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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나 Pina Aug 13. 2020

비닐백 없이 1인분 식재료 구입하기

비닐봉투 줄이기, 시작!



집에서 보내준 애호박을 먹어 없애야 했고 체력을 아껴 반드시 채소가 가득한 찌개를 끓이리라 마음먹었던 3일 전. 패브릭 파우치를 챙겨 마트를 갔다. 얼마 전 '집에 비닐봉지를 들이지 않겠다'며 혼자만의 선언을 해버린 이후 첫 번째 장을 보던 날이었다. 비닐백을 안쓰려는 의지도 중요했지만 그날 느낀 의외의 난관은 딱 1인분에 맞게 식재료를 사는 것. 감자와 양파 한 개, 팩에 들지 않은 버섯이 있다면 살 생각이었는데 절반이 넘는 성공을 거두었다.


양파의 경우 선택지가 둘이었다. 5개 넘는 양파가 들어있는 작은 망, 그리고 다듬어진 두개의 양파가 스티로폼 받침에 담겨 랩을 씌운 형태. 요리도 자주 안 하는데 5개를 샀다간 상할게 뻔해 다듬어진 것을 골랐다. 차마 랩을 벗겨 스티로폼을 두고 가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감자는 일단 1개를 골라 저울에 달고 가격표를 무리없이 인쇄할 수 있었다.


여러 버섯 중 표고버섯은 무게를 재서 살 수 있길래. 하나를 집어 어렵게 직원분께 무게를 달아달라고 했더니 ‘너무 가벼워 무게가 안 나온다’고 난처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몇 번을 시도하는 동안 내가 너무 유난인가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끝내 인쇄하는데 성공했다! 왜 비닐을 안 쓰는지에 대한 의문보다는 정말 무게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어려워했던 그대로의 반응이라 다행이었다.



표고버섯이 은근 비쌌던.



이쪽 세계(?)에 발을 디딘 계기는 분명 환경파괴에 대한 죄책감만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무심코 시켜 먹은 배달음식 일회용 식기를 설거지하면서 느낀 짜증이나, 정리의 기본인 접기를 포기한 채 이케아(바리에라) 비닐봉투 정리대에 쑤셔 넣은 봉지들이 흘러넘쳐 발끝에 채이는 순간의 감정. 그런 류의 '이건 아니라는' 생각들이 차곡차곡 쌓여 마침내 폭발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세차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눅눅한 빨래바구니에서 빨랫감을 들었을 때 정리대에서 흘러든 비닐봉지를 또 찾아내고 말았는데, 그때는 진심으로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참담한 기분이 내린 결론은 더 이상 못 참겠고, 플라스틱 그만 좀 들이자는 것. 비닐봉투에 질려버린 이 시점이 기후 변화가 극적으로 다가온 이번 여름과 맞물리게 되었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방안 곳곳에서 출몰하는 비닐도 이제 없애버리고, 배달음식도 줄여서 쓰레기 버리는 비용도 줄이겠다는.



지금까지의 나는 약간의 편의를 위해 플라스틱을 들이면서도 늘 후회하는 쪽. 예를 들어 도시락을 시키면 재활용 쓰레기가 한 무더기 생기고 버리려면 또 씻어서 분리배출해야 하니까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만 없을 뿐 손이 가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돈도 덜 쓰고 쓰레기도 덜 생기게 배달 그만 시키자고 마음먹지만 손가락 움직임 몇 번으로 따뜻한 밥을 받아드는 편리한 시스템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고.. 이내 배달앱을 켰다.


배달음식 외에 어디서 비닐을 많이 받아오나 생각해보면 분명 먹는 일과 관련되어 있었다. 보통 무엇인가를 살 때 봉투를 받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식재료를 살 때 흙 묻은 감자를, 당근을 그대로 계산해 가방에 집어넣을 수는 없는 일이니 어쩔 수 없이 마트에선 비닐 롤백을 썼던 것. 이것만 줄여도 집에 들이는 비닐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자 심각한 이 선언, 얼마 지나지 않아 없던 일이 되어버리거나 수차례 포기와 시작을 반복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동안은 몇 개의 비닐이라도 덜 들이고 버릴 걱정도 덜 하면서 보낼 수 있을 거라는 판단. 일정기간 잘 해낸다면, 제로웨이스트까진 아닐지라도 쓰레기가 덜 발생할 수 있도록 다른 습관을 들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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