서 ‘그때는 미안했고 지금은 고맙다.’


보란 듯 또 하루가 지나간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나의 하루하루를 지탱하고 또 다독여주는 것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뭐가 됐건 소중한 만큼 과유불급을 외친다. 새삼스럽다.


실은 지금 혼술 중이다. 봄까치꽃인지 큰개불알풀(봄까치꽃의 정명)인지 기쁜 소식은 개나 주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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