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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나 Pina Jun 03. 2021

현대인은 왜 바쁜가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물건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바빠진다는 가설을 세운 적이 있다. 그것은 나름의 지침과 같아서, 불쑥 사고 싶은 것들이 나타날 때 종종 스스로에게 되뇌던 말이다. 덕분에 세탁이 까다로운 옷을 안 사는 것부터 시작해 '감자 매셔' 같은 주방 도구를 사는 일을 미루는 것처럼 소소하게 지출을 줄인 적도 있다. 전에는 이렇게 돈을 덜 쓰는 일에 그치는 것으로도 충분히 긍정적이었지만 최근 보냈던 며칠의 휴일 이후로 나는 그 가설을 맹신하게 되었다.



 5월 중순엔 주말 외에도 며칠의 쉬는 날이 있었다. 15일 토요일부터 23일 일요일까지, 총 9일 중 석가탄신일과 연차 때문에 나에게 휴일이 6일이나 생겨버린 기간이었다. 약속이 있었던 휴일이 단 이틀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동네 가까운 곳에 열린 전시를 혼자 봤고,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들렀고, 나간 김에 커피를 사거나 장을 보러 갔을 때 빼고는 온종일 집에 틀어박혀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무척 바빴다는 기억뿐이다.



 토요일이 되기 전 역시나 살짝 들떴다. 이왕 쉴 거면 충분히 쉬고 싶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과 함께 전시도 예약을 했다. 한편으로 내가 해치워야 일은 명확했는데 일단 빨래가 밀려 있었다. 여기에 대책 없이 걸려 있던 긴소매 옷을 정리해 집어넣어야 했다. 이외에도 눈앞에 해야 할 집안일이 조금씩 떠오를 때마다 심기가 불편해졌지만 앞으로 3일만 회사에 나가면 되니까 일단 다 잘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문제의 한 주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과제: 풀오버, 니트, 맨투맨 세탁하고 정리하기

 4월의 날씨는 꽤 쌀쌀했다. 목폴라와 니트, 기모가 있는 맨투맨과 슬랙스들이 옷장에 그대로 걸려있었고 더 이상 정리를 미룰 수 없는 때가 와버렸던 것이다. 세탁소에 싹 다 맡기기엔 비용도 그렇고 충분히 집에서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미룬 것이 문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딱 봐도 양이 많아 보이니 떠올리기만 해도 귀찮은 일이었다. 결국 소중한 휴일 중 하루 총 세 번의 손빨래로 11개의 옷을 빨아내고 옷장도 정리했다. 옷 개수를 늘리지 말자는 생각이 절로 드는 날이었다. 일종의 '노동 치료'를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과제: 당근마켓에 블루투스 스피커 내놓기

 욕심을 부려 좀 더 좋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샀는데, 여기엔 이미 있는 스피커를 내보내는 일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미루다 이번 휴일 기간을 기회로 쓰던 스피커를 팔아버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구매자와 약속을 잡는 것도 일이었고, 늦지 않게 약속 장소로 물건을 가져가는 것도 상당히 귀찮은 일이었다. 결국 스피커를 넘기는데 성공했지만 내가 샀던 가격이 떠오르면서 조금 허무해졌던 것도 같다.





 세 번째 과제: 토마토, 가지 옥상에 내놓고 들여오기

 얼마 전 가드닝에 관한 전시를 본 후로 방울토마토, 가지 같은 모종 몇 개를 사서는 돌보는 일을 시작했다. 최대한 있는 것을 쓰고 분갈이를 해가며 화분을 새로 사지 않았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하지만 옮겨 심기는 시작에 불과했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햇빛이 가득한 날이면 햇빛을 쪼이고, 비가 오는 날엔 이만하면 충분하다 싶은 시간으로 비를 맞히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아야 했다. 그 많던 휴일도 여지없이 모종을 심은 토분을 손에 하나씩 끼고 옥상을 들락거렸는데, 불쑥 일을 사서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품고 있었던 '나는 요새 왜 바쁠까' 하는 의문이 일시에 해소된 순간이었다.



 이외에도 집에 틀어박혀 온갖 잡동사니가 든 수납함을 뒤집는다든지, 끝내 전해주지 못한 여행 기념품을 버리는 일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니 순식간에 9일이 가버리고 말았다. 이 기간은 내가 가진 물건만큼 일상의 관리 포인트가 늘어난다는 점을 잊지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던 기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건이 차지하는 것은 공간만이 아니었다. 늘 한정된 관심사로만 살아갈 수는 없으니 어떤 물건에 혹하든, 새로운 취미가 생기든 과거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과거의 나로 두고 바로바로 떠나보내야겠다는 다짐 비슷한 것이었다. 이제 공휴일은 추석까지 하루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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