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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난 레옹이 Nov 16. 2022

왕별꽃의 탈북 여행

백두산에 사는 왕별꽃 일산 한류천에서 발견되다!

집에서 자동차로 오분 거리에 ‘한류천’이 있다. 반려견 레옹이와 주로 이곳에서 산책을 한다. 오가는 사람이 적어서 가끔씩은 눈치 보며 레옹이의 목줄을 풀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류천변에는 언제나 강태공들이 늘어 앉았다. 도대체 물고기를 한 번이라도 낚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걸까? 볼 때마다 다들 미동 하나 없다.

처음 산책을 시작하던 두 해 전, 이곳에 낯선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진 적이 있다. 사파리 모자 쓴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이쪽저쪽 기웃대며 걷고 있는 모습이었다. 일행은 개망초 꽃이 흐드러진 뚝방 한편에서 무언가를 한참 살피더니 이내 카메라를 들이대고 셔터를 누르고 플래시를 터뜨리고 아주 난리법석을 떠는 것이다. 나와 레옹이는 산책을 포기하고 도대체 이게 무슨 사달인지 알아야 했다. 전모는 이랬다. 북한 백두산에서 자라는 왕별꽃이란 식물이 일산 한류천에서 발견됐다는 제보를 받고 모식물학회 전문가 그룹이 확인 차 방문을 하게 됐고, 관찰 결과 진짜 그 식물이 맞는 바람에 빚어진 흥분의 카메라 세리머니였던 것.

산책로에서 문제의 뚝방까지 고작 삼 미터 거리.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다. 내 눈에는 그 식물이 분명 개망초 꽃이 맞다. 일명 계란 프라이 꽃, 봄부터 여름까지 길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 국화과 꽃! 그런데 그 개망초가 개망초가 아니라니. 한반도에서는 백두산에서 자란다는 그 왕별꽃이라니! 좀 더 가까이 가서 봐야 했다. 세리머니가 잠잠해지고 사람들이 하나 둘 빠지기 시작했다. 얼마 후 나와 레옹이는 문제의 식물을 예의 주시하며 거리를 좁혀갔다. 삼 미터, 이 미터, 일 미터….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렀다. ‘세상에, 국화과 꽃이 아니었어!’ 삼 미터 거리에서 봤던, 통 모양 노란색 꽃들이 가운데 빽빽이 모여있고 길쭉한 혀 모양 흰색 꽃들이 가장자리를 에워싼, 개망초의 머리모양꽃(두상화, 국화과의 특징)은 그곳에 없었다. 일 미터 안쪽에서 본 꽃은 전혀 다른 모양새였다. 수십 장으로 보인 흰색 꽃잎은 한 장이 여러 개로 갈라진 다섯 장의 꽃잎이었고, 노란색 꽃들이 모여있어야 할 가운데 자리엔 수술 열 개와 암술대 세 개가 갑자기 나타난 유령처럼 도드라져 있지 뭔가. 똑바로 봐도 거꾸로 봐도 석죽과 꽃! 개별꽃, 별꽃, 벼룩이자리, 개미자리, 패랭이꽃 등이 대표적인 석죽과는 나에게 꽃잎으로 장난을 치는 식물 가족으로 각인돼있다. 대부분 꽃잎이 두 개 이상 깊거나 얕게 갈라져 있기 때문이다. 왕별꽃은 별꽃 중에서 꽃의 크기가 가장 큰 종으로 꽃잎이 유난히 여러 갈래로 깊게 갈라진 특징이 있다. 그래서 미풍에도 꽃잎이 하늘거린다. 

그 후로 나와 레옹이는 백두산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왕별꽃을 매일 아침 산책길에서 만난다. 김일성이 좋아했던 꽃, 북한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꽃, 왕별꽃. 근데 그 귀한 왕별꽃 씨앗이 어떻게 삼팔선 넘어 이곳 한류천까지 온 걸까? 겨울철새 깃털에 슬쩍 무임승차한 걸까? 임진강 물길 따라 그저 유유히 흘러 왔을까? 몇 해 동안 이곳에서 어김없이 꽃을 피우며 열심히 정착 중인 왕별꽃의 탈북 여행이 나와 레옹이는 참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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