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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나 Pina Jun 22. 2020

옷장 정리로 마주하는 쇼핑의 쓴맛

옷장 정리로 마주하는 쇼핑의 쓴맛



마음의 준비 없이 맞닥뜨린 뜨거운 공기. 옷장의 라인업 또한 여름의 옷들로 바꾸기 위해 두꺼운 옷들을 접었고 상자 속 넣어둔 짧은 소매의 옷들을 꺼냈다. 매번 옷장을 정리하며 느끼지만 충동적으로 산, 혹은 내가 고심 끝에 샀다고 생각하는 옷에서도 헌옷 수거함으로 가야 할 것들은 여지없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옷장을 정리할 때마다 나의 쇼핑 실력이 이렇게나 형편없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순간은, 늘 입맛이 쓰다. 모든 일이 투입 대비 좋은 결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옷을 사는 일은 왜 이렇게 실패가 거듭될까.



이번 정리에서 내가 '화이트'를 좋아하게 됐다는 취향의 변화도 실감했다.



잘 입게 되는 좋은 옷은 대개 비싸고 못 만든 옷은 가격을 가리지 않고 너무나도 많다는 나만의 빅데이터가 이번 정리에서도 어김없이 증명된 것 같다. 이번 옷장 정리에서 눈에 띈 실패 사례들을 여기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색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맨투맨 티셔츠. 평소 디테일이 있는 옷을 자주 사는 편이 아니지만 이번 봄 프릴 좀 입어볼까, 싶어 앞판에 프릴이 큼직하게 달린 맨투맨을 온라인으로 샀는데 (그리 저렴한 가격이 아닌데도)질 낮은 소재와 색감이 불합격이었다. 쨍한 그린 컬러를 기대했지만, 물빠진 듯한 색에 낡은 듯한 소재. 약간 기장이 짧은 듯한 것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렇게 하나 또 집에서 입는 옷을 늘리고 말았다. 돌아올 겨울 나의 홈웨어가 될 것이다.


두 번째- 1년이 조금 넘게 입은, 면과 텐셀이 혼용돼 무리없이 자주 입던 기본의 무지 티셔츠였다. 조금씩 보풀이 생기게 된 것은 두 계절을 채 넘기지 않은 이후. 텐셀이 섞였다는데 이렇게 보풀이 생길 수 있는지 의아해하던 중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퍼져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저렴한 가격의 티셔츠는 소재에 대해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다행히도 실패 사례는 교훈을 남겼고 시행착오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이라, 내가 몇 번의 옷장 정리를 통해 세운 원칙도 잊지 않게 적어두고자 한다. 나름의 꿀팁.



디테일보다는 소재로, 실루엣으로 포인트


자주 입는 옷과 어울려야 하니까, 또 일주일 중 5일은 출근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디테일이 눈에 띄거나 과한 옷들은 자연스럽게 피하게 되었다. 대신 색과 소재가 오묘한 분위기의 옷이나, 카라의 디자인, 루즈핏에 관심이 옮겨 간 것 같다. 덕분에 플라워 패턴이나 여성스러운 디테일이 달린 옷은 갈수록 자취를 감추고 있다(라고 쓰고 있지만 프릴 달린 맨투맨으로 언행불일치 저지름).



아무리 유행이라 해도 사지 않는 것들


요즘 많이 보이는 하이웨이스트는 너무나도 환영이지만, 크롭 티셔츠도 함께 유행이 되었나보다. 그러나 크롭 기장의 아이템은 '절대 사지 않는 옷'의 범주에 이미 들어갔기 때문에 상세페이지를 볼 때 몇 번이고 확인하고는 한다. 대놓고 크롭이 아니라도 애매한 기장은 허리가 긴 나에게 늘 불편했기 때문이다. 외에도 절대 사지 않는 아이템으로는 속옷 끈이 보일까 신경 쓰이는 보트넥, 보폭을 제한하는 스커트를 들 수 있다.



마음에 드는 바지의 사이즈는 메모해두기


흔히 '슬랙스'를 살 때 적더라도 스판의 혼용률을 살피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만 빳빳하게 감기면서도 여유로운 핏, 스판이 들어가면 애매한 하의들이 가끔 레이더에 포착된다. 이런 옷들은 내가 적어둔 사이즈 기준선을 통과하지 않으면 과감히 포기하는 노하우가 생겼다. 지금까지 샀던 바지 중에서 가장 마음의 드는 것의 사이즈를 메모해두니 사이즈 때문에 실패하는 일이 줄어들게 됐다.



여전히 나는 쇼핑에 배신당하는 일개 소비자이고 옷을 자주 사지 않아도 충동구매는 피할 수 없는 사고처럼 일어난다. 다만 언제든 마음에 안드는 옷을 정리해서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지금, 옷장은 좀 더 가벼워지고 오히려 옷에 쓰는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택배상자를 개봉하면서도 '아, 이건 아무리 바짝 입고 입어도 대여섯번이겠다, 싶은 쎄한 느낌을 주는 옷을 또 만날지 모르지만 좀더 유연해지기로 한다. 입맛이 써도, 제 때 뱉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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