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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난 레옹이 Jan 03. 2023

자작나무숲에 티라노사우루스가 살았을까?

종의 기원,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

멀리서 단박에 눈길을 당기는 나무가 있어요. 가끔씩 반려견 레옹이와 산책 오는 생태공원이에요. 희끗희끗한 빛깔로 공원 초입부터 호객 행위하는 나무. 자작나무예요. 


추운 지방이나 고산지대에는 주로 잎이 길고 뾰족한 침엽수가 살아요. 넓은 잎으로는 추위를 견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간혹 잎이 넓은 활엽수가 사는데 대표적인 나무가 자작나무예요. 자작나무는 이른 시기에 잎을 떨구고, 추위를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지질 성분을 몸에서 만들어요. 그 성분은 주로 껍질에 저장돼요. 그래서 나무껍질에 불을 붙이면 지방 타는 소리가 나요. ‘자작자작’, 자작나무로 불리게 된 연유이지요. 하얀 껍질색도 생존을 위한 노력의 결과예요. 자작나무의 고향땅은 항상 흰 눈에 덮여 있어요. 눈의 햇빛 반사율은 여름철 해수욕장의 반사율보다 4배가 더 높아요. 왜 스키장에서 자외선차단제를 바르지 않으면 자칫 화상까지 입는 경우가 있잖아요? 자작나무가 태양의 복사열에다 눈에 의한 반사열까지 고스란히 다 받는다면 물관을 비롯한 나무의 주요 내부기관은 모조리 타 죽고 말 거예요. 검은색은 빛을 흡수하고 흰색은 빛을 반사하지요. 자작나무는 살기 위해 껍질을 흰색으로 만들었어요. 

괜히 나무껍질 한 번 토닥이고 하늘을 봐요. 가지마다 길쭉한 방망이들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어요. 자작나무 마른 열매예요. 레옹이가 물고 노는 기다란 나뭇가지를 빼앗아 가장 낮게 드리워진 가지를 타격해요. 열매가 우수수 흩어져요. 땅에 떨어진 열매를 주워 자세히 보니 씨앗을 감싼 포가 켜켜이 쌓여 둥근기둥을 이루고 있어요. 손가락으로 살짝만 눌러도 쉽게 부서져요. 부서진 파편들 사이로 날개 달린 아주 작은 씨앗이 수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말지요. 씨앗의 무게는 사뭇 가볍고 날개는 비행접시 모양이에요. 바람 불면 바람 타고 당장이라도 날아갈 기세예요. 스스로 먼 거리를 이동하는 자작나무 씨앗의 놀라운 진화이지요.   

모든 생물은 자신의 고유한 라틴어 이름을 갖고 있어요. 스웨덴 식물학자 칼 폰 린네 덕이예요.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예요. 호모는 속명이며, 사피엔스는 종명이지요. 자작나무의 속명은 베툴라(Betula)예요. 베툴라 속에는 먼 옛날 같은 종이었던 자작나무, 만주자작나무, 박달나무, 물박달나무, 개박달나무, 거제수나무, 사스래나무 등이 있어요. 이들은 모두 라틴어 베툴라의 어원처럼 ‘끈적이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 또는 ‘반짝이는’이란 공통점이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같은 종이었던 나무들이 서로 다른 종으로 진화했을까요?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자연환경과 그에 대처하는 나무들의 변화가 모두 달랐기 때문이에요. 변화는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예요. 종의 기원이지요. 


지금 내 앞에 살아 숨 쉬는 자작나무가 있어요. 자그마치 1억 년 이상 변화를 이어온 종이지요. 그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미래에도 있을 거예요. 아득하고 깊은 울림에 사로잡혀요. 우리 인간사를 나무적 입장과 관점에서 바라봐요. 중요하게 여겼던 모든 것이 한없이 하찮고 자질구레하기까지 해요. 나무의 본질을 헤아리고픈 욕망도 어쩌면 우리의 이해 수준을 뛰어넘는 것으로 무모한 욕심일지 몰라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자작나무는 어김없이 잎을 틔우고 또 꽃을 피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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