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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나 Pina Jun 28. 2021

정리라는걸 하기엔, 좁아도 너무 좁은


 오픈한 1:1 정리 수업(이라고 하지만 컨설팅에 가깝다)의 첫 수강생은 미술과 디자인을 업으로 삼는 분이었다. 지금은 프리랜서지만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기도 하고, 도안 제작 등의 소소한 부업을 한 경험도 있다. 수업을 시작하고 보니 이 분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 짐작했던 대로 방에 짐이 많은 상태였다. 생활을 위한 이런저런 식료품과 소모품이 쌓여 있는 것은 물론이고 미술도구들과 작업물 등이 함께 있는 곳이었다.



 수업은 찍어오신 실제 쓰고 있는 수강생의 방 안 사진을 함께 보며 가장 효율적인 공간 활용, 정리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순서를 거친다. 뒤이어 강제성은 없는 디테일한 과제를 내드리는 것으로 수업을 마무리하게 되는데, 그 대목에서 나는 집은 충분히 쉬는 공간으로만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작업실이 따로 있던 분이었기 때문에 꺼낼 수 있었던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간은 잘 마쳤지만 수업을 하는 내내 마음 한구석의 찜찜함을 느꼈고 따릉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던 길엔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오랜 시간 페달을 밟으며 내가 내린 결론은, 어느 정도 지내기 적당한 공간이어야 정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분이 살고 있는 방, 옵션이라는 옷장은 너무 작아 필연적으로 하나 더 살 수밖에 없었던 데다 결국은 옷으로 방을 어지럽히게 되는 구조였다. 냉장고 또한 작아서 남는 음료나 식품이 이곳저곳 다른 공간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것도 정리를 힘들게 했던 부분이었다.



 내가 만나기 쉬운 1 가구의 주거 형태는 원룸이 다수. 원룸을 기본적으로 작게 만들어 내놓는 러한 경향성은 사실 나의 상황으로도, 주변 사람에게 정리를 조언하는 입장에서도 꾸준히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이다. 그런 곳에 물건을 너무 많이 두고 있다, 정리를 못하고 있다고 섣불리 얘기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도 시간이 갈수록 크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청년 1 가구 5  1명이 ‘4.3평에 미달하는 이나, '지하 또는 옥탑 거주하는 상황이라는 통계까지 있다.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정리를 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작은 방에서는 정말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아가지 않고서야 어지럽지 않은 것이 오히려 힘든 일일 것이다. 정리에 신경 써봐야 어차피 티도 잘 나지 않으니 어지럽히기 쉽고 그 어지러운 곳에 살면서 자연스레 정리할 의욕은 나지 않는 악순환이랄까. 가용 공간이 절대적으로 좁은 상황에서 정리에 대해 집중하고 의식하다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먼저 정리해봤다고 하는 사람이 이 부분에 공감할 수 없다면 각자 상황이 다 다른 사람들의 정리를 제대로 조언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틈틈이 작은 공간에서도 어떻게 하면 생활의 중심을 잃지 않고 규모를 적당히 유지하게끔 도와줄지, 고민해두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 이 글은 동네 스터디 카페에서 쓰고 있다. 나 역시 자주 가지는 않지만 작업실을 카페에 외주 준 상태로, 집에서는 아무래도 답답하고 역시 집중을 못 한다며 뛰쳐나오는 일이 가끔씩 있는 것이다. 에세이 <6.5평 월세방을 짝사랑하는 일>에서 작가는 ‘집’을 눈치 봐야 하는 존재로, 그래서 그에 맞게 취향과 습관을 바꿀 수밖에 없으며 타협과 합리화를 반복하는 날들이 이어진다,고 썼는데 나의 경우도 과연 그러했다. 쓰는 내내 나는 왜 밖에서 움직이는 취미를 가지려고 노력했는지, 유독 방에 빨래 건조대를 펴면 우울한지, 그런 비슷한 것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출처:


1.

 2017년 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연구원이 펴낸 '청년 주거 문제와 정책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 1인가구 중 최저주거기준(14㎡)에 미달하는 곳이나 지하·옥탑에 거주하는 등 주거빈곤 상태인 가구는 22.6%에 이른다. 전체 가구 중 주거빈곤 가구 비율(12.0%)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 <“5평짜리 감옥에 갇힌 기분"…코로나에 드러난 청년 주거> -20.12.13 기사 중


2.

 …집의 눈치를 살펴 이곳에 맞게 내 취향과 습관을 바꾸고, 집이 내 마음대로 움직어주는 것 같으면 종일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이렇듯 타협과 합리화를 반복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송혜현, <6.5평 월세방을 짝사랑하는 일> 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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